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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들의 책 이야기

종전 후 다시 시작되는 전쟁

o 서평대상 서지사항

843 생존자/ 이창래 글, 나중길 번역. - RHK, 2013.

661p. : 삽화 ; 23cm.

978-89-255-4711-4 03840: 15,800

o 분야

문학(800)

o 추천대상

성인

o 상황별추천

전쟁의 참상을 알고 싶은 성인

기성세대에 대해 이해하고 싶은 성인

 

 

 

이선희 (성남시 중앙도서관)

 

 

얼마 전 미국인 대학생이 북한여행 중 억류되었다가 혼수상태로 귀국했다. 그는 가족들과 재회한 지 몇일 지나지 않아 사망하고 말았다. 이 일로 인해 북한의 민간인 학대에 대한 국제적인 비난이 높아지는 가운데 휴전 상태인 한반도 상황을 다시금 상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625 전쟁의 참상을 기억하는 생존자는 이제 얼마 남지 않을 것이다. 지금 이 시각에도 지구 상 어느 곳에서는 전쟁이 일어나고 있지만, 카메라 넘어 세상의 이야기일 뿐 나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지극히 미비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전쟁이든 종전 후 살아남은 자들은 분명히 우리 곁에 숨 쉬고 있고, 인류는 그들의 자손, 이웃들을 통해 그 당시 치열했던 삶에 대해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다.

이창래 장편소설,생존자6,25전쟁 속에서 살아남은 세 남녀에 대한 이야기 이다. 미군 참전 용사인 헥터는 종전 후 아사상태로 길거리에 쓰러져있는 10대 소녀 준을 만난다. 그들은 함께 고아원의 일원에 되어 살아가는 중 미국인 테너목사와 그의 부인 실비를 만나게 된다. 실비는 외적으로는 아름답고 활기찬 모습이지만, 만주사변 때 부모가 눈앞에서 처참히 살해된 후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상태였다. 부모와 쌍둥이 언니오빠를 전쟁 중 차례로 잃은 준은 쌍둥이 동생 데리고 부산으로 피난을 가지만 그 여정에서 동생 둘을 한꺼번에 잃고 만다. 오직 살아남기 위해 죽어가는 동생을 뒤로하고, 달리는 기차에 몸을 실었던 준은 실비를 만나면서 그녀를 어머니처럼 의지하고 연인처럼 사랑하게 된다. 한편,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에 입대 후 겪은 한국전쟁은 헥터의 평범한 삶을 뒤흔들었다. 종전 후에도 폭력적으로 얼룩진 나날을 보내던 그에게 실비의 등장은 삶의 구원임과 동시에 사랑의 대상이었지만, 세 남녀의 사랑은 어느 것 하나 이루어지지 못했고, 20년이 지난 후에 준과 헥터가 재회하면서 그들의 이야기가 다시 시작된다.

세 명의 주인공의 비참한 삶은 피 흘리며 죽어가는 동생을 뒤로하고 기차를 탔던 준에 대한 작가의

글을 통해 유추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아직 끝이 아니었다. 준은 기차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마지막 객차가 그녀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그녀는 맨발이었다...준은 뒤돌아볼 수 없었다, 그녀는 그들 모두를 사랑했지만 뒤돌아보게 되면 자신은 끝장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언젠가는 멈추게 될 터지만 아직은 멈추고 싶지 않았다. 무언가를 갈망한다는 것은 결국 시간을 갈망하는 것이다. 그녀는 그저 시간을 좀 더 가지고 싶었을 뿐이다....그녀의 뒤쪽으로 세상이 빠른 속도로 멀어졌다. 누군가가 그녀를 끌어올려 품어주었다, 그녀는 지면에서 발을 뗐다. 살아남은 것이다실비와 준은 전쟁 속에서 가족을 잃고 그로인한 상처로 평범한 삶을 살아가지 못했다. 전쟁에 직접 참전했지만 전우들의 시체를 수습하는 일을 했던 헥터 또한 전쟁의 광기에서 남은 삶을 벗어날 수 없었다.

이렇듯 작가는 독자들에게 전쟁 속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우리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끔찍한 기억을 눈과 가슴에 품고 남은 생을 연명해야 했음을 알려준다. 휴전 상태의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가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전쟁은 적을 죽고 죽이는 단순한 논리에 해당하는 개념이 아니다. 전쟁은 그 소용돌이에 있던 모든 사람을 육체적 정신적으로 파괴하는 악의 개념임을 이 작품을 통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소설,생존자는 성인에게 추천하고 싶다. 내용 중간 중간, 잔혹한 인간의 본성이 적나라하게 묘사되는 부분이 있어 감수성에 예민한 청소년들에게 자칫 해로운 영향을 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염려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