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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들의 책 이야기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삶을 위하여

o 서평대상 서지사항

허클베리핀의 모험 : 일반 / 마크 트웨인 글. 북트랜스 번역. - 북트랜스, 2014

484p. ; 21cm.

979-11-85051-64- : 14,000

o 분야

일반도서 (800)

o 추천대상

청소년 및 성인

o 상황별추천

세상이 당연히 요구하는 가치에 의문이 드는 사람들을 위한 책

 

 

이병희 (안성시 보개도서관 사서)

 

허클베리핀의 모험은 마크 트웨인의 또 다른 대표적 소설 톰 소여의 모험의 후속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두 작품 모두 어린아이들이 미시시피 강을 배경으로 펼치는 흥미진진한 모험을 그리고 있습니다. 다만 톰 소여의 모험이 순수하게 어린아이들이 겪는 모험과 성장통을 그려내고 있다면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아이들의 눈을 통해 19세기 후반, 격변기 미국사회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크 트웨인은 이 책의 서두에 다음과 같이 준엄하게 경고합니다.

 

이 이야기의 계기가 무엇인지 알려고 하는 자는 사형에 처할 것이고, 도덕적 교훈이 무엇인지 밝혀내려는 자는 추방될 것이며, 플롯을 찾으려는 자는 총살에 처해질 것이다.”

작자의 명령에 따라

군사령관 G.G.

 

작자의 자전적 요소가 많이 들어가 있다고 하는 이 작품을 읽고 해석하는 데 잡스러운 관점이 반영되기를 바라지 않는 마음에서 하는 부탁일까요? 아니면 수수께끼를 내면서 답을 알아맞히길 바라는 아이의 마음으로 남기는 힌트이자 부추김일까요? 참으로 궁금증을 자아내는 서문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이 작품은 미시시피강 유역을 무대로 허클베리 핀(이하 헉 핀)이 겪는 모험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헉 핀의 모험 동료로는 주인집에서 도망을 친 검둥이 노예 짐이 있습니다. 헉 핀은 전작 톰 소여의 모험에서 모험을 끝내고 마을의 인정많은 과부 더글러스 부인댁에서 교양있는 아이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러나 갑자기 나타난 헉 핀의 아버지에 의해 납치당해 외딴 섬의 나뭇집에 갇히게 됩니다. 알코올 중독으로 환각을 일으키는 아버지 때문에 죽을 위기를 겪은 헉 핀은 천신만고 끝에 탈출해서 도망을 치는 중 우연히 짐과 합류하게 됩니다. 헉 핀은 아버지의 마수에서 벗어나기 위해, 짐은 노예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유주로 들어가기 위해 뗏목을 구해서 미시시피강의 하류를 향해 떠나게 됩니다. 두 사람은 함께 여행을 하면서 수 없이 많은 위기에 봉착하지만 그 때마다 기지와 우정으로 극복해냅니다. 여행의 말미에 짐은 결국 소원하던 자유를 찾게 되고, 헉 핀은 또 다른 모험을 위해 톰 소여와 떠날 것을 다짐합니다.

 

당연한 게 과연 당연한 것일까?

 

이 작품은 철저하게 헉 핀의 눈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정규 교육을 전혀 받지 못 하고, 그저 자연 속에서 하루하루를 자유롭게 살아왔던 헉 핀의 마음은 순수함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 헉 핀의 눈은 어른들의 세상 속에 숨어있는 허위와 가식, 부조리 등을 그야말로 여과없이 드러나게 합니다. 또한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 당시 사회의 여러 문제에 대한 작자의 고민을 엿볼 수도 있습니다. 특히 규범과 양심의 충돌은 이 작품의 가장 큰 화두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이야기 전반에 나타납니다. 이야기의 후반부에 사기꾼에게 속아서 잡혀간 짐을 구해야 하는지에 대한 헉 핀의 고민은 그 화두를 극명하게 드러내죠.

당시의 법과 교리, 문화 등은 단호하게 외칩니다. 짐을 주인에게 돌려주라! 그렇지 않으면 법과 하느님의 말씀을 어긴 것이므로 벌을 받고 지옥에 떨어지게 될 것이다! 당시의 법규범에 따르면 흑인은 자유로울 수 없으며 주인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것은 죄악이었던 것이죠. 헉 핀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짐의 탈주를 도우는 와중에도 헉 핀은 내내 고민을 합니다. 본인의 도움으로 인해 짐의 주인은 유일한 노예를 잃게 되고 큰 불행에 빠질텐데 내가 이래도 되는 것인가? 이것은 도둑질을 돕는 것과 다를 것이 없지 않은가? 하지만 헉 핀의 양심은 또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자기의 잘못으로 독사에 물려 죽을 뻔했으면서도 자신을 나무라지 않은 짐. 피곤해하는 핀을 위해 기꺼이 불침번을 대신 서주던 짐. 죽은 줄 알았던 헉 핀이 살아서 돌아왔을 때 진심으로 기뻐해주던 짐. 그런 짐이 가까스로 잡은 자유의 기회를 잃도록 두고봐야만 할까? 선택의 기로에 선 헉 핀은 괴로워합니다. 긴 고민 끝에 결국 헉 핀은 짐을 도와주기로 결심합니다.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나는 종이를 집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서 나는 덜덜 떨렸다.

숨을 죽이고 잠시 생각한 끝에 스스로에게 말했다. “좋아, 나는 지옥으로 가겠어” -중략- 우선 다시

짐을 빼낼 방법을 생각해보자. 그 보다 더 나쁜 짓이라도 하자. 결심을 굳힌 이상 끝까지 밀어붙여야

한다

 

짐을 주인의 손에 돌려줘야 하는 것이 당연한 당시 사회 속에서 헉 핀은 어떻게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본인의 양심에 귀를 기울인 결과일 것입니다. 또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만 받아들인다면 세상이 어떻게 발전할 수 있을까요? 지금 세상이 적어도 과거보다 나아진 점이 있다면 그것은 모두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던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바로 헉 핀처럼 말이죠. 이 작품은 서문의 경고를 따라 가볍고 즐겁게 읽어도 좋습니다. 하지만 저처럼 그 경고를 살짝 무시하면 나름의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우리의 헉 핀도 그런 경고는 무시해 버리지 않았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