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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들의 책 이야기

아빠, 머리 묶어 주세요

아빠, 머리 묶어 주세요

 

김 정 (평택시립도서관 사서)

 

아빠! 머리 묶어 주세요/ 유진희 - 2013.한울림어린이

 

 

갈색 머리칼을 헝클어트린 소녀가 작고 빨간 머리끈을 들고 말한다. “아빠, 머리 묶어 주세요!” 앙큼하게 웃고 있는 저 표정. 장난기가 가득 담긴 것도 같고, 기대감이 한껏 담겨 있는 것도 같다. 요 꼬맹이이의 표정이 하도 사랑스러워 책장을 열지 않고는 배겨날 수가 없다.

 

꼬맹이 ‘은수’는 출산으로 집을 비운 엄마 대신 아빠와 함께 생활하게 된다. 단순히 아빠, 어디가~ 하고 여행이나 놀이를 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을 말이다. 여기서 오랫동안 유치원 교사로 활동했던 작가의 경험이 빛을 내며, 사소하지만 공감가는 이야깃거리를 포착해낸다. 그저 밥 잘 챙겨 먹이고, 잘 재우는 것이 생활이 다가 아님을 작가는 알고 있는 것이다. 다름 아닌 머리 묶기에 담겨있는 부모의 철학과 자신감, 그것을...

 

한창 자존감이 형성되어가고 돋보이길 원하는 아이들, ‘은수’에게 오늘 어떤 스타일의 머리를 하고 유치원에 가는 지는 온 하루의 전부이다. 어제 내 단짝친구는 기하학적으로 딴 머리를 하고 왔으니, 오늘은 무려, ‘겨울왕국의 엘사’ 머리를 하고 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헤어스타일은 유치원에서 그날의 주인공을 결정하는 기준이다.

「아빠! 머리 묶어 주세요」에서 은수는 아빠가 못미덥다. 극적 효과를 위해서인지, 아이러니한 재미를 위한 작가의 의도인지, 머리칼 하나 없는 대머리인 은수 아빠는 머리 묶기에 진땀을 낸다. 설상가상 은수의 생일파티는 며칠 앞으로 다가오고, 은수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대머리아빠는 앉으나 서나 머리 묶기 연습 삼매경이다. 커다란 덩치의 대머리 아저씨가 여자 인형을 품에 안고 머리를 묶어주는 지하철 풍경은 가장 앞도적인 장면이다. 말 그대로 웃기지만 어딘지 슬픈, 웃픈 장면.

 

며칠을 고생하지만 저녁준비로 바쁜 아빠는 손을 다치고, 결국 은수는 아빠가 사준 머리띠를 하고 생일파티를 맞는다. 예쁜 머리띠로 친구들의 칭찬을 받은 은수는 기분이 좋아진다.

 

머리 묶기에 끙끙대는, 서툴고 어수룩 하지만 그 안에 사랑이 담뿍 담긴 아빠의 모습은「코끼리 아저씨와 100개의 물방울」(노인경, 문학동네)의 아빠 코끼리와 오버랩 된다. 아기 코끼리들에게 줄 100개의 물방울을 지고 험한 여정을 달리는 아빠. 그다지 용감하지도 않은 것 같고, 능숙하거나 똑똑하지도 않은 것 같다. 그렇지만 그 사랑은 묵직하고 푸근해서 책장을 넘어 전해져 올만큼 진하다.

 

코끼리 아빠처럼, 은수아빠도 완벽하지 않기에 더욱 진짜 우리아빠처럼 느껴진다. 엄지손가락을 든 은수와, 자신이 땋은 머리를 자랑스레 들어 보이는 아빠의 뿌듯한 얼굴이 더없이 마음에 드는 해피엔딩이다. 갓난 둥이 동생의 얼마 없는 머리를 묶고 있는 은수의 장난기 가득한 얼굴이 한참 후에도 생각이 날 것 같다. 주목 받고 싶어 하고, 패션에 민감한 유치원생 딸과 아빠가 함께 읽으면 유쾌할 그림책으로 추천한다. 더불어, 맨 마지막 장에 실린 예쁘게 머리 묶는 법 안내서는 보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