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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들의 책 이야기

누군가는 기억해야할 우리 모두의 이야기

 

 

 

누군가는 기억해야할 우리 모두의 이야기

잠들지 못하는 뼈 / 선안나 글 / 허태준 그림 (초등 고학년)

 

평택시립도서관 사서 유현미

 

『 잠들지 못하는 뼈』는 한국전쟁 발발 직후 수많은 민간인이 한국군과 경찰에 의해 목숨을 잃었지만 아직도 진실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채 잊혀져 가고 있는 국민보도연맹 사건을 담은 동화이다. 보도연맹은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고 지도한다’는 명목으로 전국에서 약 30만 명 정도를 가입시키고 전쟁이 나자 이들 다수를 즉시 학살했지만 그 일은 현재까지도 쉬쉬하며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 책은 보도연맹 소집이라고 해서 집을 나선 70여명의 마을 사람들이 창고에 감금되고 야산에 끌려가 죽임을 당하기까지의 끔찍했던 당시 상황을 남주 가족의 비극을 중심으로 생생히 담아냈다. 청원의 한 시골 마을 지서에도 누가 작성했는지 모르지만 보도연맹 가입 대상자 명단이 있었다.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가로 활약했던 대추나무집 아저씨가 하루 아침에 빨갱이로 낙인 찍혔고 아저씨를 존경하고 따르던 남주의 아버지도 가입 대상자 명단에 있었다. 까막눈인 은자 엄마는 비료를 준다는 말에 도장을 내 주었다. 마을 이장이 마음대로 도장을 찍는 바람에 자신이 가입된 줄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남주는 무논에서 일하다 바짓가랑이를 걷은 채 면 소재지로 향하던 아버지의 뒷모습을 잊을 수 없다 게다가 아버지에게 보도연맹 소집이라는 말을 전한 것은 남주 자신이었다. 청주에서 영화배우를 보고서 크면 배우가 될 거라하고 했던 여동생은 향주는 미군 비행기 폭격으로 청각을 잃고 결국 스무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집안의 자랑이었던 중학생 오빠는 전쟁이 끝났지만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남주는 세상 가장 믿음직한 버팀목이었던 아버지와 오빠 그리고 사랑스런 여동생을 잃었다. 그리고 우리 집형편이 나아지면 오빠처럼 중학교에 진학하고 싶다는 소중한 꿈도 함께 잃었다. 넉넉하진 않았지만 내일이 더 나을 거라는 희망을 안고 소소한 일상들을 열심히 살았냈던 남주 가족의 비극과 슬픔은 지켜보는 보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세월이 흘러 어느덧 일흔의 나이를 넘긴 남주는 보도연맹 유해를 발굴했다는 뉴스를 보고 혹시 오빠의 유해가 있지 않을까 해서 대학교 유해감식센터를 찾아 간다. 남주는 유해감식센터에서 일하는 ‘태오’라는 청년을 만난다. 태오는 잠시 아르바이트로 유해 발굴 작업에 참여하게 되었다가 우연히 자신의 할아버지가 보도연맹을 학살한 헌병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진로를 바꾸어 유해발굴단에 남게 된다. 어느덧 삼년 기한의 보도연맹 유해발굴사업은 끝이 나고 진실화해위도 해체를 한다. 그러나 아직 수십만 피해자가 땅속에 묻혀 있고, 이미 발굴된 유해도 갈 곳이 없어 플라스틱 상자에 담겨 있는 상황이다.

‘양지바른 곳에 유해를 봉안하고 추모공원이라도 만들어 후세를 위한 역사 교육의 장으로 삼도록 해달라’는 유족들의 소박한 꿈조차 지켜지지 않고 있다.

그런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태오는 홀로 전국방방 곡곡의 ‘잠들지 못하는 뼈’들을 찾아다니며 기타 연주를 들려 준다. 태오만의 순회 위령 공연인 셈이다.

 

이 작품이 현실을 고발하는 데만 그치지 않고 가해자의 참회와 반성, 그리고 진정한 화해의 길을 모색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태오의 마지막 순회 위령 공연 장소가 우익과 좌익의 희생자 유족들이 원한을 넘어 하나의 유족회를 만든 다도면으로 설정된 것만 보아도 ‘산 자와 죽은 자’ 모두의 화해를 간절히 바라는 작가의 의도를 짐작해 낼 수 있다.

 

필자 또한 한국전쟁 당시 대규모 양민학살 사건이 일어났던 지역에서 나고 자랐으나, 그 사건의 실체에 대해 처음 접한 것는 대학 진학을 위해 타지에 가서 였다. 다른 사람들이 알고 물어오는 우리 고장 이야기를 왜 나만(?) 모르고 있었던 것인 지 의아하고 부끄러웠으나, 그것조차도 계속 되고 있는 우리 역사의 아픈 현실이자 숨겨진 이면임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학교에서 정식으로 배운 적은 없지만, 우리가 몸으로 배운 것은 쉬쉬하며 이야기를 꺼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가족을 처참하게 잃은 ‘산 자’들에게 남은 것은 아픔을 위로 받고 보상받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을 꺼내는 것 조차 금기시 당한채 숨죽이며 오랜 세월을 견뎌내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픈 과거는 참혹한 시절을 겪었던 어른들에게는 상처 덩어리로, 후세들은 까마득히 잊혀진 역사의 이야기로 남았을 뿐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제목이 보여주듯 기교 부리지 않는 진지성과 진솔함이다.

작가는 어른들조차 짐짓 눈 감고 외면하고 싶었던 역사의 불편한 진실과 삶의 모순들을 가리지 않고 다 드러내 보여준다. 여지껏 동화에서 금기시 되었던 빨갱이, 좌익과 우익의 이념들을 드러내 어린 아이의 눈높이에서 펼쳐 보이며 갑갑함과 억울함, 가슴 먹먹함에 직면하게 한다. 이 작품을 시작으로 현대사를 어린이 청소년 문학으로 풀어내는 데 힘을 쏟을 예정이라는 작가의 의지가 보이는 부분이다.

‘재미있는’ 것이 어린이 책의 훌륭한 덕목이긴 하지만 ‘재미’만을 쫓아 진지성을 잃어버린 많은 아동 작품들을 대하다 보니, 이 같은 작품을 만나는 것이 무척이나 반갑다.

 

‘진실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은 거짓이 아니라 망각이다’라는 말을 되새기며, 무엇보다 자기 자신이 잊지 않기를 바라며 하나 하나 또박또박 더듬어 가듯이 종이에 선을 긋고 안료를 그 위에 더했다는 그림 작가 허태준에게서도 진지성이 읽힌다. 책을 보게 될 독자들에게도 한 시대의 아픔과 진실이 그대로 전달되길 바란다는 작가의 말처럼, 공들인 삽화가 시간을 거슬러 역사의 현장으로 우리를 이끈다.

 

그 시작이 무엇이었든 스스로 미쳐가며 ‘잠들지 못한 뼈’로만 남은 한국전쟁, 우리의 아픈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진실을 가르치는 것이 진정으로 어른들의 몫이 아닐까.

6.25가 얼마 남지 않았다. 이번 6.25에는 아이들과 이 책을 함께 읽어 보시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