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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들의 책 이야기

미친개는 정말 미친개일까?

 
『미친개』박기범 글 김종숙 그림, 샘터, 2008.


    한지 느낌의 누런색 표지 위로 붓이 휙휙 지나간 자리에, 땅에 코를 대고 킁킁 냄새를 맡는 검은 개가 있다. 그리고 그 오른쪽 여백에 선명하게 박혀 있는 ‘미친개’라는 세 글자. 마치 그 글자가 각인인 것처럼, 개는 고개를 들고 금방이라도 날카로운 눈과 발톱으로 공격해올 것만 같다. 하지만, 이 개가 정말 미친개일까?

되풀이되는 마녀사냥, 또 하나의 군중심리
    이 책의 표지는 작가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일종의 암시가 되어 독자에게 선입견을 주고 그것은 또 독자의 호기심을 부추긴다. 표지에서 작은 암시를 받았다면 내용에선 더 크고 위험한‘사회적 암시’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군중심리’란 많은 사람이 모였을 때 자제력을 잃고 쉽사리 흥분하거나 다른 사람의 언동에 따라 움직이는 일시적이고 특수한 심리 상태, 즉 대중 심리를 말한다. 이 대중심리는‘사회적 암시’를 조성하여, 중세의‘마녀사냥’이나 한국전쟁 중‘인민재판’처럼 어떤 사람을 궁지로 몰아가기도 한다. 이 책에도 기존 세력에 의해 빼앗기고, 쫓겨나고, 경쟁에서 내몰려 끝내는 사라지게 한 또 하나의 몹쓸‘군중심리’가 등장한다.

미친개의 탄생
    개는 몸값 비싼 시베리안 허스키를 조상으로 두었지만, 잡종이라는 이유로 개장수에게 팔려 갇혀 살았다. 그리고 홍수가 나던 어느 해, 개는 우리에서 탈출해 겨우 살아났고, 먹이를 찾아 읍내를 떠돌게 된다. 그러나 곧 사람들의 돌팔매질에 점점 읍내 밖으로 밀려났고, 작은 시골 마을까지 들어오게 된다. 한 동안 개는 산과 들을 뛰어다니며 먹이도 찾아 먹고 자연 속에 사는 생활을 하게 되지만, 마을에는 곧 미친개가 있다는 얘기가 돈다. 사람들을 피해 사느라 조심스레 살피는 눈빛은 매섭게 쏘아보는 눈매로 변하고, 숨소리마저 바뀌어 간다. 개는 그렇게 점점 미친개가 되어갔다.

약한 자들의 편에 선 작가, 박기범
    작가는 자신의 블로그에『미친개』를 쓰게 된 사연을 공개했다. 작가는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반대하여‘한국 이라크 반전 평화팀’으로 이라크에 갔을 때 보았던 떠돌이 누런 개 한 마리가 계속 가슴에 남았다고 한다. 그리고 청와대 앞 전투경찰들이 둘러싼 가운데 드러누워 울부짖는 늙은 신부님의 얼굴에서, 1980년 광주를 패러디라도 하 듯 군을 출동시켜 진압하는 앞에서 제 몸에 쇠사슬을 감고 버티고 서던 어느 두 아이의 엄마 얼굴에서 그 개의 눈빛을 겹쳐보다가, 2006년 겨울, 담배를 피우고, 욕을 퍼붓고, 주머니에 칼을 가지고 다닌다는 초등학교 4학년, 열한 살 아이를 만났다. 그리고 얼마 후, 아이의 할머니, 아버지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그때부터『미친개』를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나와 다른 걸 이해하지 못하고 내 이익을 위해서라면 공격을 서슴지 않는 지독한 ‘이기주의’와 강한 자는 더욱 가지려 하고 힘이 없는 자를 사지로 내모는 ‘적자생존’, 그리고 치열한‘경쟁’만이 존재하는 이 사회에 반대하며 작가는 약한 자들을 대표하는『미친개』의 편에 섰다.

함께 하는 세상을 그린 동화, 『미친개』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어린이가 작가의 뜻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뜻을 이해하기 전에 어두운 분위기에 억눌려 다 읽지 못하고 덮어버리는 건 아닐까?’하고 우려했다. 흔히 어린이가 대상인 그림책이라는 점이 못내 불편했다. 그러나 다시 이 책을 보았을 때 어린이들이 속해 있는 사회의 작은 단위, ‘학급’을 떠올리고는 납득했다. ‘아 학급도 다양한 아이들로 구성되어 있지, 여러 감정이 교차하고, ‘왕따’같은 사건도 있지’라고. 개발과 발전, 혹은‘대의(大義)’라는 미명하에 우리 사회의 약자들은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어디론가 사라져 간다. 이 책의‘미친개’처럼. 약한 자를 측은해 할 줄 알고, 나와 다른 사람을 보듬을 줄 알며, 함께 해야 하는 세상이라는 걸 알려주기에 이 책만큼 전달력이 있는 책은 드물 것이다.

이진화(경기평생교육학습관 사서)
서가에 나란히 꽂혀 있는 책을 보면 마음이 안정되고
괜스레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됩니다.
전 책과 함께 할 수 있어 정말 행복한 사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