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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들의 책 이야기

우리 존재는 아름답다

 

우리 존재는 아름답다

 

피카이아 / 권윤덕 / 창비

 

 

이 그림책을 한마디로 정의하라면 치유의 그림책이라 하고 싶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그림책이자 철학책이다. 어른은 어른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각자의 눈높이만큼 확장하여 읽을 수 있도록 다층적 구조로 설계되었다. 그림책치고는 글밥도 많은 편이고 그림체나 판형 또한 기존의 그림책 문법을 다소 벗어난다. 작가도 읽어주는 그림책이기보다 읽는 그림책으로 기획하였다고 한다.

 

지면 가득 펼쳐진 그림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번잡했던 마음이 누그러지고 고요해 지는 느낌이 든다. 물론 책의 그림과 내용이 마냥 따뜻하지는 않다. 오히려 의도적으로 불편한 그림들과 상징들을 등장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며 위안을 주는 것은 바로 생명이 가진 근원적인 힘에 대한 깨달음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배경이 도서관인 것 또한 - 작가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 치유적 공간으로서의 메타포로 읽힌다. 도서관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인 고대 그리스 도시 테베의 도서관 현판이 지시하는 영혼을 치유하는 장소로서 말이다.

 

저마다의 사연으로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도서관에 모여 키스라는 개에게 각자 자신들의 사연들을 들려주는 옴니버스식 구성을 취하고 있다. 아이들은 각자 녹록치 않은 삶의 사연들을 풀어 놓으며 친구와의 대화나 동물과의 교감을 통해 깨달음을 얻어 간다.

할아버지와 지하 단칸방에서 살고 있는 상민이는 식구가 모두 힘들게 일해도 함께 모여 살기 조차 힘든 가난한 현실을 이해할 수 없다. 게다가 자신은 무가치하고 없어져야 할 존재인 것만 같다. 그런 상민이에게 피카이아 화석은 살아있는 것 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깨달음을 전한다. 각각의 사연을 엮어가는 연결고리가 다름아닌 생명의 근원으로서의 피카이아이다.

오직 시험점수 올리고 등수 올리는 데만 관심이 있는 엄마의 딸로 살아가는 미정이. 좋아하는 뜨개질을 하다가 학원 시간을 놓쳐 엄마한테 심하게 야단맞고 집을 나온 날, 미정이는 자신의 눈물방울 속에서 스트로마톨라이트를 떠올린다. 경쟁만을 외치는 엄마를 향해 미정이는 속으로 되뇌인다.

우리는 어쩌면 함께 살아가도록 진화했을 것 같아. 엄마. 친구들과 경쟁하려고 할 때보다 서로 도우려고 할 때 마음이 따뜻해잖아

그 밖에도 성추행 마저도 자신을 향한 유일한 관심이라 여기는 외로운 윤이, 정리해고의 위기에 처했다 복직된 채림이네 등 아이들이 품고 있는 저마다의 아픈 사연은 그림책의 공간을 넘어 치유와 성장의 공간으로 날아 간다.

 

그 과정에서 인간들이 서로 협력의 방식으로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은 자연의 순리라는 것과, 인간 또한 동물이며 자연이라는 사실을 깨달아 간다.

 

 

살아 남는 것 만으로도 귀한 일

생존, 생존자!

살아남는 것 만으로도 놀랍고 숙연해지는 세상을 살고 있다.

결코 다른 존재들 보다 뛰어나지 않았지만 힘든 시기를 견디고 살아 남았다는 것만으로 엄청난 일을 가능하게 했던 피카이아를 떠올리며 힘든 시기를 견디고 살아남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음을 깨닫게 된다. 작가는 힘들어하는 아이들에게 버티고 살아남는 것만으로도 귀한 일이며 앞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있다.

 

 

(평택시립도서관 유현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