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서들의 책 이야기

내가 한 번도 초대하지 않아서였을까요?

내가 한 번도 초대하지 않아서였을까요?

 

내일이면 아빠가 떠나 / 도 판 란스트 글, 김지안 그림, 정신재 옮김. - 책과콩나무

 

 

 

책표지 넓이의 3분의2를 차지하는 아빠의 등이 보이고 품에 안겨있는 소녀의 작은 얼굴에 「내일이면 아빠가 떠나」라는 제목에서 가벼운 이별이야기일 것이라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지만, 곧 갑작스런 이별을 마주한 열한 살짜리 소녀 레나의 감정에 빠져들었고 가족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매일 매일 반복되는 엄마 아빠의 싸움소리를 들어야 했던 레나는 어느 토요일 아침 ‘내일이면 아빠가 떠난다’는 말을 듣는다. 낯설지만 심각하지 않은 척하는 동생에게 시기심을 느낄 정도로 머뭇거리고 마음속으로만 대답하는 레나의 불안함에서 그동안 받은 상처가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엄마는 옛날 아빠가 축구선수였을 때 축구솜씨에 반했고 아빠의 짙은 갈색 곱슬머리도 좋아했던 활달한 성격인데, 아빠는 움직이지 않고 아주 오랫동안 말없이 조용히 새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새 사진의 전문가로 그냥 집에 있을 때에도 조용하다. 엄마와 아빠는 아주 많이 다르지만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아빠의 조용한 성격 때문에 이미 오래전에 둘이서 결정했다고 한다.

‘아빠가 떠나니까 난 슬픈 걸까? 레나는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친구 란더르는 부모님이 처음 이혼한다는 사실을 이야기 했을 때,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않고 울기만 해서 병원에 갈 지경이어서 2주간이나 학교에 오지 못했다. 무척 유쾌한 사람인 란더르의 아빠라면 슬퍼할지도 모를 것이라 생각했다.

레나는 장난감 상자를 꺼내 인형놀이를 시작 한다. 아빠가 내일이면 떠나고, 숲 속 오두막에 살 것이고, 잠시 동안인데 잠시 동안의 의미는 잘 모르고, 아빠가 떠나면 아무것도 먹지 않게 될 것 인지, 아빠가 떠나는 것은 불행한 일인지, 어떻게 하면 눈물이 나는 것인지를 인형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한참 후에 레나의 방에 오신 아빠와 서로에 대해 그리 많이 알지 못함을 확인하면서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한참을 울고 나자 차분해진 레나는 처음으로 아빠와 긴 대화를 나누었다. 아빠는 엄마와 많이 다르기 때문에 떠나는 것이고, 누군가 나를 기억해 주지 않는 것이 두려워 좀 더 일찍 알려 주지 못했다고 말끝을 흐렸다. 레나와 아빠는 “그런데 난 왜 한 번도 차를 마시러 오지 않았을까?” “내가 한 번도 아빠를 초대하지 않아서였을까요?” 서로 자신을 돌아보면서 아빠는 언제든지 차 마시러 오겠다고 레나와 약속 한다

 

난생 처음 큰일을 겪으면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수많은 질문과 대답을 통해 아빠와의 이별을 준비하는 아이의 마음을 슬프지만 따뜻하게,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으로 그리고 있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그래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를 반성하게 하는 이 동화를 부모나 어른들에게도 권하고 싶다

 

박정순(수원영통도서관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