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이름 짓다, 나는 강한 바리다
º 서평대상 서지사항
희망을 부르는 소녀 바리 / 김선우 글; 양세은 그림. - 단비. 2014. 9791185099194
º 분야
청소년 소설
º 추천대상
청소년
이수경 (평택시 장당도서관)
얼마 전 예능프로그램에 여자아이라는 이유로 태어나자마자 외국으로 입양된 사연이 소개되었습니다. 엄마도 34년 동안 아이가 죽은 것으로 알고 있었으니 저건 범죄 아닌가라는 마음마저 생겼습니다. 이 아름다운 초록별 지구에는 여자라는 이유로 버려지거나 폭력적 상황에 처하는 경우가 여전히 많습니다.
딸이라는 이유로 버림받았으나 스스로 무조신(巫祖神)이자 저승을 관장하는 바리공주는 신화를 넘어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있는 이야기입니다. 바리는 부모에게 버림받은 비루한 존재에서 삶과 죽음의 고난 끝에 저승을 관장하는 신, 고귀한 존재로 거듭납니다. 바리 이야기는 핏빛 성찰을 통한 최고의 성장 드라마입니다. 김선우 소설가는 몇 천 년을 내려오며 주류 사회의 관습이 묻은 바리 이야기를 오늘의 청소년과 독자들에게 의미있게 촘촘히 직조하였습니다. ‘버려진 여자아이’ 바리는 버림받았기에 상실과 결핍에 시달리고 고통스럽습니다. 비리공덕할멈과 할아범, 바람의 말 무구의 보살핌에도 가슴에 난 구멍은 쉽사리 메워지지 않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부모에 대한 원망이 켜켜히 쌓입니다. 자신의 존재를 의심하는 바리는 존재의 고통과 의미를 묻고 또 묻습니다.
‘사람은 왜 태어나는 것일까. 태어난 것들은 왜 죽은 것일까. 사람은 죽으면 어디로 가는 걸까.......(중략)......산다는 것과 죽는다는 것. 목숨이라는 말. 버려진다는 것. 보살핀다는 것......(중략)......여자아이라서 버려진 아이가 정말 여자가 된다는 것.’
버려진 바리는 존재의 의미를 찾기 위해, 자신을 찾기 위해 질문을 멈출 수 없습니다. 오구대왕의 부름으로 세상을 둘러 본 바리는 버림받지 않아도 고통스러운 백성들의 삶에 충격 받습니다. 바리는 효심이 아니라 낳아준 은혜를 갚기 위해 불나국 백성들의 지옥 같은 삶을 구제하기 위해 서천서역으로 가겠다 선언합니다. 바리는 ‘세상의 이쁜 것들은 죄다 눈물을 머금고 있는 것’임을 알기에 고난의 길을 갑니다. 약수를 구하러 가는 서천서역의 길은 바리에게 끝없는 대가를 요구합니다. 바리는 지옥의 고통에서 시시비비의 판단을 넘어서는 선과 악의 모호함을 경험합니다. 이 세상 삶과 생명의 의미를 존재 그 자체에서 찾는 넓고 깊은 눈을 가지게 됩니다.
유리산 벽 앞에서 바리는 ‘버려졌던 여자아이’에서 ‘나는 강한 바리다.’ 스스로 이름 짓습니다. 바리는 단단히 땅을 딛고 서서 스스로 삶의 주체임을 선언합니다. 부모가 낳은 첫 번째 탄생을 지나 바리는 고통과 결핍의 허물을 벗고 삶의 주체가 되는 두 번째 탄생에 이릅니다. 하늘을 움직이기 위한 바리의 마지막 관문은 ‘사랑’입니다. 원망과 결핍을 넘어서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습니다. 누군가를 보살피고 사랑하는 더 큰 존재가 될 수 있는지 묻습니다. 바리와 무장승은 상대를 먼저 배려하고 스스로를 성찰하는 아름다운 관계를 가꿔나갑니다. 달빛을 받으며 산과 들에서 행하는 무장승과 바리의 사랑은 서로의 존재에 대한 감사와 삶의 기운으로 가득합니다. 바리는 세 아들을 낳으며 많은 이들을 사랑하는 존재로 다시 태어납니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이, 죽어서도 방향을 잃은 자들을 이끄는 이, 바리의 사랑은 세상 가장 어두운 곳으로 향합니다. 오구대왕을 살리며 바리가 축원합니다.
‘아비여, 죽으소서, 완전히 죽어 다시 소생하소서.’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는 ‘완전히 죽어 다시 태어’나야합니다. 탄생과 죽음이 다르지 않으니 삶이 죽음이며 죽음은 곧 삶, 시작의 길입니다. 봄에 읽은 「희망을 부르는 소녀 바리」는 바리의 결핍과 자아를 찾는 길만이 또렷했습니다. 가을에 다시 읽은 바리는 스스로 던진 질문에 답하기 위해 고난을 택하고 흔들려도 끝내 자신을 믿으며 진짜 사랑을 만들어가는 멋진 인간이었습니다. 어느 계절 어느 시간에 다시 바리를 본다면 또 어떠할까요? 읽을 때마다 다른 이야기 무늬가 생깁니다. 바리의 삶과 죽음이 그러하듯 우리 또한 잘 살고 있는 이 순간이 잘 죽어가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이 순간의 삶에 여러분은 어떤 이름을 지어주고 싶은지요?
또 다른 이야기. 「희망을 부르는 소녀 바리」에서 가장 안타까운 점은 삽화입니다. 청소년소설이므로 삽화가 있으면 책 이해를 돕거나 글에서 표현하지 못한 부분을 그림으로 채울 수 있습니다. 다만, 신화에서 빌려온 거대한 성장 이야기에 예쁜 그림은 신화의 무게를 감당하기에 가볍게 느껴지거나 아름다운 관계의 상상력을 주저앉히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마지막 이야기. 책 말미 작가의 말에서 바리 신화가 지역마다 수많은 판본이 있고 공통적인 이야기가 있다는 설명을 해놓았습니다. 「희망을 부르는 소녀 바리」를 비롯해 웅진주니어 「바리공주」, 한림출판사 「바리데기」, 웅진씽크하우스 「바리데기」, 시공주니어 「버리데기」, 비룡소 「바리공주」 등 또한 바리 신화의 어느 본을 참조하여 이야기를 만들었는지 적지 않았습니다.
바리 이야기뿐 아니라 신화,전설,민담 등 옛이야기를 재구성하여 발간할 때는 참조한 판본과 자료를 밝히는 것이 출판문화와 도서관이 좀 더 발전하는 길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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