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답답하고 느리고 가끔 눈치 없어 짜증’나는 당신, 아니 우리를 위한 책
코끼리 아저씨와 100개의 물방울/노인경 글, 그림. -문학동네(2012).
ISBN(13) : 9788954618618
그림책
영유아/초등 저학년 대상
이수경(평택시립장당도서관)
분노사회, 피로사회, 낭비사회, 위험사회, 탈감정사회, 탈신뢰사회 현재 우리 사회를 말하는 책들의 제목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코끼리 뚜띠 아저씨의 코믹썰렁어리버리판타지 기어코기우제 그림책이 무척 재미있었음에도 ‘이렇게 착해빠져서 세상을 어떻게 살아’라는 속말을 하고야 말았습니다. 몇 올 남지 않은 머리카락, 겁 많아 보이는 어리버리한 표정, 지나가는 뱀들보다 작게 그려진 코끼리 뚜띠 아저씨, 어둠 속을 탈출하는 아저씨의 띨빵(?!)한 태도가 완전체가 되어 ‘그렇게 힘들게 길어온 물을 불 난 곳에 왜 주고 난리야, 새들한테는 왜 뺏겨, 이 바보야!’ 이렇게 외쳐버리고 말았습니다. 누군가 이렇게 얘기합니다. 가뭄에 길어온 귀한 물을 새끼코끼리들에게 가장 먼저 주고 싶었겠지만 불 난 곳을 모른 척 할 수 없는 뚜띠 아저씨의 ‘마음결’을 보았으면 좋겠다고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내게 소중한 것을 가장 필요로 하는 곳에 쏟아붓는 그 마음말입니다. 이 마음은 배운다고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건 아름다운 마음을 그대로 봐주는 ‘있는 그대로의 시선’일 것입니다. 사람의 선(아름다움)을 믿을 수 있는 마음의 힘 말입니다. 나쁜 사람들도 있고 나쁜 일도 일어나지만 세상 한 구석 코끼리 뚜띠 아저씨같이 듬직한 사람들도 함께 존재한다는 것을 스스로 믿는 마음의 힘 또한 노력해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물을 길어오는 뚜띠 아저씨의 여정은 참으로 고단합니다. 벼랑에서 떨어지고 벌에게 쏘이고 선인장에 찔리고 불난 개미굴에 물 뿌려주고 여기, 저기, 요기, 조기 조금씩 흘리고(?!) 다니다보니 양동이에는 한 방울도 남지 않았습니다. 절망한 뚜띠 아저씨의 파란 눈물이 마중물이었을까요? 아저씨의 눈물이 번개를 부릅니다. 시원한 음악처럼 쏟아지는 파란 빗방울들. 눈물인지 빗물인지 푸른 바다처럼 쏟아지는 물을 받아 아저씨는 아이들과 시원하게 나눠 먹습니다. ‘몹시 힘든 길이었지만,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휴우~’. 마지막 문장에서 저도 마음을 놓습니다. 속표지, 코끼리들이 복닥대는 오아시스에서 아저씨는 홀로 낑낑대며 물을 길어옵니다. 마지막 표지, 아저씨와 아이들은 함께 물을 길어 돌아갑니다.
노인경 작가의 그림이야기를 빠뜨릴 수 없네요. 소심하고 겁많아 보이는 주인공 코끼리는 캐릭터가 제대로 잡혀있습니다. 설명하지 않아도 어떤 성격인지 전해져 옵니다. 겁많은 코끼리 아저씨의 고단하고 힘든 여정을 그리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습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 지나가는 뱀들에게 위협당하는 쪼그라들대로 쪼그라든 코끼리 뚜띠 아저씨. 권력도 허세도 없이 자신이 해야할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가슴을 적십니다. 수묵화의 맑은 선과 여백으로 이뤄져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하다 결정적 장면에서 파란 빗방울이 억수같이 퍼붓습니다. 한바탕 크게 울거나 웃고 난 뒤처럼 마음이 시원해집니다.
권선징악(勸善懲惡), 진부한 이야기일까요? 21세기 스마트 시대에 무슨 얘기냐고요? 문명의 기기들은 스마트해졌지만 삶은 고단함과 초췌함 사이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승자독식, 영악하고 발빠르게 움직이는 계산적인 태도를 숭배하는 시대이기에 ‘좀 답답하고 느리고 가끔 눈치 없어 짜증’나는 우리들의 모습에 한 표를 더하고 싶습니다. 아이들에게 누군가의 선함으로 세상이 조금 빛나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진리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조금 손해보더라도 더 멀리 보았을 때 손해가 아닐 수도 있다는 ‘지혜’를 아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그래서 노인경 작가의 말처럼 ‘가끔 겁이 많아 멋지지 않고 가끔 느려 답답하고 가끔 눈치 없어 짜증났던’ 아빠의 모습인 자신을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글밥이 많지 않아 그림을 이해하는 4,5세부터 볼 수 있고 나눔의 마음이나 일하는 수고로움, 부모님 등에 대해 이야기 나눈다면 초등 전학년까지 이용가능 합니다.
2013 브라티슬라바 국제원화전시회 황금사과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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