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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17.05.08 경기도민이야기 3. “술과 함께 삶을 빚어가는 사람들” (2) - 가장 작은 양조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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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25 14:02

[이달의 콘텐츠 ] 술과 함께 삶을 빚어가는 사람들 7

이달의 콘텐츠 – 경기도민이야기 3.
“술과 함께 삶을 빚어가는 사람들” 일곱 번째 이야기


이번 호에서는 고양시 전시영·이기중 부부의 술과 함께 한 삶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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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들과 마실 술 담는 부부

 

“저를 위한 술을 빚고, 그 술에 어울리는 맛깔스런 안주를 정성스레 만들어내는
 아내는 제 삶의 가장 큰 선물입니다.”
“아내가 빚은 술은, 정신을 혼란스럽게 지배하지 않아요.
아내의 마음이 담긴 술이라 오히려 더 깊은 마음을 만들어 냅니다.”
“저는 ‘이’씨이고 아내는 ‘전’씨에요. 그래서 우리 부부를 ‘이심전심’이라 말합니다.”

 

 

 

 

느낌으로, 마음으로 술을 빚는 여인

 

‘꾼’이란 어떤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또는 즐기는 방면의 일을 잘하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14년 전 고양시의 한적한 산자락에 삶을 꾸린 전신영 씨. 곱고 선한 얼굴로 마음을 담아 철마다 술을 빚는 그녀는 진정한 ‘술꾼’이다. 술을 전혀 입에 대지 못하면서도 철마다, 재료에 따라 좋은 이들과 나눠 마실 술을 정성스레 빚기 때문이다.

 

“처음 술을 빚기 시작한 게 한 17~8년 전인 것 같아요. 처음엔 남편의 권유로 술을 빚기 시작을 했어요. 그런데 자꾸 하다보니까 매력이 있더라고요. 뭐라고 할까… 상대방이 제 술을 맛보고 ‘맛있다’, ‘좋다’ 그러면 ‘아 그럼 이번에는 이렇게 담가봐야지’, ‘다음에는 이런 재료를 넣어봐야지’ 이러면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술 빚기를 계속 하게 되더라고요.”

 

그러기를 18년, 이제는 술을 만들고, 나누는 그 자체가 즐거워져 고단한 술 빚기를 이어가고 있다.
전신영 씨는 전통 가양주는 술이 아닌 음식이라 말한다. 더불어 적당히 즐기면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녀가 힘들어도 계속해서 남편을 위해, 마음 닿는 이들을 위해 술을 빚는 이유다. 지금까지 몇 가지 정도의 술을 빚었을까.

 

“글쎄요. 정확히 세어보질 않아서… 술의 종류별로 거의 다 해봤던 것 같아요. 배우면서는… 그런데 지금은 꼭 정해진 레시피 대로 빚지는 않아요. 담글 때 마다 제 느낌대로 빚고 있어요. ‘이번에는 조금만 담가야지’라고 마음을 먹으면 본래 레시피 보다 물을 조금 첨가해 빚고, ‘좀 더 독하게 진하게 하고 싶다’ 그러면 보통 때보다 누룩을 더 넣어서 강하게 빚고, ‘부드럽게 하고 싶다’ 그러면 또… ”

 

술 빚는 기법을 갖춘 후 자신만의 양조법을 더해 이 집만의, 전신영 씨 만의 술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누가 레시피를 가르쳐 달라고 하면 난 ‘없다’ 그래요, 사실 정말 정해진 레시피가 없으니까요.”

 

더불어 그녀는 술 빚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연의 온도’라 말한다. 자연이 만들어 주는 온도에 맞춰 술을 빚을 때 가장 완성도 높은 술이 만들어 지기 때문이다.

 

“전 여름하고 겨울엔 술을 빚지 않아요. 봄하고 가을에만 담그죠. 온도 때문이에요. 봄, 가을이면 술 담그기에 가장 적정한 온도가 만들어져요. 그때 담그면 실패할 확률도 적고 술이 더 맛있게 만들어지죠.”

 

가양주는 우리나라의 김치나 장류처럼 익히고, 삭히는 발효음식이다. 그런 만큼 예민하고 어렵기도 하다.

 

“술 빚기에 실패할 때도 있어요. 사실은 많죠 뭐… 술은 참 예민해요. 예를 들어 술을 빚는 과정에서 고두밥이 안 식었다든가, 조금이라도 미지근하게 두면 술이 금세 쉬어요. 또 술 담그는 환경이 다 다르고, 온도도 변하다 보니, 누군가 성공한 술 빚는 법이 우리 집에서는 안 되는 경우도 있어요. 그래서 술 빚는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많이해요. ‘이쪽 집에서는 술이 잘 됐는데, 저쪽 집에서 했더니 술이 안돼’라고.”


365일 술을 마시는 남자

 

이 집에는 또 다른 술꾼이 산다. 365일 아내가 빚은 술을 마시며 삶의 행복을 느낀다는 이기풍 씨다. 전신영 씨의 남편인 그는 스스로를 행운아라 말하며, 지금의 아내를 만난 것은 삶의 큰 기쁨이라고도 말한다.

 

“365일, 매일 저녁 아내가 차려주는 술상으로 저녁밥을 대신해요. 아내가 빚은 술은 정신을 혼란스럽게 지배하지 않아요. 자신을 돌아보고, 잊고 있던 감성을 깨우는 술입니다. 아내의 마음이 담긴 술이라 더 깊은 마음을 만들어내는 듯합니다.”

 

365일, 매일 술을 마시기란 쉽지 않다. 술을 잘 마시기도 해야 하지만, 술에 대한 남다른 애정으로 술을 즐길 수 있는 사람만이 가능한 일이다. 이기풍 씨에게 술이 좋은 이유, 술을 마시는 이유를 물었다.

 

“술은 굳은 의식을 깨울 수 있다고 들었어요. 그게 일종의 꿈을 꾼다든지… 현실하고 다른 또 하나의 의식의 세계가 있는데, 그게 바로 변성의식이라는 얘기를 누군가 하더라고요. 전 그 의식의 세계를 즐겨요. 매일 똑같은 현실에 맨날 똑같이만 사는 게 아니라, 술 한 잔 먹었을 때 다른 의식으로서 내가 흐뭇하고… 그리고 술로 인해서 고정관념을 조금 버릴 수 있는 것 같아요. 불교에서는 ‘탐욕하지 마라, 성질내지 마라, 어리석지 말라’ 이랬는데 술 한 잔 먹으면 ‘야 그게 무슨 말이야’ 이렇게 돼. 너무 탐내지 말라고 ‘너무’ 자를 붙여야지… 이 세상 탐내지 않고 무슨 힘으로 살아요. 나는 술 한 잔 먹으면 이런 힘이 생겨요.”

 

술이 좋은 또 다른 이유는 관계 때문이다. 술은 상대를 보다 친밀하게 느끼게 하고, 이야기를 이어가는 힘을 지녔단다.

 

“며칠 전에 도자기를 빚는 친구가 날 위해 도자기를 구웠어요. 한 낮에 도자기를 준다고 만났는데, 낮엔 술을 안 마시니까… 만났는데 할 얘기가 없어요. 그 친구하고 한 시간 반을 앉아 있는데 그렇게 지루할 수 없었어요. 나도 그 친구도… 술만 있었어 봐요. 세 시간 네 시간 동안 이야기가 술술술 이어지지. 술이 관계의 윤활유에요.”

 

 

아끼고 탐할 벗들과 마시는 술, 무우주

술을 전혀 마시지 못하는 여자와 술 마시기를 심히 좋아하는 남자의 결혼은 쉽지 않아 보인다. 전신영 씨는 어떤 마음으로 결혼을 결심했을까.

 

“사실 전 몰랐어요. 술을 좀 마시는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술을 즐기는 줄은요. 결혼을 하고 보니까 술을 너무 좋아하는 거네요. 난 술 먹는 사람이 별로 안 좋았었는데… 어쩌다 술 먹는 사람이랑….”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이기풍 씨가 빙긋이 웃더니 한 마디 던진다.

 

“이 사람 팔자에요.”

 

그의 말이 맞는 듯도 하다. 술도 못하는 그녀가, 술 먹는 걸 싫어하는 그녀가, 이제는 남편을 위해 20년 가까이 술을 빚고 있으니 말이다.

 

“이사람 술 먹는 게 싫지는 않아요. 적당히 마실 줄 알고, 무엇보다 술 끝이 좋아요. 만약 주사가 있고, 안 좋으면 못 먹게 하겠죠. 그런데 그러질 않아요. 제가 ‘이제 고만 드세요’ 하면 고만 드시고, 딱 절제를 해요. 그리고 우리는 십 몇 년 동안 매일 저녁 술상을 차려요. 이 사람이 좋아하는 약주에 간단한 안주를 더해 술상을 봐요. 그게 저녁이고, 이제는 술상을 보고, 술상을 받는 게 일상이에요.”

 

매일 저녁 이 집엔 풍류가 넘친다. 아내가 차려내온 술상에 앉아, 그는 행복감을 느끼며 나름의 풍류를 즐긴다.

“술 한 잔 먹으면 떠오르는 사람도 있고, 그러다 안부도 묻고, 그런 마음에 한잔 더 기울이면 있으면 마음이 감성적으로 변해 혼자 생각도 많이 해요. ‘내가 그때는 왜 그랬었지’ 하며, 돌아보기도 하고, 그러다 피리를 불기도 하고, 술도 술이지만 그 분위기를 즐기는 저녁이 참 좋아요.”

 

이 부부에게 좋은 술이란 어떤 술일까

 

“글쎄 난 좋은 술이란 ‘우리 집 술’이에요. 나가서 아무리 좋은 술을 먹어 봐도 입맛에 안 맞아요. 그리고 내가 좀 특이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방금 만든 술보다는 이렇게 숙성이 된 술을 좋아해요. 난 전문가도 아니고, 다른 술은 잘 몰라요. 저에겐 우리 집 술이 제일 좋아요.”

“좋은 술은 그냥 가미 안 된 그런 술이죠. 머. 집에서 김치 담그듯이 그냥, 발효시켜서 담근 술이 몸에도 좋고, 바깥에서 먹는 술은 안 좋은 것들이 가미된 술이 많잖아요. 우리집 김치처럼 순수하게 누룩, 물, 쌀 그걸로만 담근 술이 가장 좋은 술 같아요.”

 

구술정리. 이현주(여행 작가).

 

 

[참고자료]
〇 홈페이지 : 경기도메모리 테마자료 - 경기도민 술 이야기
   http://theme.library.kr/sool/intro.html
〇 책자 : 술과 함께 삶을 빚어가는 사람들 / 경기도사이버도서관 편. 2016.
   http://theme.library.kr/sool/book.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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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25 13:50

[이달의 콘텐츠] 술과 함께 삶을 빚어가는 사람들 6

경기도민이야기3.

"술과 함께 삶을 빚어가는 사람들"  여섯번째 이야기

 

양평군 지평면에서 지평막걸리 직매장을 운영하는 정환진님의 이야기입니다.

 


한 가족의 희로애락 담긴 두 평 직매장

 

 

식구들의 밥벌이였고, 인생의 한이 된 지평막걸리

 

평면에 가면 어디서든 지평막걸리가 보인다. 마트, 편의점, 식당… 어디에서든 막걸리를 만나고, 맛보고 살 수도 있다. 지평막걸리 판매처가 지평면 곳곳에 있지만, 지평면을 찾는 사람들이 지평막걸리를 가장 많이 구매하는 곳은 지평막걸리 직매장이다. 직매장에 들어서니 목발을 짚은 주인장이 반긴다.

 

 

 

“내 고향은 강원도 홍천이야. 지평면에 온 지는 40년이 좀 넘었지. 지평막걸리 직매장은 1980년도 6월 20일부터 했나… 오래됐지.”

 

그에게 일이자, 식구들의 밥벌이이자, 생의 동반자가 된 막걸리는, 한편으로는 그의 인생의 한이기도 하다

 

“홍천에서는 농사지었지. 그러다 평택으로 가서 정미소 생활을 하다가 지평면까지 흘러들어 왔지. 이곳에서 막걸리 직매장을 하다 다리만 하나 잃어버렸어. 지평막걸리를 2톤이나 실은 차에 치여서… 한 달 넘게 병원에 있다 나왔지. 엄청 고생했어.”

 

그의 한쪽 다리를 앗아간 막걸리이지만 그는 막걸리를 놓을 수 없었다. 아니 더 치열하게 365일 하루도 빠짐없이 막걸리를 붙들고 살았다.

 

“이 직매장을 시작하고, 365일 하루도 쉬는 날이 없었어. 아프다고 배달 안 해 본 적도 없고, 40년 동안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매일 같이 한쪽 발로 팔고, 배달하고… 어쩔 수가 없었어. 새끼들이 6남매야, 그것들 먹여 살리려면 하루도 쉴 수가 없지. 이젠 우리 딸들이 간호사가 셋이고, 치과기공사가 하나 있고… 고생한 보람은 있어.”

 

40년 막걸리를 팔아온 이는 막걸리를 대하는 법도, 마시는 법도 다를 듯하다. 지평막걸리를 가장 맛있게 먹는 법을 물었다.

 

“막걸리는 만들어 바로 나온 것보다 며칠 묵은 게 더 맛있어. 양조장에서 나온 지 한 3~4일이 지나면 막걸리가 사이다 같이 변해. 숙성되면서 진짜 맛이 올라오지. 또 작은 병보다는 큰 병이 더 맛있고”

 

 

술 마실 시간이 없는 막걸리 직매장 주인

 

막걸리를 좋아하느냐, 즐겨 마시느냐 물으니 의외의 답이 돌아온다.

 

“난 막걸리를 안 먹어, 40년이나 장사를 했는데 뭘 또 먹어 지겹게… 그래도 낮에 농사일할 땐 막걸리만큼 좋은 술이 없지. 그런데 난 운전을 해야 하니까 못 먹지, 그리고 막걸리는 너무 빨리 배만 부르고, 오줌 싸러 자주 다녀야 되고… 나처럼 다리 불편한 사람에게는 안 좋은 술이야. 그리고 난 10시면 들어가서 자야 해, 새벽 2~3시면 나와야 하니까. 그래서 실상은 막걸리를 마실 시간이 없어.”

 

툭툭 던지듯 답하는 그의 말에서, 그의 절뚝이는 걸음에서, 얼굴에 깊게 패인 주름에서 그가 그간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는지, 그리고 얼마나 고단한 인생을 꾸려왔는지가 말없이 전해진다.

 

“먹으려면 소주를 먹어야지, 막걸리는 배만 불러. 난 몸이 아파서 소주를 많이 먹어… 하루 종일 이 다리 하나로 버티고, 이리저리 다니고 나면 엄청 힘들어, 그래서 술을 먹지. 안 그러면 힘들어 잠도 못 자.”

 

싫어서가 아니라 몸의 불편으로 못 마시는 막걸리, 즐겁자고 마시는 술이 아니라 아픔을 잊기 위해, 지친 몸을 달래기 위해 마시는 소주… 그와 이야기를 나눌수록 마음 한켠이 먹먹해진다.

 

“그래도 괜찮아. 막걸리 직매장 해서 애들 안 굶기고 다 가르쳤으니까. 막내가 대학생인데, 방학이면 와서 가게도 보고 그래…”

 

시골길에 자리한 낡고 오래된, 작은 직매장이지만 가게 안쪽에 CCTV가 설치되어 있다.

 

“도둑을 맞고 나서 CCTV 달았지. 내가 배달을 나가 있는 사이에 돈을 훔쳐 갔어. 누가 계획적으로 한 거야. 주말엔 관광버스가 많이 오거든, 토요일이나 일요일은 막걸리가 많이 팔려, 우린 남 노는 날 더 바쁜 거야. 주말에 손님들이 우르르 내려 너도나도 한꺼번에 막걸리를 사면 그럼 정신이 없어. 그걸 노린 거야, 버스가 딱 들어올 때를 기다렸다가 손님들이 내리니까 전화를 걸어서는 나를 저기 50리 되는 곳으로 배달을 시키더라고, 집사람 혼자서 우글대는 손님들 틈에서 정신 없을 때 돈을 들고 튄 거야. 종이가방 있잖아. 그래 쇼핑백, 거기에 돈을 담아 들고 갔어…”

 

주말이 바쁘면, 한가한 평일에는 쉬어도 되지 않을까.

 

“아이들이 많다 보니까… 가진 돈은 없지, 고향은 떠나왔지. 생떼같은 자식들은 쑥쑥 크고, 돈 나갈 곳은 많고, 하루가 멀다하고 애들은 돈 달라 하고… 쉴 수가 없었지. 그래도 하루하루 벌어 애들 손에 돈 쥐여 주는 재미로다가 그렇게 살았지….”

 

막걸리에 닭발 안주를 팔던 시절

 

전화를 받은 그가 배달을 나가고 나니 그의 안사람이 직매장을 지킨다. 그녀의 고향도 강원도 홍천이다.

 

“직매장이 지금의 자리로 옮기지는 한 25년 됐어요. 처음 가게는 도로 건너편에 있었어요. 하나로마트 옆에. 지금은 외지인들이 지평막걸리를 사 가지만 옛날에는 동네 분들만 찾아먹던 술이었어요. 그래서 그땐 직매장을 하는 가게에서 막걸리도 팔고, 안주도 팔았어요. 안주는 돼지머리도 눌러서 팔고, 닭발도 무치고… 별의별 안주를 다했지.”

 

이젠 음식을 팔래야 팔 수도 없다. 인터뷰를 하는 사이사이 막걸리를 사려는 손님들이 수시로 찾아든다. 이젠 굳이 안주까지 팔지 않아도 술이 술술 팔린다.

 

“직매장엔 밀 막걸리도 있고, 쌀 막걸리도 있지만 이젠 쌀을 더 많이 먹지. 팔리기도 쌀이 많이 나가. 두 술의 차이가 있다면 사람들이 그러더라고 밀이 좀 더 텁텁하다고, 그래도 밀 막걸리는 좋아하는 사람은 또 꼭 밀 막걸리만 먹지…”

 

또 손님이 들어오고, 이야기는 끊어지고, 기다리는 사이 다시 손님이 찾아든다. 언제 한가하시냐 여쭈니 잠시도 몸을 쉬지 않으며 답한다.

 

“난 평생을 놀아 본 적이 없어, 사람이 시도 때도 없이 오니까. 가게도 쉬어 본 적이 없어… 그래도 얘기 듣고 싶으면 또 와… 그런데 난 바빠…”

 

 

구술정리. 이현주(여행 작가).

 

 

[참고자료]


〇 홈페이지 : 경기도메모리 테마자료 - 경기도민 술 이야기
   http://theme.library.kr/sool/intro.html
〇 책자 : 술과 함께 삶을 빚어가는 사람들 / 경기도사이버도서관 편. 2016.
   http://theme.library.kr/sool/book.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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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02 09:45

[이달의 콘텐츠] 술과 함께 삶을 빚어가는 사람들 5

경기도민이야기3.

"술과 함께 삶을 빚어가는 사람들" 다섯번째 이야기

 

 

 

<경기도민이야기 3>는 일상생활 속에서 사람들에게 매우 가까운 존재인 술을 매개체로 떠올릴 수 있는 삶의 이야기를 찾아 나서 이야기를 구술채록 하였습니다.

구술내용을 바탕으로 많은 경기도민이 내용을 함께 할 수 있도록 전시기획물을 구성하여 고양아람누리도서관(7월)에서 부터 양평중앙도서관(8월), 포천중앙도서관(9월)에서 전시가 운영됩니다. 근처에 거주하시는 분은 도서관을 방문해보면 좋겠습니다.

“술과 함께 삶을 빚어가는 사람들” 다섯 번째 이야기입니다.
이번 호에서는 고양시 박상빈님의 술과 함께한 삶의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합니다.

술향기와 함께 자란 아이

고두밥 짓는 향기에 피어난 옛 기억

“아야, 가서 탁배기 한 사발 받아오너라”

아버지의 이 말씀이 떨어지면 양은 주전자를 들고 술도가로 달려갔던 유년의 기억을 품은 이들이 있다. 막걸리 심부름을 다니던 그 시절 동네마다엔 양조장 있었고, 삐그덕~ 술도가의 물을 열고 들어서면 코끝 알싸한 막걸리 냄새가 풍겨왔다. 막걸리를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이들은 주전자 주둥이에 입을 대고 몰래 막걸리 서리를 했다. 이제는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볼 법한 이 풍경 속에서 삶을 시작하고, 보석 같은 유년의 추억을 품은 이가 있다. 5대째 가업을 이어가고 있는 배다리막걸리의 박상빈 대표다.



“제가 1963년도에 능곡양조장 뒤 사택에서 태어났어요. 사실 아주 어릴 때의 기억은 없어요. 기억이 시작되는 시기는 69년에서 70년 초쯤 이에요. 가장 강렬하게 남아 있는 기억은 우리 집이 다른 집보다 굉장히 크다는 기억이에요. 집에서 양조장을 한다는 사실도 인지 못하고, 양조장과 집의 구분도 하지 못했던 거죠. 무엇보다 당시 집에서 바깥으로 나가려면 어린애 총총 걸음으로 대문까지 한참을 걸어 내려가야 했어요. 마당도 대문도 다른 집과는 스케일이 달랐고요. 굉장히 큰 철대문이었는데, 그 문으로 트럭들도 드나들었으니까요.”

어린 시절, 정확히는 초등학교 때까지 그에겐 집이 양조장이고, 양조장이 놀이터였다. 그리고 그 놀이터는 그의 인생에 남다른 추억을 남겼다. 운동장만한 커다란 통에 고두밥을 부려놓고 식히느라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하던 일꾼들의 모습, 자신의 키보다 컸던 술독들의 모습과 올려다볼 수 없어 ‘저 독에 무엇이 들어 있을까?’ 궁금해 하던 마음, 무언가를 발효되는 냄새에 숨이 막혔던 기억 등.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난 뒤부터 양조장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어요. 양조장은 아침이 지나면 한가해지는데, 그 틈에 양조장에 들어갈 기회를 호시탐탐 노렸죠. 어떤 날은 구수한 냄새가 양조장을 가득 매웠고, 그 다음엔 하얀 연기가 무성하게 피어올랐어요. 그 냄새가, 그 연기가 정말 궁금했죠. 그래서 제동생과 동네 친구 한 둘을 모아, 몰래 양조장에 들어갔어요. 냄새를 따라가 보니 큰 시루에서 고두밥을 찌고 있었어요. 사실 그땐 그게 고두밥인지도 몰랐고, 그저 그 냄새가 너무 구수해 좋았던 기억이 나요. 그 시절 그 냄새를 정말 좋아했어요. 푹~푹~푹~ 피어오르던 그 고소한 술밥 냄새는 지금도 잊지 못해요.”

12살, 막걸리 맛에 눈뜨다

그가 집안의 막걸리를 처음 맛본 나이는 12살이다. 선산으로 차례를 지내러 갈 때면 말통에 막걸리를 싣고 올랐고, 집안 어르신들은 아이들에게도 한 잔씩 나눠주셨다. 그때 맛본 막걸리의 맛은 정말 구수하고 향긋했다.

“저희 아버님이 사촌들이 많으세요. 저희 삼촌들 중에 장난치기 좋아하시는 분들이 계셨어요. 그분들이 제가 한 열두 살이 되었을때 ‘너 이제 술맛을 봐야 된다. 너희 집안이 양조장을 가업으로 하고있고, 니가 장남이니까 술 맛을 알아야 된다’면서 막걸리를 따라 주셔요. 그래서 전 뭣도 모르고 주시는 대로 받아 마셨죠. 처음 마셨을 때는 너무 달콤하고 구수했어요. 그 전에 몰래 훔쳐 먹은 밀가루 고두밥의 향이 그대로 그 술에 담겨 있었죠. 그래가지고 거의 한 사발을 다 마셔버렸어요. 그랬더니 삼촌들이 “어, 이 녀석 봐라”하시면서 더 먹이셨죠. 그러고 나니 어지러운 거예요. 경운기 뒤에 타고 겨우겨우 집에 왔는데, 막 하늘은 뱅글뱅글 돌며 시커멓고, 전신이 마비된 듯 무거운데, 가슴이 너무도 많이 뛰고, 그러다 누운 상태에서 다 토하고… 그래가지고 실은 제가 대학교 갈 때까지 막걸리를 못 먹었어요. 너무 그때 크게 당해가지고요.”

잊은 줄 알았던 막걸리의 맛과 향이, 그의 혀에 그의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 있었던 것을 깨달은 것은 대학시절이다.

“학교 축제기간이었어요. 학교엔 이미 저희 집안이 능곡에서 양조장을 한다는 소문이 나 있었죠. ‘양조장집 아들이 축제 때 막걸리 좀 보내라’고들 이야기를 했고, 그래서 아버님께 그 말씀을 드렸어요. 그 때가 처음으로 1.2리터짜리 페트병으로 막걸리가 나오던 시절인데, 아버님이 그 페트병에 담긴 막걸리 세 상자를 보내셨어요. 그리고 전 오랜만에 그 축제에서 배다리막걸리를 마셨죠. 학교 주변에서 주점에서 먹었던 실망스러운 막걸리 맛과 완전히 달랐어요. 진짜 맛있었어요. 바로 ‘이 맛’이었죠. 그래서 선배들에게 ‘이게 진짜 막걸리입니다’라며 선배들 앞에서 어깨에 힘 좀 줬었죠.”

날카로웠던 첫 음주의 아픈 추억은 열두 살의 소년이 스물한 살이 되며 자부심으로 변했다.

“배다리막걸리에 대한, 가업의 진가를 그때 알게 된 거죠.”

몇 해가 지난 1976년, 각각의 막걸리를 빚던 양조장들이 통합 됐다.

“당시 면허를 가지고 계시던 분들 모두 저희 능곡양조장에서 만들어지던 막걸리가 1966년부터 청와대 납품됐다는 사실을 다 아셨어요. 능곡양조장의 제조비법과 노하우를 공유할 수밖에 없었죠. 지금은 제조장명이 고양합동제조장으로 되어 있지만 ‘그 맛과 본질은 능곡양조장 것으로 유지하자’하면서 저희 집안의 막걸리 맛은 유지가 됐습니다. 이후 1979년까지도 청와대에서 저희 술을 납품받아서 드셨고, 배다리막걸리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막걸리로 유명해졌죠.”

5대에 만들어진 새로운 막걸리 역사 ‘누보’
2005년 문을 연 배다리박물관은 ‘5대를 이어 양조장을 하겠다’는 의지와 그 꿈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힘들게 세워진 박물관에는 술과 가문의 이야기를 알차게 담았다 그런데 아쉽게도 개관 10년 만인 2015년 배달리 박물관은 문을 닫았다. 박물관은 문을 닫았지만 박물관을 짓고, 운영하는 시간 속에는 그는 많은 것들을 배우며 알아갔다. 더불어 11년 간 꾸준히 술 공부를 이어갔다.



“제 나름대로 술 공부를 시작했어요. 먼저 책을 구입해 보려하니, 초창기에는 책도 많지 않더군요. 누군가 ‘어느 국세청에 가면 무슨 교육교재, 무슨 분석표가 있다’라는 말을 들으면 거기가 어디든, 어떤 책이든 달려가 관련 자료들을 다 섭렵했어요. 자료들 섭렵 후엔 실험도 하고 제 나름대로 술도 빚기 시작했죠. 그러면서 ‘배다리막걸리는 아버님이 한 것이고, 내 이름을 걸고 내놓을 수 있는 술을 만들자’라고 마음먹었죠.”

음식이나 식자내 앞에 ‘햇’자가 붙으면 그게 무엇이든 전혀 다른 존재가 된다. 햇쌀과 그냥 쌀은 다르며, 햇감자와 그냥 감자는 다르다. 2008년 그는 햅쌀을 이용해 ‘누보’라는 새로운 막걸리를 만들었다. 5대의 새로운 역사였다.

“매년 가을이면 햇포도로 갓 빚어 만든 와인 보졸레누보가 출시되고, 사람들은 그 와인을 즐깁니다. 거기에서 착안을 했어요. ‘가을 햅쌀로 만든 신선한 막걸리를 만들어보자’라고. 혼자 만든 건 아닙니다. 뜻을 같이 하신 분들과 같이 노력해 만들었어요. 가까운 양조장 사장님들, 그리고 저처럼 대를 잇는 사람들… 그 분들도 무언가 새로운 것이 필요하다 생각하던 시기였고, 서로의 마음이 하나로 모이며 누보는 만들어졌어요. 누보에는 고양시에서 나는 가장 좋은 쌀을 사용해 정말 신선한 막걸리를 만들었어요. 맛과 질을 인정받아. S백화점에 납품되기도 했습니다. 그 이전엔 햅쌀로 정말 신선하게 만든 유통된 막걸리가 없었기 때문이죠.”

그가 생각하는 술이 가지고 있는 생명력을 무엇일까.

“술은 말 그대로 살이 있는 생명체와 같아요. 꼭 ‘생’자가 붙어서 하는 소리가 아니에요. 수천 년의 전 세계사를 보더라고 술이 없던 역사는 없었어요. 술은 모든 역사와 함께 했고, 다가올 미래, 50년, 100년 후에도 술은 계속 살아서 생동하고 이어질 거예요.”

그가 즐겨 마시는 술은 사실 막걸리가 아닌 청주다. 우리나라의 각 지방마다 대를 이어 잘 빚어 나오는 청주들을 즐겨 마신다.

“전 술은 이렇게 즐기시길 권합니다. 첫 술자리에서 전통주를 드셨다면 다름의 자리에서도 전통주를 드시라고요. 첫 자리가 막걸리로 시작됐다면 다음 자리는 약주, 그 다음 증류식 소주… 이렇게요. 전통주를 마시다가 맥주나 위스키 등 외래 술이 섞이면 체내에서 좋지 않은 화학반응이 일어나고, 머리나 소화기관에 탈이 아기 쉬워요. 그러니 전통주로 시작한 날은 쭉~ 전통주로 술자리를 이어가세요. 그러면 다음날 몸도 마음도 굉장히 개운하고 상쾌합니다.”

구술정리. 이현주(여행 작가)

[참고자료]
▪ 홈페이지 : 경기도메모리 테마자료 - 경기도민 술 이야기
http://theme.library.kr/sool/intro.html
▪ 책자 : 술과 함께 삶을 빚어가는 사람들 / 경기도사이버도서관 편. 2016.
http://theme.library.kr/sool/book.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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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08 09:48

경기도민이야기 3. “술과 함께 삶을 빚어가는 사람들” (2) - 가장 작은 양조장 이야기

 

2016, <경기도민이야기>는 일상생활 속에서 사람들에게 매우 가까운 존재인 술을 매개체로 떠올릴 수 있는 삶의 이야기를 찾아 나섰습니다. 전국적으로 쌀로 유명한 경기도는 좋은 쌀과 물의 영향으로 다양한 지역 술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경기도 전역을 대상으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수집하고 싶었지만, 일정과 여건상 허락하지 않아 경기북부지역에 한하여 구술작업을 진행했습니다. 그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이번 호에서는 포천시 양북면 전기보님의 술과 함께한 삶의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합니다.

 

 

 

가장 작은 양조장 이야기

 

 

전 술빚기가 굉장히 어려운 것인 줄로만 알았어요
물론 제대로 만들려면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돼지만,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아주 짧게 배운 지식으로 술을 담아 보니까 술이 맛있게 되는 거예요.
아 이게 별게 아니구나!’ 그런 생각이 들면서 술에 차츰 빠져들게 된 거에요.”

 

 

유년 시절의 곳곳에 자리하는 술의 기억

 

고향이란 말에는 아련한 애잔함, 따뜻함 그리고 그리움의 정서가 담겨 있다. 그렇다면 고향의 원래 뜻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태어난 곳을 고향이라 하지만 사실 고향의 개념을 정의하기란 쉽지 않다. ‘자기가 태어나서 자란 곳일 수도 있지만 살았던 곳 중에 마음에 깊이 아로새긴 곳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포천에서 청소년기를 보내고, 연어처럼 회귀하듯 쉰이 넘어 다시 돌아온 전기보 씨에게 포천은 마음속 깊이 간직된 그립고 정든 곳이다.

 

전 포천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다녔습니다. 서울에서 대학을 마치고, 직장생활을 하다가 쉰일곱에 다시 포천에 내려와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작은 양조장을 운영하면서 거기서 만든 술을 맛볼 수 있는 주막을 운영하고 있어요.”

 

술과의 만남은 때로는 사람과의 만남처럼 강렬하게 기억된다. 또한 누군가의 삶을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작은 양조장을 운영 중인 전기보 씨가 그러했다. 몇 년 전 누군가 우연히 건넨 가양주의 맛에, 그는 어린 시절의 술 맛이 떠올렸고, 술과 함께하는 삶을 살기로 마음먹었다.

 

술 하면 어렸을 때 기억이 먼저 떠올라요. 어린 시절부터 할머님을 따라다니며 집집의 가양주를 맛보았던 기억이 있어요. 포천에 와서도 술의 기억이 있어요. 겨울이 되면 이 동네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래서 어른들은 매일 모여서 화투를 치고, 저에게 꼭 술심부름을 시켰죠. 그럼 노란 주전자에 막걸리를 사다 날랐어요. 그 당시에는 면 단위마다의 양조장 체제였어요. 영북면 운천 양조장에서 나오는 막걸리를 받아다 먹었는데, 술도가에 가면 큰 항아리 같은 데서 바가지로 주전자에 막걸리를 떠줬죠. 어렸을 땐 먹을 것도 없고, 또 그게 굉장히 궁금하고, 막걸리가 독한 술이 아니기 때문에 주전자 주둥이에 입을 대고 한 모금씩 마셔보고그게 그렇게 맛있었어요.”

 

그가 어린 시절에 기억하는 또 따른 술은 밀주. 그 시절엔 밀주 단속이 있어 집에서 함부로 술을 담가 먹을 수 없었다. 술이나 누룩을 세무서나 직원에게 들키면 살림이 망할 정도로 벌금이 나와 술을 빚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명절 때나 제사 때가 되면 아낙네들이 제사에 올릴 제주만큼만 몰래 집에서 빚는 집이 많았다.

 

어머님이 원래 경주 최가신데, 집안에서 대대로 옛날 누룩을 만들던 방식이 있었어요. 술을 빚는 방법도요. 술 빚는 솜씨가 좋으셨죠. 그래서 명절이나 제사가 있을 때면 집에서 몰래 술을 담갔어요. 당시엔 다른 집에서도 몰래 밀주를 담갔죠. 가끔은 이 부근에서 옥수수로 담근 밀주를 아버님이 사 오셔서 나눠 먹기도 했으니까요. 아버님이 술을 굉장히 좋아하셨죠.”

 

대한민국에서 가장 작은 양조장 주인

 

친구가 건넨 술 한 잔에 반해 전통주 빚기에 들어선 그는 술을 배우면서는 우리 술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에 눈을 떴다.

 

“2014년은 제가 쉰일곱 살 되던 해에요. 그해 1월 술을 배우면서 많은 것을 알게 됐죠. 우리는 막걸리를 당연히 우리 술이라 생각하는데, 교육을 받다보니 정확하게 따져보면 우리 술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실제 막걸리는 쌀, 누룩, 물로 만들어요. 그런데 지금 우리가 마시는 막걸리는, 쌀도 우리나라 쌀이 아니고, 누룩도 우리의 것이 아니에요. 물은 우리 물로 만들긴 하지만, 물만 가지고 우리 술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죠. 그리고 술을 빚는 방식도 옛날 우리 선조들이 빚는 방식이 아니었어요.”

 

술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흥미는 술에 대한 그의 열정을 더 자극했고, 차츰 차츰 알아가는 술빚기의 매력은 그의 몸과 마음을 더 바쁘게 움직이게 했다.

 

전 술빚기가 굉장히 어려운 일인 줄로만 알았어요. 물론 제대로 만들려면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돼지만, 무식하면 용감하다고아주 짧게 배운 지식으로나마 술을 담가 보니까 술이 맛있더군요. 그러면서 차츰 술에 빠져들었어요.”

 

그가 양조장까지 열게 된 데에는 또 다른 계기가 있었다. 같은 해 3, 그는 사진 전시회를 계획하고 있었다. ‘이번 전시회는 좀 특별하고 해보고 싶다는 고민에 빠져 있을 때, 누군가 술과 사진을 같이 전시해 보라 권했다.

 

사람들이 술을 맛보더니 정말 좋아하더군요. 그런데 지금 와 생각해보니, 사실 전시회장을 찾은 사람들은 그 술들을 좋아 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막걸리 맛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가 진짜 우리 술을 맛볼 수 있는 기회였고, 막걸리와 비교해서 월등하게 좋은 맛과 향을 지닌 술이고, 거기에 스토리까지 있으니이 술은 이런 술이고, 저 술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다 했더니. 사람들이 술에 대해서 굉장히 호감을 갖고 야 이걸 갖고 장사를 해봐라하더군요.”

 

그래서 그는 다시 장고에 들어갔다. 양조장에서 만든 술을 소비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 양조장에서 만든 술을 우리 주막에서 먹도록 하자라는 결론을 얻었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오직 이곳에만 있는 술

 

포천하면 명성산, 그리고 명성산 하면 또 하나 떠오르는 것이 억새다. 가을이면 명성산 정상은 일렁이는 억새로 뒤덮인다. 그는 억새로 술을 빚을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한의사에게 억새의 성분 분석을 의뢰 하고, 고문헌도 찾아보며 술에 명성산 억새를 집어넣을 수 있는 여러 방법을 찾았어요. 여러 자료를 검토하다보니 식약처 자료 중에 억새의 어린 순은 식용으로 쓸 수 있다고 나와 있더군요. 억새의 어린 순을 달여서 제가 만든 술에 첨가를 해서 빚고 이름을 궁예의 눈물이라고 만들었죠. 이 술은 정말 술 맛도 그렇고, 우리 경기도 포천 산정호수의 혼이 담긴 그런 술이에요.”

 

술을 빚은 지 3, 그에게는 술을 빚는 나름의 철학이 있다. ‘술은 음식이고, 음식이기 때문에 맛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술은 음식이니까 맛있는 음식처럼 정성을 더해 술을 만들려 노력하고 있어요. 또 저는 음식 자체가 아트라고 생각해요. 음식이란 예술작품처럼 섬세한 손길이 닿아 만들어 져야 좋은 맛과 좋은 향을 품을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그 음식을 먹은 사람이 그 맛에 만족을 해야 에너지가 되는 거잖아요. 저는 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그런 관점에서 전 정말 이 쌀, , 누룩만 가지고 이렇게 다양하고 맛있는 술을 만들 수 있고, 그렇게 만들어진 술을 사람들이 맛보고 맛있다고 할 때마다 술 빚기는 계속해야만 한다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구술정리. 이현주(여행 작가)

 

[참고자료]

홈페이지 : 경기도메모리 테마자료 - 경기도민 술 이야기

http://theme.library.kr/sool/intro.html

책자 : 술과 함께 삶을 빚어가는 사람들 / 경기도사이버도서관 편. 2016.

http://theme.library.kr/sool/book.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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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08 09:42

경기도민이야기 3. “술과 함께 삶을 빚어가는 사람들” (1) - 막걸리에 바친 청춘

경기도민이야기 3. “술과 함께 삶을 빚어가는 사람들

 

 

술이라는 주제와 함께 경기도민이야기 세 번째가 발간되었습니다.

살아가면서 술은 우리에게 어떠한 존재일까요?

아마도 누구나 살아가면서 술과 관련된 일화나 경험담은 조금씩은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꼭 어떤 사건이 아니더라도 술과 함께 했던 시간, 사람, 음식, 이야기들이 기억 속에 담겨있겠지요.

 

술은 알코올이 1퍼센트 이상 포함된 음료를 말합니다. 예로부터 술은 예술인이나 창작자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기도 하지만,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위로나 기쁨의 순간을 함께하는 소통의 수단으로, 또는 걱정과 근심을 토로하는 배출구 역할도 함께 해왔습니다. 술술 들어가서 술이라는 이름이 되었다는 이야기처럼 많이 마시거나 마시지 않거나 우리 삶에서 술은 쉽게 가까이 접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2016, <경기도민이야기>는 일상생활 속에서 사람들에게 매우 가까운 존재인 술을 매개체로 떠올릴 수 있는 삶의 이야기를 찾아 나섰습니다. 전국적으로 쌀로 유명한 경기도는 좋은 쌀과 물의 영향으로 다양한 지역 술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경기도 전역을 대상으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수집하고 싶었지만, 일정과 여건상 허락하지 않아 경기북부지역에 한하여 구술작업을 진행했습니다.

 

 

남들은 막걸리를 술이라지만

내게는 밥이나 마찬가지다

막걸리를 마시면

배가 불러지니 말이다

 

- 천상병 막걸리중 일부.

 

천상병시인은 막걸리를 밥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먼 과거가 아니더라도 부모님, 조부모세대에는 술이 밥이기도 한 시절이 있었습니다. 구술자들은 지난 과거부터의 기억을 들춰 현재에 이르기까지 술과 관련된 다양한 일상 이야기들을 들려주셨습니다. 배고파서 술을 만들다 남은 술지게미를 먹었던 이야기, 막걸리 심부름을 다녀오면서 조금씩 그 달달함에 취한 이야기, 본인은 마시지 않지만 매해 남편을 위해서 정성스럽게 술을 담그는 부인의 사랑이야기, 가업의 대를 이어가는 술도가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이번 호에는 포천시 임북실님의 막걸리에 함께한 삶의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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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에 바친 청춘

 

 

 

 

막걸리는 맛있다. 갓 빚은 막걸리도, 며칠간 지긋하게 숙성된 막걸리도 맛있다. 이 막걸리는 유독 잘 어울리는 것들이 있다. 비 오는 날, 들기름 냄새 고소한 도토리묵, 그리고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들려주는 주인장의 옛이야기포천시 이동면에 가면 그런 곳이 있다.

공간이 안주고 주인장이 양념이 되는, 오래되고 소박하지만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최후의 대폿집 같은 곳이

 

내 나이 칠십 아홉, 이름은 임북실이, 고향은 강원도 주문진이야. 남편을 따라 포천에 들어 왔어. 옛날에 애들 아버지가 주문진에서 군대생활을 할 적에 나한테 연애를 걸어가지고그러다 결혼을 하고, 결혼했으니 따라서 와야지. 애들 아버지 고향이 포천이었어그때만 해도 연애뭐 별거 아니야. 몇 번 만나고, 다방에 가서 차나 마시고, 다 그런 거지 뭐내가 포천에 스물다섯 살에 왔을기야. 결혼은 주문진에서 하고 여길 왔지.”

 

포천에 들어온 그녀는 지금 이 자리에서 막걸리 직매장을 시작했다. 고향을 떠나며 그녀의 막걸리 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막걸리직매장을 내가 스물여섯 살 때부터 했으니까, 시방 칠십 아홉이거든, 그러니까 54년째 이걸 하고 있지. 왜 시작하긴, 그때는 할 게 없었으니까. 또 집 바로 옆에 양조장이 있으니 우리 애들 아버지가 막걸리를 팔면 되겠다해서공장에서 직매장을 차려 준거지, 그때 양조장하고 사이가 좋았어. 사람들이 착했어.”

 

그녀가 포천에 와 처음 자리 잡은 곳은 바로 지금의 가게 자리다. 이사 한번을 안가고 54년간 이 자리에서 집을 고치고 늘리며 막걸리를 팔았다. 그래서 이 공간에는 54년의 세월이, 지난 세월 그녀의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녀에게는 딸 둘, 아들 둘이 있다. 이 한자리에서 막걸리를 팔아 키우고 가르쳐 시집 장가를 보냈다

 

그러느라 청춘을 막걸리에 바쳤지인생살이 막걸리로 다 끝난 거야.” 

 

54년 전, 차도 흔하지 않고, 냉장고도 없던 시절의 막걸리를 파는 풍경은 어떠했을까

 

공장서 막걸리를 지게로, 물지게 있지, 그거로 날았어. 나중에는 공장에서 차로 배달을 해줬지만 처음엔 내가 다 날랐어. 그땐 냉장고가 없지, 그래서 땅을 파고 독을 두 개 묻어. 시원한 땅이고 머고 그냥 파서 독을 묻어 놓으면 그게 땅으로 들어가니 시원하지항아리가 컸지, 항아리 하나는 서 말 들어가고 또 하나는, 두어 말 들어가고그래서 양쪽에 닷말 들어갔지 그 항아리를 채우려면 물지게로 막걸리를 다섯 번은 날라야 했어매일은 아니고, 술이 잘 나가면 내일 또 가지고 오지만 술이 안 나가면 못 나르지.” 

 

그녀의 남편은 한량이었다 한다. 젊고 곱던 그녀가 막걸리를 나를 때 한번도 도와주지 않았다.

 

 “인생 얘기하면 끝도 없지, 행복이란 게 없었어. 애들 아버지가 내가 마흔 둘인가 셋일 때 돌아가셨어. 그때 애들이 어렸어. 근데 그때부터 여기(백운계곡)가 관광지가 되면서 술이 좀 많이 나갔지. 그래서 막걸리 팔아 애들 공부 가르치면서, 시집 장가도 보내며 지지고 볶고 살아 온거야. 나는 아주 막걸리라면 징글징글해. 그래도 막걸리는 맛있지.” 

 

오가던 술잔에 흘러간 할머니의 인생이 너울대며 그려진다. 그리웠던 시간들, 가슴 아팠던 세월들이었다.

 

 막걸리 팔며 힘든 일 많았지. 옛날에는 막걸리가 구역제기 때문에, 술이 다른 지역으로 나갔다 걸리면 벌금이 나와. 누가 서울이나 이런데 가지고 가면, 이게 세무서 걸렸다 하면 벌금을 때려. 그래가지고 언젠가 의정부 세무서에 걸린 거야. 찾아가서 울며불며 사정사정 하니 혼자서 애 키우며 살고 이러니까 봐 주더라고그런 적도 있지사는 게 참 힘들었지.” 

 

그녀는 인생에 술이 있어서, 술을 마실 수 있어서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말한다. 그녀에게 막걸리는 힘든 시절을 버티게 한 힘이었고 풍류였다.

술과 함께 살아온 이들은 누구나 자신만의 주도, 또는 주법을 가지고 있다. 그녀 또한 막걸리를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을 알고 있을 듯했다. 막걸리는 언제 먹어야 맛있을까

 

배고플 때 먹어, 그때가 제일 맛있어

 

무릎을 탁 치게 하는 답변이다.

 

막걸리는 바로 가져와서 먹으면 맛이 없어, 3일 숙성시켜서 먹어야 더 맛있지. 첫날은 술이 좀 달아. 3일 지나야 숙성이 돼서 더 맛있지.”

 

 

그녀에게 있어 막걸리는 이동막걸리가 최고의 막걸리다. 꼭 이 지역에서 나는 술이기 때문만은 아니란다.

 

다른 지역 막걸리는, 강원도 옥수수 술 먹어 봤는데

이만(이동막걸리만) 못하더라고. 이동막걸리가 왜 맛있냐면 이 옆에 백운계곡에 가면 큰 박달바위가 있어, 그 바위에서 물이 흘러나오는데 그 물로 담가서 술맛이 좋은 기야. 우리가 반찬 할 때 간장이 맛있어야 다 맛있잖아. 똑같은 기야. 또 이동막걸리는 다른 술같이 골이 안 아파, 난 아침에 해장 안 해 냉수 한 그릇 딱 마시면 괜찮아.”

 

일흔 아홉, 고단한 나이지만. 그녀는 365일 아침 여섯시면 가게 문을 연다.

 

 “술이란 고만이 없어. 먹을 만큼 먹어야지맛있잖아 술막걸리와 인생을 살아보니 그래도 즐거워. 힘은 들지만, 징글징글도 하지만, 그걸 사랑해야지 어떡하니. 내 밥벌이인데한 때는 멀리 갈 맘도 있었어. 애들 때문에 살고살고 보니 또 희망이 있더라고.” 

 

경기도민이야기 홈페이지에 들어가시면 구술이야기, 동영상, 책자를 보실 수 있습니다.

 

구술정리. 이현주(여행 작가)

 

[참고자료]

홈페이지 : 경기도메모리 테마자료 - 경기도민 술 이야기

http://theme.library.kr/sool/intro.html

책자 : 술과 함께 삶을 빚어가는 사람들 / 경기도사이버도서관 편. 2016.

http://theme.library.kr/sool/book.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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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2 13:15

3.1 운동

<이달의 콘텐츠>

 

3.1 운동

 

 

3월이 들어서면 올해 98주년 3월1일 삼일절을 맞이하게 됩니다. 삼일절은 1919년 3월 1일 한일병합조약의 무효와 한국의 독립을 선언하고 비폭력 만세운동을 시작한 날을 기념하기 위한 국경일입니다.
3·1 운동(三一運動) 또는 3·1 만세 운동(三一萬歲運動)은 기미독립운동 또는 3·1 인민봉기라고도 불리기도 합니다. 대한제국 고종이 독살되었다는 고종 독살설이 소문으로 퍼진 것이 직접적 계기가 되었으며, 고종의 장례일(인산일)인 1919년 3월 3일에 맞추어 한반도 전역에서 봉기한 독립운동입니다.
만세 운동을 주도한 인물들은 민족대표 33인으로, 이들은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 소재한 태화관에서 조선이 독립국임을 선언하였고, 탑골공원에서는 경신학교출신 정재용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습니다. 약 3개월가량 전국적으로 시위와 폭동이 발생하였으며, 조선총독부는 강경하게 진압했습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유관순도 3.1운동으로부터 시작된 만세운동을 천안에서 주도하다가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사망하였습니다.

고종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모인 전국의 사람들의 많은 수가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는데 조선총독부의 공식 기록에는 집회인수가 106만여 명이고, 그 중 사망자가 7,509명, 구속된 자가 4만 7천여 명이었다고 합니다. 학자들의 견해에 의하면 약 50만 명 정도가 참여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으며 당시 조선 인구 중 2.76%에서 2.97%이 만세 운동에 참여한 것으로 집계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3·1 운동을 계기로 군사, 경찰에 의한 강경책을 펴던 조선총독부는 문화 통치로 정책을 바꾸게 됩니다. [출처 : 위키백과]


 

독립선언서의 도입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우리는 이에 조선이 독립국임과 조선인이 자주민임을 선언한다. 이 선언을 세계 온 나라에 알리어 인류 평등의 크고 바른 도리를 분명히 하며, 이것을 후손들에게 깨우쳐 우리 민족이 자기의 힘으로 살아가는 정당한 권리를 길이 지녀 누리게 하려는 것이다.

2. 반만 년이나 이어 온 우리 역사의 권위에 의지하여 독립을 선언하는 것이며, 이천만 민중의 정성된 마음을 모아서 이 선언을 널리 펴서 밝히는 바이며, 민족의 한결 같은 자유 발전을 위하여 이것을 주장하는 것이며, 누구나 자유와 평등을 누려야 한다는 인류적 양심이 드러남으로 말미암아 온 세계가 올바르게 바뀌는 커다란 기회와 운수에 발맞추어 나아가기 위하여 이를 내세워 보이는 것이니, 이 독립 선언은 하늘의 밝은 명령이며, 민족 자결주의에로 옮아가는 시대의 큰 형세이며, 온 인류가 함께 살아갈 권리를 실현하려는 정당한 움직임이므로, 천하의 무엇이든지 우리의 이 독립 선언을 가로막고 억누르지 못할 것이다.

 

독립선언서는 최남선이 초안을 작성하고 손병희를 비롯한 33명의 민족대표는 세계 만방에 독립을 선언하고 전국 곳곳에서 독립 만세를 외치기로 계획을 세웠습니다. 한용운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했습니다.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고 독립의 당위성을 밝힌 선언서로, 전국적 만세시위운동으로 확산시키는데 기여한 선언서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어, 2016년 10월 20일 2건의 문서에 대하여 대한민국의 등록문화재 제664-1호, 제664-2호로 각각 지정되었습니다.

독립선언서 전문은 교육자료로 구축되어 경기도메모리 사이트에서도 ‘독립선언서’로 검색하면 원문과 현대어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경기도내 시.군 지역에서 진행되었던 삼일만세운동에 대한 내용도 ‘삼일운동’이나 ‘독립운동’으로 검색하면 아래와 같이 24건의 자료가 검색되어 지역에서의 삼일운동에 대한 내용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경기도 전역에서 벌어진 삼일운동의 내용을 확인하고 싶다면 『경기도 항일독립운동사』 (경기도사편찬위원회, 1995년)를 읽어보는 것도 좋습니다.

 

 

 

경기도 3.1운동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숫자였으며 참가인원도 연 16만8,000여명에 달하였으며 3월 말부터 4월 초 사이 기간이 운동의 절정기였다고 합니다. 특히 시흥군. 고양군, 수원군에서 각각 23회, 33회, 21회의 시위운동이 전개되었습니다. 이처럼 경기도 3.1운동은 그 전 과정을 놓고 보면 전반적으로 농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에 의해 주도된 민중운동적 성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경기도 항일독립운동사. pp.497~505)

예나 지금이나 널리 주장을 알리기 위해서는 더불어 사람들이 함께 모여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인가 봅니다. 일제강점기 시대, 국가 독립을 위해 98년 전에 행한 만세운동의 정신이 지금은 올바른 나라세우기를 위한 광장문화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후손들에게 일일이 이름은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민족과 나라를 지키기 위해 함께했던 우리 선열들의 뜻을 새겨봅니다.

 

글. 경기도사이버도서관 사서 신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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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15 15:15

그때 그 시절 가격이 궁금하시나요? <가계부이야기>



예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들이 효과적으로 돈을 관리하기 위해서 가계부만한 것이 없다고 합니다. 가계부 쓰는 것은 누구나 한번쯤은 도전해봤을 만한 습관이죠. 최근에는 손으로 쓰는 가계부보다는 다양한 스마트폰 앱을 다운받아서 신용카드와 연계해서 이용하는 사람들도 많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가계부란 어떤 종류의 현금 또는 현물이 얼마나 증가되고 감소되어서 가정 경제 상태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으며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밝혀 주는 기록입니다. 따라서, 한 가정의 가계부는 곧 그 가정의 소비 생활 양식을 반영시켜 주게 됩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현재까지 밝혀진 자료에 의하면 가계부 기록의 시초는 조선 영조 때인 1733년에 작성된 박문수 종가의 가계부 ≪양입제출≫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합니다. 기록방법이 오늘날의 가계부와 비슷하게 되어 있는데, 수입으로서 논밭에서의 생산량, 각 지방에서 올라오는 선물, 농경지의 경작료 등을 합산한 다음, 이를 기반으로 매달 지출하는 액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당시의 생활비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명절을 쇠는 비용이며, 다음이 하인들의 새경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림1] 출처 : 중앙일보 | 사이즈960x915 |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처럼 조선시대 가계부는 단순히 개인의 자료가 아니라 후손들이 지난 과거의 생활상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한국전쟁 이후 근대에 들어서 우리의 삶은 급격한 변화를 겪어 왔습니다. 과거의 물가뿐만 아니라 거래되는 물건의 단위, 시간의 흐름에 따른 새로운 제품들 등장들도 들여다보는 데에도 가계부만한 자료가 없죠.

그렇다면 그때 그 시설 1978년도에는 콩나물이, 우유값, 목욕비가 얼마였을까요?
콩나물 50원, 담배 한갑이 300원, 계란한판이 1,200원, 우유 100원, 목욕비가 240원, 버스 100원, 라면 200원, 다방 차값은 600원이었답니다.

[그림6] 백인자 1978년 가계부

위 자료는 백인자님의 가계부입니다. 지난 30여년이 넘게 결혼한 직후 1978년부터 2012년까지 가계부를 꼬박 꼬박 작성해 오신 백인자님이 자신의 가계부 기록을 디지털화하여 기록자료로 남겨달라고 경기도사이버도서관에 기증해주셨습니다. 그 가계부들은 년도별로 디지털화 돼서 저희 [경기도메모리]사이트에서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주부들은 보통 매해 새해에 여성잡지의 부록이나 은행 등에서 나눠주는 가계부를 구해 많이 기록했습니다. 가계부 안에는 주부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살림과 요리에 관련한 여러 가지 정보들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또한 가계부는 단순히 자신의 수입과 지출을 논하는 장이기 보다는 틈틈이 개인의 경조사에 관련한 정보가 들어있고, 일부는 일기로도 활용되어 있기도 합니다. 가계부는 일반시민들이 살아 온 삶의 모습을 들여다보기 좋은 자료임에 틀림없습니다.

백인자님의 가계부를 통해 변해가는 가격을 한번 알아볼까요?



가계부에서는 정확하게 수량에 대한 정보가 없기 때문에 짐작으로 그 가격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백인자님의 가계부를 살펴보면서 그 분의 삶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결혼을 하고 시작한 살림살이, 아이가 생기고, 아이를 가르치기 위한 교육비 항목이 발견되고, 여행도 가고, 또 자녀를 결혼을 시키고 살아가는 모습을 간접적으로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식료품비의 쓰임새도 바뀌어 갑니다. 계란이 한판가격으로만 계산되다가, 어느 순간에는 개수로 10개단위로 나타나고, 우유는 낱개로 구입하다가 한 달 가격으로 다시 1000ml 용량에 따른 낱개 구입으로 크기에 따른 가격도 달라져갑니다. 1978년도에서는 언급되지 않았던 과일명도 나타나고, 과자 구입을 위한 지출도 나타납니다.

데이터를 살펴본 결과, 30여년동안 물가는 대략 10배 이상정도 상승한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그 삶의 현장을 한번 살펴보지 않으시겠어요?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소소한 일상의 기록 – 가계부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기록을 디지털화하고 싶으신 분은 경기도사이버도서관으로 연락해주세요. 항상 문은 열려있습니다.


참고자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경기도메모리 http://memory.library.kr


글쓴이. 신정아(경기도사이버도서관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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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15 15:03

수여선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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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25 14:24

이 달의 콘텐츠 : 경기도 한국전쟁 실향민 이야기

이번 달부터 새로운 코너가 생겼습니다. 경기도사이버도서관에서 서비스하고 있는 다양한 디지털콘텐츠를 여러분에게 소개하기 위해서입니다. 저희 사이트에서 서비스하고 있으나 그냥 지나치고 그 진가를 모르는 분들을 위한 특별 맞춤서비스입니다. 앞으로 많은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그 첫 번째로 올 초에 경기도사이버도서관이 구술채록을 기반으로 테마콘텐츠로 구축한
<경기도민이야기 1> “ 전쟁으로 고향을 떠나온 경기도민 이야기”를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http://theme.library.kr/korean-war/ 사이트를 통해 전체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올해는 한국전쟁 65주년입니다.
경기도사이버도서관도 한국전쟁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휴먼라이브러리 & 북콘서트] 행사를 기획했는데 메르스(중동호흡기질환)의 확산방지를 위해 아쉽게 취소하였습니다. 비록 행사를 치르지는 못했지만 우리는 지난 과거 역사의 사건들 속에는 미쳐 알려지지 않은 무수한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특히나 1950년대에 일어난 한국전쟁은 한국에 사는 모든 국민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삶의 터전이 바뀌었으며, 많은 도시들이 폐허가 되고 서로에게 총을 겨누며 공포 속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그 당시엔 누구나 생과 사를 넘나들면서 그 과정을 온몸으로 부딪쳐야만 했고 고단한 삶을 살아가야 했습니다.

지금 소개할 박순옥 할머니도 한 개인으로 그 시절을 통과해 살아오셨답니다.

" 파도는 나가기만 하는 거 아니야
  들어오면 또 그렇게 살면 되는 거야. 너나 내나 다 운세지
  어떻게 다 틀어막니? 나갈 운세에는 주저 없이 내보내.
  나갈 운세니까. 내가 어떻게 막니? 세상.
  그리고 조금만 더 참고 극복해 가.
  그럼 살길이 돌아온다. 살던 놈은 또 산다. 걱정하지마."

지금 만나뵈면 정말 그런 시절을 지내셨을까 할 정도로 정정하시고 하얗고 맑은 피부를 가지고 계신 박순옥 할머니는 올해 85세이십니다.
철원에서 태어나 부자집딸로 남부럽지 않게 자랐습니다. 하지만 해방 후 6.25가 발발하고 피난길에 오르고 경기도에서 정착해 살아왔습니다.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후 세상은 험악해져갔습니다.

“오빠, 엄마, 나 다 붙잡혀 갔지. 빨갱이한테 붙잡혀 갔지. 지주라고.
  남편은 똥통에 숨어서 간신히 모면했어. 빨갱이들이 후퇴를 하면서 우리를 붙잡아갔는데,
  오빠만 붙잡고 우리를 내주더라. 오빠를 고문하는데. 말도 못해…….
  눈이 펄펄 쏟아지는데 오빠를 발가벗겨놓고 고문을 하는 거야. 동생이 그걸 어떡해봐.
  이 얘기를 어디다 다해…….(울음) 같은 조선 사람끼리 서로 의지해 사는 거지.
  이럴 수 있냐고. 그냥 막 들이대니까 민청 남자들이 붙잡아. 그래서 ‘이 개새끼들. 너희들이
  뭔데 나를 붙잡아. 어째 사람들이 죄 없는 줄 뻔히 알면서 잡아다가 이 따위 짓거리를 하냐!’
  오빠가 그 고문을 당하고, 며칠 있다가 또 붙잡혀 가서 행방불명으로 죽은 거예요.”

그 과정을 겪고 난 후, 남으로 피난을 해야만 했죠.

“ 사람들이 (연탄 때문에) 눈만 빤질빤질, 모두 새까매.
  (피난민들의 몰골이) 짐승도 아니고 사람도 아니고. 미군들이 와서 ‘쏼라쏼라’ 하는데
  알아들을 수가 있나. 그렇게 가다 서다, 가다 서다 사흘을 가는데. 배가 고파 죽겠는 거야.
  피난 나올 때 이만큼 큰 통에 밥을 해 가지고 나갔는데.
  시할머니가, 아휴……. 내 식구가 최고지.
  글쎄 ‘아무개 아버지 이리 오소!’ 하면서 동네사람들을 먹이고 여자가 먹으면 뭐해 하고
  나를 못 먹게 하더라고. 고모는 뒤에서 손만 넣어서 주먹으로 퍼서 잡수시던데.
  나는 손 넣고는 못 먹겠소. 체면 가리다 보니 나만 굶은 거야.
  세상에. 한 끼 건너, 두 끼 건너, 세 끼 건너 다 죽게 생겼네.”

어렵게 수원으로 내려와 정착을 했고 시댁에서 운영하는 한약방에서 일하면서 대식구들을 뒷바라지하면서 살림을 불렸지만, 남편은 다른 여자들을 공공연하게 만나러 다니는 그런 세월을 견뎌내야 했습니다.
이제는 아들이 이어받아 운영하고 있는 한약방이 예전에 비해 잘 운영되지는 않지만 할머니는 이렇게 말합니다.

“ 없을 때는 공부하고, 있을 때는 보시하라고 했어.
  지금 공부해야 돼. 아버지 있을 적에 고통 안 받고 호강스럽게 살다가,
  어떻게 그렇게만 사니? 없을 적에 공부해야지.
  파도는 나가기만 하는 거 아니야. 들어오면 알게 되는 거야.
  돌부리 직접 차 본 사람이랑 알기만 하는 사람은 달라.
  사람이 살다보면 어려울 때도 있고 좋은 적도 있고 나쁜 적도 있지.
  어떻게 좋을 때만 있게 사냐.
  그 공간을 잘 메꿔서 살아놓으면 다 살길이 돌아온다. 걱정하지 마라.”


박순옥할머니의 육성을 듣고 싶다면 다음 사이트를 연결해보세요. 

https://youtu.be/X5-KLqvzGec


사실 평범해 보이는 주변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아보면 그 이야기 속에는 참 많은 역사가 숨어 있습니다. 이야기를 통해 다시금 역사를 기억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이야기를 듣다보면 사람이 희망입니다.

글쓴이. 신정아(경기도사이버도서관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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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18 16:35

정보야 놀자! 열다섯번째 지식정보서비스 10문 10답



1. 국내 학술논문 찾을 때 대표적인 정보원은 어디인가요?


국내 학술논문은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무료사이트와 상업기관에서 제공하는 유료서비스가 있습니다.

■ RISS (http://www.riss.kr) 
교육부 출연기관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이 제공하는 학술연구 정보서비스로 국내학위논문 124만 건을 비롯하여 학술지 논문을 연계해서 서비스 하고 있다. RISS 자체 제작 데이터는 무료원문을 볼 수 있지만, 민간 학술DB업체에서 구축한 데이터는 유료서비스로 운영되고 있다.

■ NDSL (http://www.ndsl.kr)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에서 운영하고 있는 NDSL은 과학기술분야의 학술논문 검색을 위한 사이트로 국내 논문지, 협회지, 기관지, 동향지 등에 수록된 논문을 무료로 원문제공하고 있다.

■ 국회전자도서관 (http://www.nanet.go.kr) 
1910년 이후 국내에서 발행된 정기간행물 중 의정활동에 필요하거나 학술적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기사를 선정, 색인하여 구축한 서지 DB를 제공하고 있다. 주요 검색항목은 기사명, 저자명, 키워드, 잡지명, 목차 등이다.

■ DBpia (http://www.dbpia.co.kr) 
국내학술지 서지정보화 원문정보를 제공하는 유료 전자저널 서비스사이트이다. 2014년 3월 기준 170만 편의 논문수를 수록하고 있다.

■ KISS (http://kiss.kstudy.com) 
국내 1,796여개의 학회 및 연구소에서 발행하는 학회지 및 연구간행물을 원문DB로 구축하여 제공하는 유료서비스 사이트 이다. 이외에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아카이브를 운영하고 있다.

2. 국내 행정기관에서 수행하는 정책연구용역 자료는 어디서 볼 수 있나요?


■ 프리즘 (prism) (http://www.prism.go.kr/) 
프리즘은 중앙행정기관에서 수행하는 정책연구 과정을 관리, 통합하고, 불필요한 연구용역을 억제하며 정책정보의 공동 활용을 위한 정보서비스로 국내 행정기관에서 수행한 용역보고서 및 연구 과제를 확인할 수 있다.

3. 문화관광정보에 대한 자료는 어디서 볼 수 있나요?


■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www.heritage.go.kr/) 
문화유산 디지털 허브는 문화재청을 비롯한 소속 및 유관기관의 각 시스템이 보유하고 있는 디지털 컨텐츠를 연계하여 문화유산에 대한 모든 컨텐츠를 통합서비스 하고 있다.

■ 국가문화국가 기록유산 (http://www.memorykorea.go.kr/) 
문화재청에서 운영하고 있는 사이트로 기록유산에 대해 종목별, 유형별, 시대별, 형태별, 시도별로 검색할 수 있다.

■ 문화포털 (http://www.culture.go.kr/) 
문화포털은 문화 소식, 공연전시 정보, 예술지식자료 등 다양한 문화·예술정보를 제공하며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운영하는 통합 문화정보 사이트이다. 

■ 관광지식정보서비스 (http://www.tour.go.kr/)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서 운영하는 관광지식정보시스템으로 관광DB 서비스를 통하여 통계, 지식, 법령, 자원DB를 기반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사전 (http://encykorea.aks.ac.kr/)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콘텐츠를 분야별, 유형별, 시대별로 검색하여 이용할 수 있다.

■ 경기도 문화재 (http://gjicp.ggcf.kr/archives/artworks/si-gun-munhwa1) 
경기도문화재연구원에서 운영하는 사이트로 도내 지정문화재 610건(국가지정 171건, 도 지정 424건, 시군지정 15건), 매장문화재(발굴유적) 50개소에 대한 설명과 사진, 관련 문헌목록 등 각각의 문화유산에 대한 종합정보를 볼 수 있다.

■ 경기도메모리 (http://memory.library.kr/) 
경기도사이버도서관에서 운영하고 있는 사이트로, 경기도내에서 생산되는 기록자료와 사진 등의 자료가 10,000여건 서비스되고 있다. 

4. 일본의 논문이나 보고서 등을 효과적으로 검색할 수 있는 사이트는?


■ CiNii (http://ci.nii.ac.jp) 
일본의 국립정보학연구소(National Institute of informatics, NII)가 운영하는 학술기사DB이다.

■ J-STAGE (https://www.jstage.jst.go.jp/) 
일본의 JST가 운영하는 일본 과학기술 전자저널 발행지원 시스템이다. 일본의 최신 논문의 원문뿐만 아니라 인용된 논문의 연계, 검색, 논문투고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5. 시장정보, 동향정보, 제품정보를 어디서 찾아야 하나요?


■ 전자정보센터 EIC (http://eic.re.kr) 
전자정보센터(Electronics information Center)는 전자부품연구원(KETI)에서 운영하는 IT분야 전문 정보 사이트이다. 중소기업을 위한 신속한 국내.외 업계 동향 및 각 분야의 심층분석 기술정보, 정부의 관련 예산 정책 등을 D/B화하여 인터넷을 통해 무료로 서비스하고 있다.

■ 금융감독원 DART (http://dart.fss.or.kr) 
전자공시시스템(DART ; Data Analysis, Retrieval and Transfer System)은 상장법인 등이 공시서류를 인터넷으로 제출하고, 투자자 등 이용자는 제출 즉시 인터넷을 통해 조회할 수 있도록 하는 종합적 기업공시 시스템이다.

■ IT Find (http://www.itfind.or.kr/)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에서 운영하는 사이트이다. IT FIND는 IT산업 전반에 관한 국내외 기술, 시장 및 경영 정보 등 각종 지식과 정보를 수집, DB화하여 IT관련 기업 및 기관에 제공함으로써 국가 IT 혁신역량을 제고할 목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 Global Information, Inc (http://www.giikorea.co.kr/) 
주)글로벌인포메이션에서 운영하는 사이트이다. 세계 6개국에 위치한 자체 네트워크와 비즈니스 파트너인 전세계 300여 유명 리서치사를 통하여 고객 여러분께 최고급 시장조사 정보를 제공하는 서비스이다. 

■ 미리안 (http://mirian.kisti.re.kr/) 
KISTI 에서 운영하는 미래유망기술포털- 미리안으로 기업에서 미래 유망기술을 발굴하여 사업화 가능성을 도와주는 신기술 정보 탐색 및 R&D 모니터링 사이트, 글로벌 동향브리핑, 이슈기술, 분석 미래기술연구 등을 서비스 한다.

■ 삼성경제연구소 (http://www.seri.org) 
국내외 경영, 경제, 산업, 정책분야의 다양한 이슈를 보고서 형태로 발행하여 서비스하고 있다.

■ LG 경제연구소 (http://www.lgeri.com) 
경제, 경영, 산업분야의 최신 동향과 이슈에 대한 분석 및 전망에 관한 정보를 보고서 형태로 발간하고 있다.

■ 야노경제연구소 (http://www.yano.co.kr) 
일본의 야노경제연구소는 각 산업별 시장규모, 기업 M/S, 장래예측, 연구동향 등 해당 주제의 종합적인 조사 분석 자료를 제작 발간하고 있다.

■ 후지메라종합연구소 (https://www.fuji-keizai.co.jp/) 
일본의 후지메라종합연구소는 다양한 산업분야의 시장조사, 컨설팅 정보 등을 제공한다.

6. 독서정보는 어디서 찾아야 할까요?


■ 북매직 (http://www.library.kr/bookmagic/index.do) 
경기도사이버도서관에서 운영하는 사이트로 다양한 주제별 독서활동에 대한 자료 및 독서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 국립중앙도서관 (http://www.nl.go.kr/ask/readSite/list.jsp)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운영하는 <사서에게 물어보세요> 사이트에서 추천도서 및 관련 사이트 정보 등 독서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 독서인 (http://www.read-kpipa.or.kr/)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운영하고 있는 사이트로 독서아카데미 및 추천도서 등의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 한국독서교육신문 (http://www.readingnews.kr/) 
도서관과 독서관련 뉴스, 북리뷰, 독서인 인터뷰 등의 내용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 독서신문 책과 삶 (http://www.bookandlife.co.kr/) 
명사칼럼, 서평, 독서가열전, 독서꽁트, 책속의 그림을 소개하는 독서그림판, 책읽는 진료실, 책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 스테디셀러 들여다보기 등의 내용을 제공하고 있다.

■ 나비 (http://www.nabeeya.net/nabee/index_wide.html) 
책읽는사회문화재단에서 발간하는 북 매거진으로 책 정보 및 신간도서에 대한 소개가 나와 있다.

7. 특허정보서비스는 어디서 찾아야 하나요?


■ KIPRIS 특허정보넷 (http://www.kipris.or.kr/) 
특허청이 보유한 국내외 지식재산권 관련 모든 정보를 DB 구축하여 이용자가 인터넷을 통해 이용할 수 있도록 운영되고 있는 대국민 특허정보서비스이다. 미국, 유럽 등 12개 나라의 해외특허 검색 서비스도 지원하고 있다.

8. 학술모임이나 회의명이 다양한 명칭으로 활용되고 있는데 각기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요?


학술회의가 컨퍼런스(conference), 컨벤션(convention), 워크숍(workshop), 심포지움(symposium), 콜로키움(colloquium), 포럼(forum), 세미나(seminar) 등 다양한 언어로 쓰이고 있는데 이들 간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 컨퍼런스(conference) : 컨벤션과 유사한데, 과학이나 학계에서 연구자들이 연구 활동과 성과, 공동연구, 연구결과 등을 발표하는 공식적인 회의이다. 본회의, 사교행사, 관광행사를 동반하고 전문적 문제를 토론하기 위한 모임이다.

■ 컨벤션(convention) : 산업단체나 전문협회 등의 연례회의를 의미한다. 한 개의 전문직종에 한해 정보를 전달하는 대규모의 형식이다. 

■ 워크숍(workshop) : 전문적인 기술 또는 아이디어를 실험적으로 실시하면서 검토하는 연구회 및 세미나를 뜻한다. 일종의 업무의 연장선상에서 개최되는 것으로 특정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이를 해결하기 위한 결론을 도출하기 위한 행사이다.

■ 심포지움(symposium) : 특정 주제를 놓고 연구. 토론하기 위한 전문가 모임이다. 하나의 주제를 놓고 2명 이상의 사람들이 각각 다른 각도에서 의견을 표시하는 지상토론회이다.

■ 콜로키움(colloquium) : 각 모임에서 다른 강사가 다른 주제에 대해서 이끌어가는 세미나나 미팅을 뜻한다.

■ 포럼(forum) : 특정 주제에 대해 관련 전문가들이 서로 함께 토론하거나 아니면 연사발표와 패널 토의로 이루어지는 형식으로 공개 토론회이다.

■ 세미나(seminar) : 대학에서의 토론식 수업이나 교육을 위한 세미나로 지식습득과 교육 목적을 띤 회의로 주로 강사와 참가자간의 토론이나 강의로 진행된다.

9. 저작물 이용허락 CCL에 대해 알고 싶어요


■ 크리에이티브 커먼스 코리아 사이트 : http://www.cckorea.org/ 
CCL [ creative common license]은 저작물 이용 허락. 저작권자가 저작물 사용 조건을 미리 제시해 사용자가 저작권자에게 따로 허락을 구하지 않고도 창작물을 사용할 수 있게 한 일종의 오픈 라이선스이다. 일반적으로 많이 쓰이는 저작물의 사용 조건을 규격화해 몇 가지 표준 라이선스를 정하고 있으며, 크게 ▲저작자 표시(attribution) ▲비영리(noncommercial) ▲2차 변경 금지(no derivative) ▲동일조건 변경 허락(share alike) 등 네 가지가 있다. 사진, 문서, 동영상 등에 CCL 마크가 있으면 저작물에 대한 이용 방법과 조건을 쉽게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저작권자에게 별도의 허락을 구하지 않고도 조건에 맞추어 자유롭게 창작물을 사용할 수 있다. 온라인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Wikipedia)’가 대표적이다.

현재 한국 · 일본 · 대만 등이 CCL 시스템을 개발해 도입 중이며, 독일 · 미국 · 이탈리아 · 캐나다 · 프랑스 등 전 세계 70여 개국에서 사용되고 있다.


■ 공공누리 http://www.kogl.or.kr/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및 공공기관 보유 공공저작물의 자유이용공공기록물에 대해서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업무상 작성하여 공표한 저작물이나 계약에 따라 저작재산권의 전부를 보유한 저작물을 국민이 자유롭게 이용 가능하다.

10. 디지털 원문을 제공하지 않는 자료를 보고 싶다면?


인터넷을 통해서 원하는 자료를 다 얻을 수는 없지요. 이럴 때 우리는 공공도서관을 찾아갑니다. 하지만 지역에 있는 도서관에 책이 검색되지 않는다면 책바다 서비스를 이용하세요. 

■ 책바다 서비스 http://www.nl.go.kr/nill/ 
책바다 서비스는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운영하고 있는 상호대차 서비스로 이용자가 원하는 자료가 지역의 해당 도서관에 없을 경우, 협약을 맺은 다른 도서관에 신청하여 소장 자료를 서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전국 도서관 자료 공동 활용 서비스입니다.

※ 참고자료
- 지식정보활용 백문백답. 한국과학기술정보원. 2012.

글쓴이. 신정아(경기도사이버도서관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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