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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들의 책 이야기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다


『책과 노니는 집』이영서 글·김동성 그림, 문학동네, 2009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책에 얽힌 이야기,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나누는 책이야기가 듬뿍 담긴 이 책은 역사속의 천주교 탄압사건과 더불어 어린아이의 성장과정까지 두루 담고 있는 뛰어난 창작동화이다.

    성은 문, 이름은 장. 이 책의 주인공‘장이’는 어린 시절에 무척이나 자신을 사랑해주고 아껴주던 아버지를 잃게 된다. 전문 필사장이였던 아버지는 천주학 관련 책을 필사했다는 죄로 매질을 당하여 죽고, 아버지의 부탁으로 홀로 남은 장이는 약계책방의 주인인 최서쾌의 보살핌으로 살게 된다. 책방에서 책을 손님에게 가져다주는 심부름을 하며, 장이는 다양한 사람들과 인연을 맺게 된다. 낙심이, 미적아씨, 청지기, 지물포 주인 오씨, 허궁제비, 홍 교리. 이들을 통해 장이는 아버지를 여읜 슬픔을 이겨내며 자신의 길을 당당히 걸어 나간다.

    이 동화에 전체적으로 관통하는 중요단어는 두 가지이다. 천주학을 가리키는 ‘서녘 서(西)’와 천주학을 숨기는‘동녘 동(東)’. 천주학 대한 탄압 속에서도 천주학 책을 읽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몰래 책을 구해서 읽을 수밖에 없다. 장이는‘동녘 동’자로 시작하는 동국통감을 가지고 최서쾌의 심부름으로 홍 교리의 집에 찾아간 이후, 홍 교리와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 책을 읽는 아이들에게는 주옥같은 말들이다. “어렵고도 재미없어도 걱정 마라. 네가 아둔해서 그런 것이 아니니. 어려운 글도 반복해 읽고, 살면서 그 뜻을 헤아려 보면‘아, 그게 이 뜻이었구나!’하며 무릎을 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는 어려운 책의 깊고 담백한 맛을 알게 되지.”어른과 어린 아이의 진심어린 대화는 두고두고 곱씹어 볼 부분이다.

    홍 교리와의 대화를 나누기 좋아하는 장이는 천주학 탄압이 다시 시작될 무렵, 뛰어난 지혜로 홍 교리의 목숨을 구하게 되고, 천주학 사건에 관련된 모두들은 잠시 도망친다. 그들이 다시 만난 날, 장이의 운명이 다시 시작된다.
책과 노니는 집은 장이의 모든 것이다. 홍 교리의 서재이름인 한문으로 된 ‘서유당’을 장이의 눈높이에 맞추어 언문으로 다시풀이해준‘책과 노니는 집’. 이곳은 장이가 필사장이로서의 삶을 살아가나가는 기반이 된다. 아버지가 남겨 주신 돈으로, 아버지가 차리고 싶었던 곳에서 책방을 운영하며, 전문적인 필사장이로 나아가는 장이처럼, 이 책을 읽는 아이들도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바르게 살아간다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을 것이다.

    긴장감을 놓지 않는 탄탄한 구성력과 더불어 이 책에는 세상을 바라보는 어린아이의 관점이 자연스럽게 녹아있다. 낙심이에 대한 풋풋한 관심, 홍 교리와의 대화를 통해 생각을 정리하는 모습, 허궁제비로 인한 고통 속에 고민하는 아이의 모습 등을 두루 읽어나가다 보면 어느덧 장이와 더불어 성장하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여기에 서유당에서 책을 읽고 있는 곳곳하며 맑은 자세, 홍 교리 앞에서 조심스럽게 한 자 한자 필자하고 있는 장이의 모습, 후원 누마루에서 낙심이에게 실감나게 심청전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이의 진지한 모습, 많은 사람들이 흥미 진진하게 조선시대의 전문이야기꾼인 전기수가 들려주는 흥부전 이야기 속에 빠지는 모습 등의 그림은 글과 더불어 가슴 뭉클한 감동을 자아내고 있다.

    특히 도서관 사서로서 주목하는 이 동화속의 장점을 말해본다면, 약계책방의 주인 최서쾌의 책을 권해주는 안목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을 읽는 독자의 관심을 헤아려, 그들이 좋아할 만한 책을 쏙쏙 골라주는 지혜를 본받고 싶은 열망을 자아낸 이 책은 비단, 어린아이뿐만 아니라, 서점주인, 도서관사서, 책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것이라고 자부한다.



양유진(수원선경도서관 사서)
도서관에서 행복을 느끼며,
도서관에서 만나는 책과 사람을 좋아하는 도서관 사서입니다.
책을 권하는 기쁨을 듬뿍 누릴 수 있는 도서관과 평생을 함께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