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리에 햇살 냄새
내 머리에 햇살 냄새 / 유은실 글, 이현주 그림 / 비룡소
유은실의 단편은 특별하다. 한 편 한 편이 잘 만든 단막극을 보고 난 듯 유쾌하면서도 가슴 찡한 여운으로 남는다. 실제로 아이가 재잘재잘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착각에 빠질만큼, 사람냄새 폴폴나면서도 맛깔스러운 문장이다.
4편의 이야기중 첫 번째 이야기는 옆에 있는 사람이 나가 떨어질 때까지 “도”를 외치는 지수의 이야기다. 지수는 주변 사람들에게서 수많은 “도”를 찾아 내지만 정작 자기 자신과 가족에 대해서는 별 말이 없다. 대체 지수가 왜 그럴까? 의심하고 슬쩍 거리감을 두고 싶어 할 법도 하지만, 현우는 마음을 돌려 짝을 바꿔달라고 하지 않기로 한다. 그저 ‘그렇게 어울려 사는 것’을 배우며 아이들은 자란다.
『내머리에 햇살 냄새』는 햇살 가득한 날, 반지하방에 사는 예림이네 가족들이 나란히 나와 해바라기 하는 순간을 포착했다. 머리에 나는 햇살 냄새처럼 뽀송한 아름다움과 평화가 그려진다. 시적이면서도 철학적인 느낌이다.
『기도하는 시간』은 아이스크림을 사오신 전도사님이 기도하는 동안 아이스크림이 녹을까 애타는 선미의 심정을 담았다. 눈치도 없이 오지랖만 넓디 넓은, 그러나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전도사님의 기도는 아빠, 엄마, 할머니 ....... 사돈의 팔촌까지 챙기느라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이어진다. 급기야 아이스크림 그릇에는 차츰 물이 차오르고 선미의 기도도 점점 간절해 진다. “ 하나님, 전도사님이 눈앞에 아이스크림이 있다는 걸 기억하게 해주세요. 이렇게 기도 하다간 다 녹아버린다는 걸 잊지 않게 해주세요.” 기도가 끝나자, 아이스크림은 밤톨한한 크기로 줄어들고, 그걸 떠먹던 선미가 와락 눈물을 쏟는다 ‘이렇게 맛있는데 녹은 물뿐이라니.....’ 결국,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채로 아이스크림 녹은 물을 냅다 들이키는 선미의 귀엽고도 서러운 마음이 전해져 온다.
『백일떡』은 늦둥이 동생을 본 열 살 소녀 지민이의 이야기다. 십년만에 얻은 늦둥이를 향한 엄마 아빠의 사랑은 유별나다. 그런 동생이 백일 잔치를 앞두고 덜컥 병이 나자 지민이는 자신이 동생을 미워해서 그런 게 아닌가 맘이 불편하다. 백일떡을 나눠 먹어야 아기가 건강해진다는 이야기에 떡을 돌리기 위해 나선 지민이. 사실, 낯가림이 심한 지민이로서는 여간 용기가 필요한 일이 아니다. 세상을 향해 첫 발걸음을 내딛은 지민이의 하루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 떡을 전하고 무시무시한 떡괴물을 물리치고 귀환하는 여정으로 마무리된다. 지민이 자신조차 왜 눈물이 나는 지 모르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한 고개를 넘은 지민이의 마음을 알 듯 하다.
책 속의 네 아이는 각자 나름의 결핍을 지니고 있다. 늦둥이 동생 때문에 소외감을 느끼고 심하게 낯을 가리는 지민이. 다세대 주택 지하 단칸방에서 이모와, 또 그 이모의 삼촌과 가족을 이루고 사는 예림이, 수많은 사람들에게서 ‘도’란 공통점을 찾아 내지만 정작 사람들과 잘 섞이지 못하는 지수, 어려운 형편에 입원한 아버지, 사업에 실패한 고모네와 알콜 중독 작은 아버지를 둔 선미.. 그러나 ‘이런게 모두 우리의 행복’이라 말하는 네 아이를 통해 작가는 조금 다르다는 것에서 결핍을 찾고,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며 섣부른 선입견을 꽂는 일이야말로 세상의 편견이라 일갈하는 듯 하다. 세상은 조금 다른 가족 구성원, 각기 다른 성격의 사람들이 섞여 사는 곳일뿐 다르다고 꼭 비정상이거나 불행한 것은 아니라고 역설한다.
조금씩 다른 고민을 안고 각자의 삶을 살아갈 지수, 지민, 예림이, 선미 네 아이에게 햇살만큼은 공평히 비추었으면 좋겠다.
평택시립도서관 사서 유현미
'사서들의 책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평범한 손들이 만드는 무지개 (0) | 2013.05.14 |
---|---|
생명이라면 누구나 (0) | 2013.05.14 |
'다른 것'은 이상한 것도, 나쁜 것도 아니에요 (0) | 2013.05.09 |
우리 삶, 괜찮나요? (0) | 2013.05.09 |
모두가 함께 뛰는 운동회 (0) | 2013.05.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