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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들의 책 이야기

인류 최고의 과학기술, 바느질

 

인류최고의 과학기술, 바느질

 

평택시립도서관 사서 유현미

 

 

 

<쪽매 / 이가을 글, 신세정 그림. 한림출판사. 2013>

 

 

안정된 교수직을 박차고 나가 자연과 공동체 삶을 실천한 윤구병 선생님은 저서 가난하지만 행복하게에서 인류가 빚어낸 가장 놀라운 과학 기술을 들라면 망설이지 않고 바늘을 꼽겠다고 하셨다. 생체에너지를 써서 제 삶에도 이웃의 삶에도 또 더 넓게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다른 생명체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과학기술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길이 있을까 찾다가 발견한 것이 바로 바늘과 실이라고 한다.

 

쪽매를 처음 읽었을 때 바늘과 실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어린이를 위한 따뜻한 글과 아름다운 그림으로 풀어놓았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은 한 아이의 성장기이자, 삶의 앞가림에 대한 이야기이며, 우리 전통가치에 대한 소회이기도 하다. 오갈데 없는 쪽매가 제 앞가림하고 살아갈 수 있었던 힘이자 이웃을 돌보는 힘이 다름아닌 바느질인 것이다. 우리 의식주를 스스로의 손으로 해결하던 시절에는 바느질이야 말로 가장 중요한 생존의 수단이자 예술의 영역이었을 터다.

 

쪽매의 인생에서 고난을 상징하는 바늘부인은 일견 날카롭고 무정해 보이지만, (쪽매는) 고난의 시간을 잘 이겨냄으로써 바늘부인을 통해 훌륭한 바느질 솜씨를 얻게 된다. 명주부인은 쪽매를 보드랍게 감싸주고 꿈을 지켜보아준 인물이자, 쪽매의 바느질 작품을 아름다운 예술작품으로 알아봐 준 인물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자신의 솜씨를 다른 사람을 위해 쓸 줄 아는 쪽매의 마음이 쪽매의 성장을 도운 가장 귀한 밑천이다. 비록 쪽매 자신은 누덕누덕 기운 옷을 입었을망정, 자투리 천 조각들을 모아 이웃들의 시린 어깨를 감싸주고 무릎을 덮어주는 귀한 조각보를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공동체적 삶의 가치가 잘 표현되어 있다. 쓸모없는 짜투리 조각들이 모여 색색의 조각보가 만들어지듯 각각의 등장인물들이 도움을 주고 받으며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과 전통의 가치가 그림책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있다.

지금은 거의 사라져간 풍경이지만, 우리가 어렸을 때는 바느질 하시는 엄마의 모습을 익숙하게 대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엄마밥에 대한 그리움 못지 않게, 바느질 하던 엄마의 모습이 간혹 생각 난다. 자다가 깨어났을 때 윗목에서 흐릿한 불빛을 벗삼아 양말과 내복을 꿰메고 계시던 엄마의 모습은 애틋함과 그리움으로 남아있다. 어쩌면 그 시간 또한 끝없는 가사노동의 연장이었을 법하지만, 다른 때와 다른 특별한 고요같은 게 느껴졌던 것도 같다. 이런 개인적인 기억이 아니라도 이책은 바느질과 조각보를 통해 우리 옛것의 가치를 돌아보게 한다.

 

책의 말미에는 쪽매가 그동안 만들었던 작품들과 바느질에 쓰이는 낱말들이 정리되어 있다. 이야기를 통해 갖게 된 호기심을 자연스럽게 지식의 영역으로 확장시킬 수 있는 배려이자 바느질에 대한 작가의 애정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글과 잘 어우러지는 신세정 작가의 그림도 인상적이다. 여러 가지 옷감과 자수로 책을 아름답게 수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