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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들의 책 이야기

나는 기다립니다

 

o 서평대상 서지사항

나는 기다립니다 / 다비드 칼리 ; 세르주 블로크 그림; 안수연 옮김. - 문학동네, 2007.

o 분야

어린이책 (그림책)

o 추천대상

o 상황별추천

 

 

 

 

조이소하 (남양주시 별빛도서관)

 

 

나는 기다립니다...” 무엇을? 제목에서 유발된 궁금증은 자연스럽게 속표지에 놓인 빨간 털실을 따라 가게 만든다. 손짓하듯 놓인 실을 따라 책장을 넘기면,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삶의 여정을 경험하게 해주는 그림책이다.

 

빨간 털실을 장난스럽게 쭉 잡아당기는 아이는 마치 손을 잡아끄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렇게 아이는 쑥쑥 크기를 기다리고, 부모님의 보살핌을 기다리고, 좋은 날씨와 축제와 사랑을 기다리며 어른이 되고, 그리고는 삶의 모퉁이 모퉁이에서 좋은 일들이 다가오기를 기다리며 나이 들어간다. 한 때 아이였으나 이제 부모가 된 그/그녀는 아이들이 잘 자라기를, 가끔이라도 얼굴을 볼 수 있기를 기다리고, 그 기다림이 이어지기를 기다리다 삶의 매듭을 짓는다. 마지막 장면의 실타래는 마치 하나의 삶을 단정하게 말아놓은 것처럼 보인다.

 

다른 그림책도 그렇지만 이 책 나는 기다립니다...”는 한 장 한 장을 천천히 음미하며 볼수록 좋다. 책장을 넘기는 일이 그 자체로 기다림의 행위가 되는, 느리고 깊은 호흡으로 경험하는 그림책. 잠들기 전 엄마 아빠가 읽어주고, 성장해서 다시 한 번 천천히 읽어보고, 어른이 되어서는 머리맡에 두고 삶을 반추하며 읽기에도 좋은 책이다.

 

세르주 블로크(Serge Bloch)가 어린이 잡지에 영웅 만화 ‘Samsam’을 연재하던 중 글 작가 다비드 칼리와 함께 작업한 이 책은 2005년 발표되자마자 바오밥상, IBBY상 등을 수상하며 전 세계 30여 개국에서 출판되었다. 이어 사막에 홀로 남겨진 두 군인의 상황을 통해 전쟁의 본질을 명료하게 담아낸 그리고 어디서 잘라낸 작은 선을 모티브로 평생을 선과 함께 한 예술가의 인생을 뭉클하게 표현한 어느 날 길에서 작은 선을 주웠어요등의 작품에서 일관되게 눈에 띄는 것은 간결한 선이다.

 

핵심만 남겨놓고 단순성을 추구하는 그림 덕분에 독자는 오히려 자신의 생각을 개입시켜 적극적으로 그림을 읽어낼 수 있다. 검은 선과 빨간 털실의 어울림도 재미있다.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주제를 털실 쪼가리, 엉킨 털실, 이렇게 저렇게 모습을 바꾸며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털실이 경쾌하게 끌고 간다. 덕분에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다양한 시선으로 읽을 수 있다.

 

나는 기다립니다...”의 글을 쓴 다비드 칼리(Davide Cali) 역시 톡톡 튀는 상상력과 유머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이탈리아의 작가다. 만화, 동화, 시나리오, 연극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의 대표작으로는 세르주 블로크와 함께 작업한 이 책과 외에도, 2006년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서 라가치상을 받은 피아노 치기는 지겨워등이 있다. 다른 그림 작가와의 만남이 또 어떤 멋진 책을 낳았을지 찾아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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