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8.02 09:45

[이달의 콘텐츠] 술과 함께 삶을 빚어가는 사람들 5

경기도민이야기3.

"술과 함께 삶을 빚어가는 사람들" 다섯번째 이야기

 

 

 

<경기도민이야기 3>는 일상생활 속에서 사람들에게 매우 가까운 존재인 술을 매개체로 떠올릴 수 있는 삶의 이야기를 찾아 나서 이야기를 구술채록 하였습니다.

구술내용을 바탕으로 많은 경기도민이 내용을 함께 할 수 있도록 전시기획물을 구성하여 고양아람누리도서관(7월)에서 부터 양평중앙도서관(8월), 포천중앙도서관(9월)에서 전시가 운영됩니다. 근처에 거주하시는 분은 도서관을 방문해보면 좋겠습니다.

“술과 함께 삶을 빚어가는 사람들” 다섯 번째 이야기입니다.
이번 호에서는 고양시 박상빈님의 술과 함께한 삶의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합니다.

술향기와 함께 자란 아이

고두밥 짓는 향기에 피어난 옛 기억

“아야, 가서 탁배기 한 사발 받아오너라”

아버지의 이 말씀이 떨어지면 양은 주전자를 들고 술도가로 달려갔던 유년의 기억을 품은 이들이 있다. 막걸리 심부름을 다니던 그 시절 동네마다엔 양조장 있었고, 삐그덕~ 술도가의 물을 열고 들어서면 코끝 알싸한 막걸리 냄새가 풍겨왔다. 막걸리를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이들은 주전자 주둥이에 입을 대고 몰래 막걸리 서리를 했다. 이제는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볼 법한 이 풍경 속에서 삶을 시작하고, 보석 같은 유년의 추억을 품은 이가 있다. 5대째 가업을 이어가고 있는 배다리막걸리의 박상빈 대표다.



“제가 1963년도에 능곡양조장 뒤 사택에서 태어났어요. 사실 아주 어릴 때의 기억은 없어요. 기억이 시작되는 시기는 69년에서 70년 초쯤 이에요. 가장 강렬하게 남아 있는 기억은 우리 집이 다른 집보다 굉장히 크다는 기억이에요. 집에서 양조장을 한다는 사실도 인지 못하고, 양조장과 집의 구분도 하지 못했던 거죠. 무엇보다 당시 집에서 바깥으로 나가려면 어린애 총총 걸음으로 대문까지 한참을 걸어 내려가야 했어요. 마당도 대문도 다른 집과는 스케일이 달랐고요. 굉장히 큰 철대문이었는데, 그 문으로 트럭들도 드나들었으니까요.”

어린 시절, 정확히는 초등학교 때까지 그에겐 집이 양조장이고, 양조장이 놀이터였다. 그리고 그 놀이터는 그의 인생에 남다른 추억을 남겼다. 운동장만한 커다란 통에 고두밥을 부려놓고 식히느라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하던 일꾼들의 모습, 자신의 키보다 컸던 술독들의 모습과 올려다볼 수 없어 ‘저 독에 무엇이 들어 있을까?’ 궁금해 하던 마음, 무언가를 발효되는 냄새에 숨이 막혔던 기억 등.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난 뒤부터 양조장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어요. 양조장은 아침이 지나면 한가해지는데, 그 틈에 양조장에 들어갈 기회를 호시탐탐 노렸죠. 어떤 날은 구수한 냄새가 양조장을 가득 매웠고, 그 다음엔 하얀 연기가 무성하게 피어올랐어요. 그 냄새가, 그 연기가 정말 궁금했죠. 그래서 제동생과 동네 친구 한 둘을 모아, 몰래 양조장에 들어갔어요. 냄새를 따라가 보니 큰 시루에서 고두밥을 찌고 있었어요. 사실 그땐 그게 고두밥인지도 몰랐고, 그저 그 냄새가 너무 구수해 좋았던 기억이 나요. 그 시절 그 냄새를 정말 좋아했어요. 푹~푹~푹~ 피어오르던 그 고소한 술밥 냄새는 지금도 잊지 못해요.”

12살, 막걸리 맛에 눈뜨다

그가 집안의 막걸리를 처음 맛본 나이는 12살이다. 선산으로 차례를 지내러 갈 때면 말통에 막걸리를 싣고 올랐고, 집안 어르신들은 아이들에게도 한 잔씩 나눠주셨다. 그때 맛본 막걸리의 맛은 정말 구수하고 향긋했다.

“저희 아버님이 사촌들이 많으세요. 저희 삼촌들 중에 장난치기 좋아하시는 분들이 계셨어요. 그분들이 제가 한 열두 살이 되었을때 ‘너 이제 술맛을 봐야 된다. 너희 집안이 양조장을 가업으로 하고있고, 니가 장남이니까 술 맛을 알아야 된다’면서 막걸리를 따라 주셔요. 그래서 전 뭣도 모르고 주시는 대로 받아 마셨죠. 처음 마셨을 때는 너무 달콤하고 구수했어요. 그 전에 몰래 훔쳐 먹은 밀가루 고두밥의 향이 그대로 그 술에 담겨 있었죠. 그래가지고 거의 한 사발을 다 마셔버렸어요. 그랬더니 삼촌들이 “어, 이 녀석 봐라”하시면서 더 먹이셨죠. 그러고 나니 어지러운 거예요. 경운기 뒤에 타고 겨우겨우 집에 왔는데, 막 하늘은 뱅글뱅글 돌며 시커멓고, 전신이 마비된 듯 무거운데, 가슴이 너무도 많이 뛰고, 그러다 누운 상태에서 다 토하고… 그래가지고 실은 제가 대학교 갈 때까지 막걸리를 못 먹었어요. 너무 그때 크게 당해가지고요.”

잊은 줄 알았던 막걸리의 맛과 향이, 그의 혀에 그의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 있었던 것을 깨달은 것은 대학시절이다.

“학교 축제기간이었어요. 학교엔 이미 저희 집안이 능곡에서 양조장을 한다는 소문이 나 있었죠. ‘양조장집 아들이 축제 때 막걸리 좀 보내라’고들 이야기를 했고, 그래서 아버님께 그 말씀을 드렸어요. 그 때가 처음으로 1.2리터짜리 페트병으로 막걸리가 나오던 시절인데, 아버님이 그 페트병에 담긴 막걸리 세 상자를 보내셨어요. 그리고 전 오랜만에 그 축제에서 배다리막걸리를 마셨죠. 학교 주변에서 주점에서 먹었던 실망스러운 막걸리 맛과 완전히 달랐어요. 진짜 맛있었어요. 바로 ‘이 맛’이었죠. 그래서 선배들에게 ‘이게 진짜 막걸리입니다’라며 선배들 앞에서 어깨에 힘 좀 줬었죠.”

날카로웠던 첫 음주의 아픈 추억은 열두 살의 소년이 스물한 살이 되며 자부심으로 변했다.

“배다리막걸리에 대한, 가업의 진가를 그때 알게 된 거죠.”

몇 해가 지난 1976년, 각각의 막걸리를 빚던 양조장들이 통합 됐다.

“당시 면허를 가지고 계시던 분들 모두 저희 능곡양조장에서 만들어지던 막걸리가 1966년부터 청와대 납품됐다는 사실을 다 아셨어요. 능곡양조장의 제조비법과 노하우를 공유할 수밖에 없었죠. 지금은 제조장명이 고양합동제조장으로 되어 있지만 ‘그 맛과 본질은 능곡양조장 것으로 유지하자’하면서 저희 집안의 막걸리 맛은 유지가 됐습니다. 이후 1979년까지도 청와대에서 저희 술을 납품받아서 드셨고, 배다리막걸리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막걸리로 유명해졌죠.”

5대에 만들어진 새로운 막걸리 역사 ‘누보’
2005년 문을 연 배다리박물관은 ‘5대를 이어 양조장을 하겠다’는 의지와 그 꿈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힘들게 세워진 박물관에는 술과 가문의 이야기를 알차게 담았다 그런데 아쉽게도 개관 10년 만인 2015년 배달리 박물관은 문을 닫았다. 박물관은 문을 닫았지만 박물관을 짓고, 운영하는 시간 속에는 그는 많은 것들을 배우며 알아갔다. 더불어 11년 간 꾸준히 술 공부를 이어갔다.



“제 나름대로 술 공부를 시작했어요. 먼저 책을 구입해 보려하니, 초창기에는 책도 많지 않더군요. 누군가 ‘어느 국세청에 가면 무슨 교육교재, 무슨 분석표가 있다’라는 말을 들으면 거기가 어디든, 어떤 책이든 달려가 관련 자료들을 다 섭렵했어요. 자료들 섭렵 후엔 실험도 하고 제 나름대로 술도 빚기 시작했죠. 그러면서 ‘배다리막걸리는 아버님이 한 것이고, 내 이름을 걸고 내놓을 수 있는 술을 만들자’라고 마음먹었죠.”

음식이나 식자내 앞에 ‘햇’자가 붙으면 그게 무엇이든 전혀 다른 존재가 된다. 햇쌀과 그냥 쌀은 다르며, 햇감자와 그냥 감자는 다르다. 2008년 그는 햅쌀을 이용해 ‘누보’라는 새로운 막걸리를 만들었다. 5대의 새로운 역사였다.

“매년 가을이면 햇포도로 갓 빚어 만든 와인 보졸레누보가 출시되고, 사람들은 그 와인을 즐깁니다. 거기에서 착안을 했어요. ‘가을 햅쌀로 만든 신선한 막걸리를 만들어보자’라고. 혼자 만든 건 아닙니다. 뜻을 같이 하신 분들과 같이 노력해 만들었어요. 가까운 양조장 사장님들, 그리고 저처럼 대를 잇는 사람들… 그 분들도 무언가 새로운 것이 필요하다 생각하던 시기였고, 서로의 마음이 하나로 모이며 누보는 만들어졌어요. 누보에는 고양시에서 나는 가장 좋은 쌀을 사용해 정말 신선한 막걸리를 만들었어요. 맛과 질을 인정받아. S백화점에 납품되기도 했습니다. 그 이전엔 햅쌀로 정말 신선하게 만든 유통된 막걸리가 없었기 때문이죠.”

그가 생각하는 술이 가지고 있는 생명력을 무엇일까.

“술은 말 그대로 살이 있는 생명체와 같아요. 꼭 ‘생’자가 붙어서 하는 소리가 아니에요. 수천 년의 전 세계사를 보더라고 술이 없던 역사는 없었어요. 술은 모든 역사와 함께 했고, 다가올 미래, 50년, 100년 후에도 술은 계속 살아서 생동하고 이어질 거예요.”

그가 즐겨 마시는 술은 사실 막걸리가 아닌 청주다. 우리나라의 각 지방마다 대를 이어 잘 빚어 나오는 청주들을 즐겨 마신다.

“전 술은 이렇게 즐기시길 권합니다. 첫 술자리에서 전통주를 드셨다면 다름의 자리에서도 전통주를 드시라고요. 첫 자리가 막걸리로 시작됐다면 다음 자리는 약주, 그 다음 증류식 소주… 이렇게요. 전통주를 마시다가 맥주나 위스키 등 외래 술이 섞이면 체내에서 좋지 않은 화학반응이 일어나고, 머리나 소화기관에 탈이 아기 쉬워요. 그러니 전통주로 시작한 날은 쭉~ 전통주로 술자리를 이어가세요. 그러면 다음날 몸도 마음도 굉장히 개운하고 상쾌합니다.”

구술정리. 이현주(여행 작가)

[참고자료]
▪ 홈페이지 : 경기도메모리 테마자료 - 경기도민 술 이야기
http://theme.library.kr/sool/intro.html
▪ 책자 : 술과 함께 삶을 빚어가는 사람들 / 경기도사이버도서관 편. 2016.
http://theme.library.kr/sool/book.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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