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들의 처음이자 마지막 외출
- 돼지 이야기 / 유리 글. - 이야기꽃. 2013
그림책
대상 연령 : 초등고학년
안성시립 진사도서관 장현명
돼지는 우리에게 더할 나위 없이 친숙하다. 때로는 더러움의 상징으로, 귀여운 애칭으로 대표되는 돼지. 우리들의 편견과 달리 본래 돼지는 깔끔해서 잠자리와 배설할 곳을 구분한다고 한다. 또한 진흙 목욕을 좋아하며, 군집생활을 하는 사회적인 동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돼지고기 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공장식 축산업에선 이런 돼지의 본성이 무시당하고 있다.
어미돼지는 평생을 폭 60센티의 길이 2미터의 사육틀에서 보내야 하고, 새끼를 낳고선 분만틀에 갇혀 젖을 먹는 제 새끼를 한번 핥아보지도 못한다. 새끼돼지의 상황은 어떨까? 태어나자마자 꼬리와 이빨을 잃고, 어미젖을 떼고 나면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서 약 6개월의 생활, 그 후 도축장으로 향한다. 이런 환경에선 전염병이 필연이자 악연일 수밖에 없다.
2010년 겨울에도 그렇게 구제역이 찾아왔다.
구제역은 발굽이 두 개로 갈라진 동물이 걸리는 아주 전염성이 높은 질병이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치사율이 높은 편도 아니고 사람이 허락한다면 감염된 동물들은 대부분 회복할 수 있다. 하지만 돼지고기를 다른 나라로 수출하거나 유통하는 데, 큰 타격을 입기 때문에 정부는 가축전염병예방법을 만들어서 관리한다. 그 관리라는 것은 돼지 한 마리가 구제역에 걸리면 그 주변 돼지까지 살처분 하는 것이다.
단어로만 보면 그저 행정상의 처리정도로 보이지만, 돼지들을 전부 죽여서 매장하는 것이다. 규정엔 산채로는 절대 묻어서는 안된다고 써있지만, 2010년 그땐, 너무나 많은 돼지들을 살처분 해야 했기에 지켜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정말 끔찍한 일이었다. 돼지에게도 사람에게도...윤리와 존중은 지켜지지 않았다. 그 이듬해 4월까지 831만 8천 마리 돼지들이 처음이자 마지막인 외출을 했다.
처음 이 책을 마주했을 때 섣불리 한 장 한 장을 넘기기가 어려웠다. 그동안 막연히 떠올렸던 돼지의 생활하고는 전혀 매치할 수 없는 돼지의 현실이 너무 무겁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창백하다 못해 서늘한 축사를 배경으로 하얀 돼지가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저 초라할 뿐. 힘이 없는 눈빛이 조용히 응시하는 건 하얀 눈. 처음으로 맞았을 눈송이였다. 담담하게 그려낸 그림들 속엔 돼지들의 두려움과 슬픔이 꾹꾹 담겨있었다.
사람은 다른 동물을 길들여 사육하는 유일한 동물이다. 그래서 돼지를 폭60센티 길이 2미터의 사육 틀에 가둘 수 있고, 새끼돼지의 꼬리와 이빨을 잘라 버릴 수도 있다. 병이 걸리면 살아있는 돼지를 묻어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해서 그렇게 하는 게 과연 당연하고 괜찮은 걸까? 너무 극적으로 쓰여졌다면 차라리 외면하고 싶었을 이야기. 돼지이야기.
오늘도 수많은 식탁위에 돼지고기가 오를 것이다. 어차피 우리는 다른 생명을 먹고 살아야만 하는 인간이다. 그렇다면 그 생명을 위해 이제 윤리와 존중을 생각해야하는 것도 인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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