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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들의 책 이야기

자신의 깜냥만큼 짐을 지는 용기

o 서평대상 서지사항

나는 밥먹으러 학교에 간다 / 박기복 글 - 행복한 나무. 2015.

200p. : 삽화 ; 21 x 15 cm.

ISBN 978-89-93460674 : 8,800

o 분야

청소년 성장소설

o 추천대상

청소년 ~ 성인

o 상황별추천

친구관계를 고민하는 청소년

남에게 듣기 싫은 말을 못하는 사람

 

 

유현미 (평택시립도서관)

 

 

하마터면 이 책을 그냥 지나칠 뻔했다. 선뜻 손이 가지 않는 표지 디자인에 책 제목도 너무 가난해서 급식으로 끼니를 해결한다는 말인가?’ 하는 선입견을 부추긴다. 설상가상 표지에 잔뜩 붙은 광고문구- 십대들의 힐링캠프, 청소년 권장도서, 아침독서추천도서- 들은 지나치게 건전하여 유익하고 재미없는 책이 아닐까?’ 의심을 촉발한다. 이런 요소들이 종합하여 더욱 더 격렬(?)하게 읽고 싶지 않은 마음에 불을 지핀다. 아마도 평택시 올 해의 한 책후보도서가 아니었다면 쉽게 책장을 넘겨 보지도 않았을 터다. 하지만 선입견을 거두고 막상 책을 읽기 시작하자 단숨에 읽혔다. 학창시절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해 보았을 법한 고민과 갈등들이 몰입도를 높인다. 작가가 청소년들의 곁에서 오랫동안 멘토로서 활동해온 이력 덕택인지 마치 곁에서 보는 듯 생생한 현장감을 더한다.

 

어른들에게는 자칫 사소해 보이는 일조차도 아이들이 받아들일 무게는 자못 다르다. 청소년들에게 학교생활은 그 자체가 하나의 세계이자 전부일 수도 있다. 전교생이 다 보는 앞에서 혼자 밥을 먹는 것은 그저 흔한 혼밥이 아니라 만천하에 자신이 왕따임을 고하는 일이자 동시에 투명인간이 되는 일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혼자 밥을 먹느니 차라리 굶는 편을 택하거나 교실에 혼자 남아 눈물의 빵을 삼킨다. 더 이상 학교가는 것 자체를 포기하기도 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 아침에도 왕따를 당해 혼자 밥을 먹어야하는 자식을 걱정해서 엄마가 보낸 문자와 아이의 답글이 인터넷 화제기사로 소개되었다. “밥 먹으러 가냐?” “밥은 먹었나계속된 엄마의 문자와 그런 엄마를 안심시키려 (눈물을 참고) 점심을 먹고 있다는 인증사진을 보낸 딸의 사연이다. 사연의 학생은 SNS에 자신의 사연을 고백하며 딱 한명이라도 같이 다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자살 시도도 했던 나 자신이 밉다. 부작용이 안 생기고 행복한 날이 왔으면 좋겠다.” 라는 바램을 남겼다.

 

책의 주인공 지민이는 혼자 밥을 먹게 된 친구가 점점 투명인간이 되어 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그 친구가 느낄 두려움과 외로움에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친구가 겪는 외로움에 가슴은 아프지만 자신이 어떻게 도와 주지도 못하고, 야단맞는 친구를 위해 어떤 몸짓도 보여주지 못하는 자신을 자책할 뿐이다. 남이 듣기 싫어하는 말을 거의 못하는 자신의 성격을 탓하면서도 섣불리 친구를 돕다 혹여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혼자서 밥을 먹게 될까봐 두렵기도 하다.

실제로 많은 아이들이 그런 두려움 때문에 곤경에 처한 친구들을 모른 척 외면하거나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방관하는 편에 선다. 개중에는 용기내어 도움의 손길을 건네는 아이들도 있지만 한 두명의 선의로 허물기에는 왕따 매커니즘은 생각보다 견고하다. 그 세계의 어느 쪽에 서느냐에 따라 옳고 그름을 명확하게 이분법으로 구분할 수 없는 복잡다단한 관계망이 존재하기도 한다.

 

두려움과 양심의 가책 사이에서 방황하던 지민이는 고민을 끝내고 드디어 용기를 내어 딱 한명이 되기로 결심을 한다.

싫으면 싫다고 하자. 옳으면 옳다고 하자. 내 깜냥만큼은 짐을 지자.” 지민이는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으며 견고한 벽을 향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앞으로 지민이가 겪을 일들이 그래서 모두는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라는 동화의 세계처럼 펼쳐지지 않을 것임을 잘 알기에 그녀가 통과해야 할 좌절과 절망의 시간들에 마음이 저려 오지만 아마도 꿋꿋하게 잘 헤치고 성장해 나갈 것임을 믿는다. 싫으면 싫다고 말하고 옳으면 옳다고 하는 것, 자신의 깜냥만큼 기꺼이 짐을 지고 가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어른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두렵지만 용기를 낸 지민이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