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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들의 책 이야기

진정한 화해는 어디에서 오는가?

o 서평대상 서지사항

마씨부자 : 일반 / 라오서 글. 고점복 번역. - 창비, 2013

373p. ; 21cm.

9788936464134 : 13,000

o 분야

일반도서 (800)

o 추천대상

청소년 및 성인

o 상황별추천

누군가와 화해하고 관계를 회복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책

 

 

이병희 (안성시 보개도서관 사서)

 

 

마씨 부자는 루쉰(魯迅), 바진(巴金)과 더불어 중국의 3대 문호로 꼽히는 라오서(老舍)의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작가가 영국에서 체류하면서 얻은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써낸 작품이라고 합니다. 라오서가 서른살이 되던 해에 발표한 마씨 부자는 베이징에서 런던으로 이주해 골동품 가게를 운영하는 마씨부자의 생활을 통해 세대와 인종 간 갈등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사회 속에서 하층민이 겪는 어려운 삶은 라오서 작품의 주된 소재입니다.마씨 부자역시 이 점에서 큰 궤를 같이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단순한 경제적 궁핍이나 삶의 고통에 머무르지 않고, 두 중국인이 낯선 땅에서 겪는 멸시와 고난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이를 통해 라오서는 당시 가지고 있던 사회적 문제의식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는데요, 그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서양 열강의 군사적, 경제적 침략으로 처한 국가 존망의 위기를 극복해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구태세습을 끊고 서양문물과 선진교육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작품 속 마씨 부자의 아버지 마쩌런을 아주 부정적인 모습으로 나타내는 것도 마쩌런이 바로 변화를 거부하는 구세대를 대표하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마쩌런 역시 오래된민족의 오래된사람이었다. 그를 수식하는 두 개의 오래된이라는 단어를 통해 단정할 수 있었다. 그는 평생 동안 두뇌를 사용한 적이 없으며, 게다가 하나의 사물을 삼분 동안 주시한 적도 없다고. 왜 사느냐고? 관리가 되기 위해서였다. 어떻게 관리가 될 수 있느냐고? 먼저 한턱을 내고 손을 써주십사 부탁하면 되었다. 왜 아내를 얻었느냐고? 나이차 찼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아내를 얻었느냐고? 중매쟁이를 통해서였다. -중략- 오래된 민족의 구성원들은 그런 것들을 평생 동안 충분히 누렸다. 마쩌런 역시 마땅히 그러할 뿐이었다.(본문에서)”

 

마쩌런은 인생의 목표가 관리가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관리가 되고 나서 해야 할 일과 그 책임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습니다. 그저 체통을 지키기 위해 관리가 되려할 뿐입니다. 관리 외에는 체통에 맞는 직업이 없다고 단정합니다. 어찌어찌하여 스스로도 골동품상을 운영하는 장사꾼이 되었지만 장사꾼만큼 천박한 직업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여 장사에도 큰 관심도 없습니다. 성심성의껏 자신의 사업을 도와주는 리쯔룽도 항상 속물이라고 멸시해버립니다. 그저 관심있는 것은 집주인인 웬델 부인의 환심을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분수에 맞지도 않게 큰 돈을 서슴없이 써버리죠. 이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마웨이는 분노를 느낍니다. 물론 마웨이는 아버지를 사랑하고 자식의 도리를 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장사가 망하면 굶어죽게 생긴 판에 허투루 장사를 하는 것도 모자라 쓸데없는 일에 과지출을 일삼는 아버지와 반목하게 되는 것이죠. 결국 마웨이는 그런 아버지를 견디지 못하고 그의 곁을 떠나게 됩니다. 아버지를 떠나 버린 마웨이의 결단은 아마도 중국의 구태를 단호히 끊어버려야 한다는 작가의 의지가 반영되었을 것입니다.

마씨 부자에는 세대 간 뿐만 아니라 인종 간의 반목 문제도 나타납니다. 영국인이 갖고 있는 말도 되지 않는 중국인에 대한 편견. 그에 따른 차별과 모욕 등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국가와 국가 간의 관계는 어깨를 나란히 한 형제의 관계는 가능해도 호랑이와 쥐가 갖는 우정은 기대할 수 없다고! 그리고 다시 강변합니다. 중국이 받고 있는 모멸과 무시를 없애기 위해서는 역시 스스로 강해지는 수밖에 없다고!

마씨 부자는 이처럼 크게 세대와 인종 간의 갈등 구조를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그 과정에서 중국이 차지하고 있는 처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자국민의 의식 개혁을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작품에 대한 일반적인 해석입니다. 물론 저 역시 이러한 해석에 동의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작품 속에 등장하는 마씨 부자와 웬델 모녀의 성탄절 저녁 식사 장면은 전혀 다른 느낌을 줍니다. 서로 다른 세대와 인종의 사람들이 한 식탁에 둘러앉아 웃고 떠들며 즐겁게 저녁 식사를 하는 장면은 아름다운 화해의 장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아마도 라오서는 약육강식이 유일한 원칙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찌할 수 없이 강성한 목소리를 내질렀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진정한 이해와 화해를 바탕으로 한 평화의 관계를 꿈꾸었던 건 아닐까요? 그것이 세대 간의 갈등이건 국가 간의 적대이건 모든 것을 초월한, 완전한 화해의 장. 그것을 바랐던 것 아닐까요? 저만의 착각일까요? 판단은 이 책을 읽고 난 여러분의 몫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