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초딩으로 산다는 것>
* 시간 가게 / 이나영 글 , 윤정주 그림 / 문학동네
* 초등 고학년
“제 머리가 심장을 갉아먹어 이제 더 이상 못버티겠어요....”
얼마전, 자살로 생을 마감한 한 고등학생이 어머니께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다. 전교 1등조차도 공부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나라, 매년 청소년 자살 180명이라는 숫자가 말해주는 우리나라 현실이다. 비단 고등학생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대한민국에서는 초등생으로 살아내는 것 또한 결코 만만치 않다. 방학숙제 하러 방에 들어간 초등 6학년 아이가 방문 손잡이에 도복띠로 목을 맨 사건이 있었다. 그 아이는 평소에“ 학원을 그만 다녔으면 좋겠다” 는 말을 했다고 한다.
또 다른 초등학교 5학년 어린이는 일기에 이런 말을 남기고 떠났다.
‘공부는 누가 만든 것인가? 우리 어린이는 왜 공부만 하고 살아야 할까?’ 아이들이 남긴 말에 가슴이 먹먹해 진다.
이 책의 주인공인 초등학교 5학년 윤아는 엄마가 짜 놓은 계획표에 따라 하루 종일 학원을 다니고, 학습지를 풀고 인강을 듣는다. 전교 2등의 실력이지만 영어 학원 레벨 테스트를 잘 보기 위해 과외를 받고, 수학 학원을 다니고 있는데도 또 수학 과외를 따로 받는다. 엄마는 먼저 세상을 뜬 아빠에게 떳떳하기 위해 윤아를 좋은 대학에 보내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밤낮없이 돈벌기에 바쁘다. 윤아는 자신이 엄마 취향대로 조립되는 DIY 가구와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사력을 다해 버둥거린다. 부모도 아이도 미래를 위하여 현실을 저당 잡힌 채 행복을 유예한다.
이 책은 시간 환타지를 다룬 동화이지만 우리나라 현실에선 차라리 지독히 현실적인 이야기로 읽힌다. 지금 쓸 수 있는 십 분을 사기 위해 과거의 행복한 기억쯤은 팔 수 있다고 생각하는 윤아의 생각은,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지금은 하고 싶은 것들을 꾹 참고 공부만 하라고 다그치는 어른들 생각의 반영이다. 시간을 주고 행복한 기억을 사는 것 또한, 추억과 행복마저 온전히 자신의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정해 놓은 기준과 스펙을 충족시키는 것에 다름아님을 은유한다.
부모들이 느끼는 삶의 불안이 어른들 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영혼까지 잠식하기에 이르렀다. 어른들은 흔히 아이들은 순진하며 늘 즐거울 것이라 생각하지만 모든 아이들은 각각의 나이에 따라 삶을 헤쳐 나가기 위한 엄청난 전쟁을 치르고 있다고 한다.
그 전쟁을 잘 치러내기 위해 아이들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윤아도 과감히 시계를 내던지고, 엄마를 향해 작지만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동병상련의 아픔을 겪고 있는 친구 영훈이를 향해 팔을 뻗는다. 자기 삶을 찾겠다는 선전포고인 셈이다. 다행히 윤아에게는 할머니, (여전히 행복한 기억 속의) 아빠, 엄마 그리고 베프인 다현이가 곁에 있다.
이렇듯 아이들이 자신의 삶을 헤쳐 나가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을 때, 과연 우리 어른들은 그들의 든든한 지지자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아이들이 이제 그만 다람쥐 체바퀴에서 내리고 싶다고 호소할 때, 가만히 문 열어 줄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을까? 아이들에게로 눈을 돌리기 전에 먼저 우리 자신들의 삶을 성찰해야 하는 이유이다.
평택시립도서관 사서 유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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