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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야 놀자!

[이달의 콘텐츠 ] 술과 함께 삶을 빚어가는 사람들 7

이달의 콘텐츠 – 경기도민이야기 3.
“술과 함께 삶을 빚어가는 사람들” 일곱 번째 이야기


이번 호에서는 고양시 전시영·이기중 부부의 술과 함께 한 삶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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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들과 마실 술 담는 부부

 

“저를 위한 술을 빚고, 그 술에 어울리는 맛깔스런 안주를 정성스레 만들어내는
 아내는 제 삶의 가장 큰 선물입니다.”
“아내가 빚은 술은, 정신을 혼란스럽게 지배하지 않아요.
아내의 마음이 담긴 술이라 오히려 더 깊은 마음을 만들어 냅니다.”
“저는 ‘이’씨이고 아내는 ‘전’씨에요. 그래서 우리 부부를 ‘이심전심’이라 말합니다.”

 

 

 

 

느낌으로, 마음으로 술을 빚는 여인

 

‘꾼’이란 어떤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또는 즐기는 방면의 일을 잘하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14년 전 고양시의 한적한 산자락에 삶을 꾸린 전신영 씨. 곱고 선한 얼굴로 마음을 담아 철마다 술을 빚는 그녀는 진정한 ‘술꾼’이다. 술을 전혀 입에 대지 못하면서도 철마다, 재료에 따라 좋은 이들과 나눠 마실 술을 정성스레 빚기 때문이다.

 

“처음 술을 빚기 시작한 게 한 17~8년 전인 것 같아요. 처음엔 남편의 권유로 술을 빚기 시작을 했어요. 그런데 자꾸 하다보니까 매력이 있더라고요. 뭐라고 할까… 상대방이 제 술을 맛보고 ‘맛있다’, ‘좋다’ 그러면 ‘아 그럼 이번에는 이렇게 담가봐야지’, ‘다음에는 이런 재료를 넣어봐야지’ 이러면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술 빚기를 계속 하게 되더라고요.”

 

그러기를 18년, 이제는 술을 만들고, 나누는 그 자체가 즐거워져 고단한 술 빚기를 이어가고 있다.
전신영 씨는 전통 가양주는 술이 아닌 음식이라 말한다. 더불어 적당히 즐기면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녀가 힘들어도 계속해서 남편을 위해, 마음 닿는 이들을 위해 술을 빚는 이유다. 지금까지 몇 가지 정도의 술을 빚었을까.

 

“글쎄요. 정확히 세어보질 않아서… 술의 종류별로 거의 다 해봤던 것 같아요. 배우면서는… 그런데 지금은 꼭 정해진 레시피 대로 빚지는 않아요. 담글 때 마다 제 느낌대로 빚고 있어요. ‘이번에는 조금만 담가야지’라고 마음을 먹으면 본래 레시피 보다 물을 조금 첨가해 빚고, ‘좀 더 독하게 진하게 하고 싶다’ 그러면 보통 때보다 누룩을 더 넣어서 강하게 빚고, ‘부드럽게 하고 싶다’ 그러면 또… ”

 

술 빚는 기법을 갖춘 후 자신만의 양조법을 더해 이 집만의, 전신영 씨 만의 술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누가 레시피를 가르쳐 달라고 하면 난 ‘없다’ 그래요, 사실 정말 정해진 레시피가 없으니까요.”

 

더불어 그녀는 술 빚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연의 온도’라 말한다. 자연이 만들어 주는 온도에 맞춰 술을 빚을 때 가장 완성도 높은 술이 만들어 지기 때문이다.

 

“전 여름하고 겨울엔 술을 빚지 않아요. 봄하고 가을에만 담그죠. 온도 때문이에요. 봄, 가을이면 술 담그기에 가장 적정한 온도가 만들어져요. 그때 담그면 실패할 확률도 적고 술이 더 맛있게 만들어지죠.”

 

가양주는 우리나라의 김치나 장류처럼 익히고, 삭히는 발효음식이다. 그런 만큼 예민하고 어렵기도 하다.

 

“술 빚기에 실패할 때도 있어요. 사실은 많죠 뭐… 술은 참 예민해요. 예를 들어 술을 빚는 과정에서 고두밥이 안 식었다든가, 조금이라도 미지근하게 두면 술이 금세 쉬어요. 또 술 담그는 환경이 다 다르고, 온도도 변하다 보니, 누군가 성공한 술 빚는 법이 우리 집에서는 안 되는 경우도 있어요. 그래서 술 빚는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많이해요. ‘이쪽 집에서는 술이 잘 됐는데, 저쪽 집에서 했더니 술이 안돼’라고.”


365일 술을 마시는 남자

 

이 집에는 또 다른 술꾼이 산다. 365일 아내가 빚은 술을 마시며 삶의 행복을 느낀다는 이기풍 씨다. 전신영 씨의 남편인 그는 스스로를 행운아라 말하며, 지금의 아내를 만난 것은 삶의 큰 기쁨이라고도 말한다.

 

“365일, 매일 저녁 아내가 차려주는 술상으로 저녁밥을 대신해요. 아내가 빚은 술은 정신을 혼란스럽게 지배하지 않아요. 자신을 돌아보고, 잊고 있던 감성을 깨우는 술입니다. 아내의 마음이 담긴 술이라 더 깊은 마음을 만들어내는 듯합니다.”

 

365일, 매일 술을 마시기란 쉽지 않다. 술을 잘 마시기도 해야 하지만, 술에 대한 남다른 애정으로 술을 즐길 수 있는 사람만이 가능한 일이다. 이기풍 씨에게 술이 좋은 이유, 술을 마시는 이유를 물었다.

 

“술은 굳은 의식을 깨울 수 있다고 들었어요. 그게 일종의 꿈을 꾼다든지… 현실하고 다른 또 하나의 의식의 세계가 있는데, 그게 바로 변성의식이라는 얘기를 누군가 하더라고요. 전 그 의식의 세계를 즐겨요. 매일 똑같은 현실에 맨날 똑같이만 사는 게 아니라, 술 한 잔 먹었을 때 다른 의식으로서 내가 흐뭇하고… 그리고 술로 인해서 고정관념을 조금 버릴 수 있는 것 같아요. 불교에서는 ‘탐욕하지 마라, 성질내지 마라, 어리석지 말라’ 이랬는데 술 한 잔 먹으면 ‘야 그게 무슨 말이야’ 이렇게 돼. 너무 탐내지 말라고 ‘너무’ 자를 붙여야지… 이 세상 탐내지 않고 무슨 힘으로 살아요. 나는 술 한 잔 먹으면 이런 힘이 생겨요.”

 

술이 좋은 또 다른 이유는 관계 때문이다. 술은 상대를 보다 친밀하게 느끼게 하고, 이야기를 이어가는 힘을 지녔단다.

 

“며칠 전에 도자기를 빚는 친구가 날 위해 도자기를 구웠어요. 한 낮에 도자기를 준다고 만났는데, 낮엔 술을 안 마시니까… 만났는데 할 얘기가 없어요. 그 친구하고 한 시간 반을 앉아 있는데 그렇게 지루할 수 없었어요. 나도 그 친구도… 술만 있었어 봐요. 세 시간 네 시간 동안 이야기가 술술술 이어지지. 술이 관계의 윤활유에요.”

 

 

아끼고 탐할 벗들과 마시는 술, 무우주

술을 전혀 마시지 못하는 여자와 술 마시기를 심히 좋아하는 남자의 결혼은 쉽지 않아 보인다. 전신영 씨는 어떤 마음으로 결혼을 결심했을까.

 

“사실 전 몰랐어요. 술을 좀 마시는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술을 즐기는 줄은요. 결혼을 하고 보니까 술을 너무 좋아하는 거네요. 난 술 먹는 사람이 별로 안 좋았었는데… 어쩌다 술 먹는 사람이랑….”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이기풍 씨가 빙긋이 웃더니 한 마디 던진다.

 

“이 사람 팔자에요.”

 

그의 말이 맞는 듯도 하다. 술도 못하는 그녀가, 술 먹는 걸 싫어하는 그녀가, 이제는 남편을 위해 20년 가까이 술을 빚고 있으니 말이다.

 

“이사람 술 먹는 게 싫지는 않아요. 적당히 마실 줄 알고, 무엇보다 술 끝이 좋아요. 만약 주사가 있고, 안 좋으면 못 먹게 하겠죠. 그런데 그러질 않아요. 제가 ‘이제 고만 드세요’ 하면 고만 드시고, 딱 절제를 해요. 그리고 우리는 십 몇 년 동안 매일 저녁 술상을 차려요. 이 사람이 좋아하는 약주에 간단한 안주를 더해 술상을 봐요. 그게 저녁이고, 이제는 술상을 보고, 술상을 받는 게 일상이에요.”

 

매일 저녁 이 집엔 풍류가 넘친다. 아내가 차려내온 술상에 앉아, 그는 행복감을 느끼며 나름의 풍류를 즐긴다.

“술 한 잔 먹으면 떠오르는 사람도 있고, 그러다 안부도 묻고, 그런 마음에 한잔 더 기울이면 있으면 마음이 감성적으로 변해 혼자 생각도 많이 해요. ‘내가 그때는 왜 그랬었지’ 하며, 돌아보기도 하고, 그러다 피리를 불기도 하고, 술도 술이지만 그 분위기를 즐기는 저녁이 참 좋아요.”

 

이 부부에게 좋은 술이란 어떤 술일까

 

“글쎄 난 좋은 술이란 ‘우리 집 술’이에요. 나가서 아무리 좋은 술을 먹어 봐도 입맛에 안 맞아요. 그리고 내가 좀 특이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방금 만든 술보다는 이렇게 숙성이 된 술을 좋아해요. 난 전문가도 아니고, 다른 술은 잘 몰라요. 저에겐 우리 집 술이 제일 좋아요.”

“좋은 술은 그냥 가미 안 된 그런 술이죠. 머. 집에서 김치 담그듯이 그냥, 발효시켜서 담근 술이 몸에도 좋고, 바깥에서 먹는 술은 안 좋은 것들이 가미된 술이 많잖아요. 우리집 김치처럼 순수하게 누룩, 물, 쌀 그걸로만 담근 술이 가장 좋은 술 같아요.”

 

구술정리. 이현주(여행 작가).

 

 

[참고자료]
〇 홈페이지 : 경기도메모리 테마자료 - 경기도민 술 이야기
   http://theme.library.kr/sool/intro.html
〇 책자 : 술과 함께 삶을 빚어가는 사람들 / 경기도사이버도서관 편. 2016.
   http://theme.library.kr/sool/book.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