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마법이 되는 순간
o 위를 봐요!/정진호 글,그림. - 은나팔(현암사). 2014. ISBN 9788932373706
o 분야 : 그림책
o 추천대상 : 영유아부터
이수경(평택시립장당도서관)
수지는 교통사고로 다리를 잃습니다. 휄체어 탄 모습이 싫어 밖에 나가지 않습니다. 그저 창가에 앉아 내려다봅니다. 오가는 아이들과 강아지, 어른들의 머리꼭지가 ‘개미같아’ 보입니다. 수지는 누구라도 자기를 봐 주기를 바랍니다. 어느 날 한 아이가 위를 봅니다. 수지가 잘 볼 수 있도록 길바닥에 눕습니다. 한 사람, 두 사람, 세 사람..... 수지가 볼 수 있도록 ‘모두 위를 봐요!’. 늘 아래를 내려다보는 수지도 다른 사람들처럼 위를 봅니다. 오랜만에 위를 보는 수지는 활짝 웃습니다.
어른들이 아이와 이야기할 때 시선을 맞추려 합니다. 같은 시간과 공간에 있어도 시선이 달라 아이들은 어른들과 사뭇 다른 세상에 있는 듯 느껴집니다. 어떤 경우는 자기만의 생각에 빠져 그것 외의 다른 것을 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수지도 그렇지요. 휄체어를 탄다고 사람들이 오가는 길에서 사라질 필요는 없습니다. 물론 우리나라 도로 사정을 보면 장애인들이 편안하게 다니기는 힘든 구조이긴 합니다. 수지는 다리를 잃은 충격과 휄체어를 탄 자신의 모습을 남들에게 보여주기 싫습니다. 한 아이가 수지에게 내려오라고 할 때 수지는 내려갈 수 없다고 합니다. 수지가 잘 볼 수 있도록 아이가 길에 눕는 순간, 수지는 자기를 옥죄고 있던 마음의 틀을 깨고 나와 남들처럼 위를 올려다봅니다. 수지는 휄체어를 옆에 놔두고 그 아이와 나란히 앉아 하늘을 바라봅니다. 봄이 올 것 같지 않더니 나무는 꽃을 피우고 사람들이 오가는 길에는 분홍 꽃잎이 흩날립니다.
정진호의 그림이 남다르게 느껴지는 이유는 시선의 높이 때문입니다. 눈과 눈을 마주치는 그림들을 바라보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조금 남다른 세상이 펼쳐집니다. 늘 보던 나무지만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니 나무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블록을 깐 길바닥은 담벼락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림책을 펼쳤을 때 나무가 늘어서 있는 풍경이 늘 보던 관점이 아니어서 이게 뭘까 한참 생각했습니다. 수지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니 낯익은 것들이 새로운 보입니다. 「위를 봐요!」는 2015 볼로냐 라가치상 수상작입니다. 흑백의 담백한 그림으로 관점을 달리했을 뿐이지만 새로운 세상을 보여줍니다. 그림책의 예술성을 만나는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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