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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들의 책 이야기

양치기 소년은 정말 거짓말을 했을까?

양치기 소년은 정말 거짓말을 했을까?


유현미 (평택시립도서관 사서)


【 도서 양들을 부탁해 김세진 글 그림 비룡소 그림책 : 5세부터


양치기 소년은 정말 거짓말을 했을까? ’

어린 시절 <양치기 소년>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었다. 초등학교 입학 전, 잠시 소치기 소녀? (목동소녀)로 지냈던 나에게 <양치기 소년> 우화는 그저 거짓말을 경계하는 교훈동화가 아닌 섬뜩한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양치기 소년>이야기는 막막함과 두려움, 외로움과 심심함이 교차하는 혼란한 감정을 부여안고 홀로 소 떼를 이끌고 산을 오르던 어린 소녀에게로 나를 데려 갔다. 어느 하루 어떻게든 소떼들을 잡아보려 안간힘을 쓰던 소녀를 남겨두고 소들이 고개 너머로 달음질쳐 사라져 버린 날, 황망히 버려진 소녀는 자신도 모르게 악을 쓰고 울었다. 산에 풀어 놓은 동물들이 얼마나 변화무쌍하게 움직이는 지 알고 있었기에 소녀는, 소년이 늑대다 하고 외치는 사이 늑대가 사라진 게 아닐까? 안타까웠다. 어쩌면 심심하고 두렵고 외로운 양치기 소년이 나뭇잎을 흔드는 바람 소리나, 눈 앞에서 황급히 사라져 버린 들짐승을 보고도 늑대인 줄 지레 놀란 게 아닐까 생각했다. 혹시 너무 심심한 나머지 누군가 찾아와 주기를 고대하고 늑대야 를 외친 건 아닐까? 어린 나는 자꾸만 거짓말쟁이양치기 소년에게 감정이입하고 있었다. 설사 어른들을 놀리기 위한 거짓말이었다 해도 어른들이 ( 그것도 마을 사람들 모두가!) 위험에 처한 아이를 그렇게 차갑게 외면해도 되는 걸까? 의문이 들었다. 어른들은 절대 아이에게 이유 같은 건 묻지도 않고 결코 잘못을 용납하는 법이 없는 매정한 사람들인지 두려웠던 것이다.



양들을 부탁해 는 작가가 마치 어린 시절 나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이야기를 새롭게 구성하여 위안을 던진다. 작가는 거짓말쟁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고 교훈동화에 갇혀 있던 <양치기 소년>을 구해내어 성장동화의 무대 위에 올려 놓는다. 소년은 스스로의 힘으로 멋지게 위기를 극복하고 양들뿐만 아니라 빨간 모자까지 구해내는 용감한 소년으로 성장한다. (여기서 살짝 옆구리로 새어 나간 생각, ‘빨간 모자어쩔꺼야. 작가님! 이왕이면 순진하고 착해서 딱해 보이기까지 하는 빨간 모자도 어떻게 좀 해 주시지... )



<양치기 소년>< 빨간모자 > 이야기를 늑대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한 편의 이야기로 엮어낸 작가의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저승 사자에게 잡혀 간 호랑이 가 호랑이의 환생이라는 장치를 통해서 해와 달이 된 오누이나뭇꾼에게 형님소리 듣던 호랑이를 하나로 엮었다면 이 책은 장면전환만으로도 두 이야기를 엮어내는 역동적 구성을 택했다. 강렬한 색깔로 극의 전개를 시원하게 끌고 나가는 그림이 인상적이다. 색깔의 변화만으로도 이야기의 흐름을 바꾸어 낼 만큼 그림에 힘이 있다. 붉은 색과 검은 색이 어우러진 파격적인 색체가 위험에 노출된 소년의 절박함을 보여 주는가 하면 늑대를 쫓으러 가는 소년의 불안한 마음은 어지러운 그림으로 표현된다. 소년이 차즘 안정을 되찾고 자신감을 회복하는 과정에서야 나무들도 초록빛을 찾아 간다. 얼굴도 제대로 보이지 않던 험악한 분위기의 군중들이 점차 친근한 이웃으로 돌아왔을 때 비로소 독자들도 안심하게 된다. 마지막 장에 이르면, 이제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 자신의 삶을 향해 나아갈 채비를 갖춘 소년의 당찬 모습이 보인다. 세상의 고정관념에 딴지거는 책들을 만나며 아이들이 보다 자유롭게 성장해 나갈길 기대해 본다. 2013년 황금도깨비 수상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