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서들의 책 이야기

느낌아니까~

느낌 아니까~

 


 

 

 

 

< 책보 / 이춘희 글, 김동성 그림. - 사파리. >

 

 

오래된 앨범을 꺼내본 느낌이 이럴까. 아련하고 애틋하고 그립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새록새록 어린 시절 일들이 떠오른다.

 

사실 난 많은 형제의 끄트머리에 태어난 덕에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책보가 아닌 가방을 매고 입학해 언니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샀던 몸이다. 아직도 그 가방이 또렷이 기억나는 것 보면 다희만큼이나 내게 그 빨간 고무가방이 자랑거리였음에 틀림없다. 그때까지도 책보를 들고 다니던 아이들이 더 많았던 산골 학교에서 어쩌면 내가 다른 옥이들 앞에서 은근히 으스댔을 런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내게 책보가 가지는 의미는 남다르다.

왁자지껄 아침상에서 물러난 언니들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책보를 메고 서둘러 빠져나간 마당에 덩그러니 남겨져 하루치의 심심함을 견디고 있노라면, 언니들의 반가운 귀환을 맨먼저 알려준 것이 다름 아닌 책보 속 빈 도시락 소리였다. 그 시절 골목어귀에서부터 들려오던 찰그락 찰그락소리는 심심한 하루에 대한 보상이자, 언니들이 학교에서 가지고 올 온갖 이야기들의 시작을 알렸다. 태어나 처음 보았던 그래서 더 눈부시게 예뻤던 노란 은행잎을 쏟아 놓았던 것도 언니의 책보였다. 그 시절 책보는 내게 뭔가 대단하고 은밀한 언니들 세계의 상징과도 같은 것이었다.

 

갈등의 최고조, 싸움 장면에서는 작가에게 묘한 동질감마저 느끼게 된다.

요즘 아이들이 서로 머리채 잡고 싸우는 장면은 못본 것 같은데, 우리 어린시절에는 진짜 그렇게들 싸웠다. 초등학교 시절 무슨 이유인 지는 모르겠지만, 한 학년 위 언니와 머리채를 잡고 싸웠던 기억이 난다. 겁도 없이 저지른 하극상 때문에 그 후 한동안은 쉬는 시간 교실 밖을 나서기가 두려웠다. 선배언니들이 나만 보면 쟤야 쟤. 못된 계집애.. ” 하고 수군거리던 통에. 그런데 이제는 그 공포의 순간조차 그립다. 그 때 나랑 싸웠던 그 언니는 어디서 무얼하고 있을까? 아직까지 날 미워하진 않겠지.

 

이 책은 똥떡을 시작으로 우리의 소소한 옛모습들을 살려 내며 이미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그림책으로 자리 잡은 국시꼬랭이시리즈의 19권째 도서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이 책 또한, 역사의 뒤안길에서 잊혀져간 우리 옛것들을 건져 올린다. 엄마의 어린 시절이 궁금한 아이들 뿐만 아니라 지난 시절을 아이로 살았던 부모세대에게도 추억을 함께 나눈 옛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움을 선사한다. 김동성 작가의 사랑스럽고 잔잔한 그림들을 보고 있노라면 , 어느덧 어린 시절 학교 가는 길에 만났던 논둑길과 개울가에 가만히 이르게 된다. 그림책은 내게 여전히 위로이자 치유의 공간이다.

 

 

< 평택시립도서관 사서 유현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