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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도서관

알고보고 굉장한 도서관 : 알렉산드리아도서관


(3) 아무도 모르게 사라진 도서관 알렉산드리아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기원전 300년경 또는 그 몇십 년 후에 세워진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첫 도서관이자 고대의 역사 유물을 통틀어 가장 훌륭한 도서관이었습니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왕이 사용하기 위해 지어졌다고 전해지며, 왕의 특정한 필요를 위해 자료들을 전문화 하였습니다. 또한, 여러 지역에서 수집한 온갖 종류의 책을 보유하였고, 학문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자격이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있는 공공도서관이였습니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한때 두루마리와 파피루스 문헌을 80만권이나 보존했으나 BC 48년 로마군과의 전쟁 당시 불에 탔다. 클레오파트라는 남은 장서로 재건을 시도, 그 후로도 도서관으로서의 명맥은 유지했다.

 

선택 된 두뇌집단 그네들의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자유로운 지적 자원을 위하여….

고향 마케도니아에서 인도 서부 경계까지 정복하였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죽은 후, 알렉산드로스가 이륙했던 대륙은 끊임없는 전쟁을 통해 기원전 300년 직후에 와서 세 개의 왕국으로 분할되었습니다. 고향인 마케도니아아에 수도를 두고 그리스를 다스렸던 안티고노스 왕조, 바빌론과 가까운 안티오크와 셀레우키아에 수도를 두고 소아시아와 시리아, 메소포타미아를 다스렸던 셀레우코스 왕조,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기원전 331년에 발견하여 자신의 이름을 붙인 알렉산드리아를 수도로 삼고 이집트를 다스렸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로 나뉘었다. 이 시대를 우리는 헬레니즘 시대라 부르며 기원전 1세기 로마에게 멸망했습니다.
분할된 제국 중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가장 뛰어난 왕조를 구축했습니다. 이유인즉슨, 이집트의 비옥한 토지로 풍부한 곡물을 산출하였으며, 질좋은 파피루스 식물의 원산지로 세계에서 가장 탁월한 기록물 재료를 독점할 수 있는 보장 된 권리를 지도자들에게 주었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초기 네 명의 왕들은 지식인들이였고, 그들은 나라의 수도인 알렉산드리아를 그리스 세계의 문화적 중심지로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알렉산드리아는 신흥 도시로 문화적 황무지 같은 도시였고, 프톨레마이오스의 초기 왕들은 이 문화적 황무지 도시로 많은 지식인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지식인들에게 온갖 아첨을 하였습니다. 기원전 3세기경 알렉산드리아는 문화적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고 이러한 주체할 수 없는 문화적 자극들은 지식인들을 알렉산드리아로 모이게 했습니다. 또한 지식인들을 알렉산드리아로 모이게 하는데 한몫 했던 것은 프톨레마이오스 1세의 무세이온 설립이었습니다. 고대에서 무세이온이라는 말은 종교적 설립물을 지칭하는 것으로 주로 뮤즈들을 예배하기 위한 신전이며 뮤즈라는 예술의 신이 상징하는 종합예술의 발달을 촉진하는 곳이요 고대의 두뇌집단이 모인 장소였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로부터 임명 된 작가, 시인, 과학자, 학자들만이 무세이온의 회원이 될 수 있었으며 무세이온의 회원들은 높은 봉급과 세금 면제, 숙식제공과 같은 특권들을 누렸습니다. 또한 그들에게 주어진 모든 개인적 이점에 더해서 이 선택된 두뇌 집단에게는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자유로운 지적 자원이 있었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설립한 것은 바로 이들을 위해서였습니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학자들이 오늘날 우리에게 선사한 가장 큰 선물….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돈과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온갖 종류와 모든 주제를 포괄하는 책을 사 모았습니다. 이때, 수집 된 책들은 고양된 서사시에서부터 지루한 요리책들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취득한 장서들을 연구를 위한 참고 자료로 이용했을뿐만 아니라 그리스어 기록물의 총괄적 자료로 만들었습니다. 또한 다른 언어로 쓰여진 중요한 작품들의 그리스어 번역본도 포함시켰습니다. 가장 잘 알려진 번역판은 ‘70인역 성서’로 그리스어판 구약성서입니다. 번역의 주된 목적은 그리스어만을 사용하는 대다수의 유대인들에게 보급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이 책의 번역은 이 작품을 도서관에 보관하고 싶어했던 프톨레마이오스 2세에 의해 진행되었습니다.
도서관장은 왕실에서 직접 임명하였는데, 왕의 자녀들의 개인 교사인 유능한 학자들이 종종 이 일을 담당했습니다. 첫 번째 도서관장은 호메로스의 시를 정통의 원문으로 정립한 제노도토스였다. 그는 도서관학의 선구자였을 뿐만 아니라 장서들을 서가에 정리하는 도서관의 체계를 성립한 인물이였습니다. 제노도토스의 첫 번째 작업은 산문이나 운문, 문학작품이나 과학 작품, 문학 작품의 분류법 등을 내용의 성격에 따라 두루마리 종류를 분류하여 방 별로 나누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다음 작업은 분류 된 방 별이나 방의 일부에 결정된 저작물의 다양한 목록을 배정 한 뒤 알파벳순으로 저자명을 배열하여 서가에 작품들을 꽂아 놓는 일이였습니다.
알파벳으로 조직화하는 형식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학자들이 오늘날 우리에게 선사한 가장 큰 선물 중 하나입니다.


사라진 도서관 알렉산드리아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기원전 31년 악티움 전투까지 이어지는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의 연애 기간에도 분명히 존재했습니다. 왜냐하면 안토니우스가 그의 지배하에 있는 페르가몬의 도서관에 있던 20만권의 책을 정부인 클레오파트라에게 선물로 주었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이것은 분명히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염두에 둔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기원전 270년쯤에 종말을 맞았다. 아우렐리아누스 황제가 팔미라 왕국의 폭동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알렉산드리아에서도 피비린내 나는 전투가 벌어졌고 이 싸움 동안 왕궁과 더불어 도서관도 파괴 된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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