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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야 놀자!

[이달의 콘텐츠] 술과 함께 삶을 빚어가는 사람들 6

경기도민이야기3.

"술과 함께 삶을 빚어가는 사람들"  여섯번째 이야기

 

양평군 지평면에서 지평막걸리 직매장을 운영하는 정환진님의 이야기입니다.

 


한 가족의 희로애락 담긴 두 평 직매장

 

 

식구들의 밥벌이였고, 인생의 한이 된 지평막걸리

 

평면에 가면 어디서든 지평막걸리가 보인다. 마트, 편의점, 식당… 어디에서든 막걸리를 만나고, 맛보고 살 수도 있다. 지평막걸리 판매처가 지평면 곳곳에 있지만, 지평면을 찾는 사람들이 지평막걸리를 가장 많이 구매하는 곳은 지평막걸리 직매장이다. 직매장에 들어서니 목발을 짚은 주인장이 반긴다.

 

 

 

“내 고향은 강원도 홍천이야. 지평면에 온 지는 40년이 좀 넘었지. 지평막걸리 직매장은 1980년도 6월 20일부터 했나… 오래됐지.”

 

그에게 일이자, 식구들의 밥벌이이자, 생의 동반자가 된 막걸리는, 한편으로는 그의 인생의 한이기도 하다

 

“홍천에서는 농사지었지. 그러다 평택으로 가서 정미소 생활을 하다가 지평면까지 흘러들어 왔지. 이곳에서 막걸리 직매장을 하다 다리만 하나 잃어버렸어. 지평막걸리를 2톤이나 실은 차에 치여서… 한 달 넘게 병원에 있다 나왔지. 엄청 고생했어.”

 

그의 한쪽 다리를 앗아간 막걸리이지만 그는 막걸리를 놓을 수 없었다. 아니 더 치열하게 365일 하루도 빠짐없이 막걸리를 붙들고 살았다.

 

“이 직매장을 시작하고, 365일 하루도 쉬는 날이 없었어. 아프다고 배달 안 해 본 적도 없고, 40년 동안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매일 같이 한쪽 발로 팔고, 배달하고… 어쩔 수가 없었어. 새끼들이 6남매야, 그것들 먹여 살리려면 하루도 쉴 수가 없지. 이젠 우리 딸들이 간호사가 셋이고, 치과기공사가 하나 있고… 고생한 보람은 있어.”

 

40년 막걸리를 팔아온 이는 막걸리를 대하는 법도, 마시는 법도 다를 듯하다. 지평막걸리를 가장 맛있게 먹는 법을 물었다.

 

“막걸리는 만들어 바로 나온 것보다 며칠 묵은 게 더 맛있어. 양조장에서 나온 지 한 3~4일이 지나면 막걸리가 사이다 같이 변해. 숙성되면서 진짜 맛이 올라오지. 또 작은 병보다는 큰 병이 더 맛있고”

 

 

술 마실 시간이 없는 막걸리 직매장 주인

 

막걸리를 좋아하느냐, 즐겨 마시느냐 물으니 의외의 답이 돌아온다.

 

“난 막걸리를 안 먹어, 40년이나 장사를 했는데 뭘 또 먹어 지겹게… 그래도 낮에 농사일할 땐 막걸리만큼 좋은 술이 없지. 그런데 난 운전을 해야 하니까 못 먹지, 그리고 막걸리는 너무 빨리 배만 부르고, 오줌 싸러 자주 다녀야 되고… 나처럼 다리 불편한 사람에게는 안 좋은 술이야. 그리고 난 10시면 들어가서 자야 해, 새벽 2~3시면 나와야 하니까. 그래서 실상은 막걸리를 마실 시간이 없어.”

 

툭툭 던지듯 답하는 그의 말에서, 그의 절뚝이는 걸음에서, 얼굴에 깊게 패인 주름에서 그가 그간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는지, 그리고 얼마나 고단한 인생을 꾸려왔는지가 말없이 전해진다.

 

“먹으려면 소주를 먹어야지, 막걸리는 배만 불러. 난 몸이 아파서 소주를 많이 먹어… 하루 종일 이 다리 하나로 버티고, 이리저리 다니고 나면 엄청 힘들어, 그래서 술을 먹지. 안 그러면 힘들어 잠도 못 자.”

 

싫어서가 아니라 몸의 불편으로 못 마시는 막걸리, 즐겁자고 마시는 술이 아니라 아픔을 잊기 위해, 지친 몸을 달래기 위해 마시는 소주… 그와 이야기를 나눌수록 마음 한켠이 먹먹해진다.

 

“그래도 괜찮아. 막걸리 직매장 해서 애들 안 굶기고 다 가르쳤으니까. 막내가 대학생인데, 방학이면 와서 가게도 보고 그래…”

 

시골길에 자리한 낡고 오래된, 작은 직매장이지만 가게 안쪽에 CCTV가 설치되어 있다.

 

“도둑을 맞고 나서 CCTV 달았지. 내가 배달을 나가 있는 사이에 돈을 훔쳐 갔어. 누가 계획적으로 한 거야. 주말엔 관광버스가 많이 오거든, 토요일이나 일요일은 막걸리가 많이 팔려, 우린 남 노는 날 더 바쁜 거야. 주말에 손님들이 우르르 내려 너도나도 한꺼번에 막걸리를 사면 그럼 정신이 없어. 그걸 노린 거야, 버스가 딱 들어올 때를 기다렸다가 손님들이 내리니까 전화를 걸어서는 나를 저기 50리 되는 곳으로 배달을 시키더라고, 집사람 혼자서 우글대는 손님들 틈에서 정신 없을 때 돈을 들고 튄 거야. 종이가방 있잖아. 그래 쇼핑백, 거기에 돈을 담아 들고 갔어…”

 

주말이 바쁘면, 한가한 평일에는 쉬어도 되지 않을까.

 

“아이들이 많다 보니까… 가진 돈은 없지, 고향은 떠나왔지. 생떼같은 자식들은 쑥쑥 크고, 돈 나갈 곳은 많고, 하루가 멀다하고 애들은 돈 달라 하고… 쉴 수가 없었지. 그래도 하루하루 벌어 애들 손에 돈 쥐여 주는 재미로다가 그렇게 살았지….”

 

막걸리에 닭발 안주를 팔던 시절

 

전화를 받은 그가 배달을 나가고 나니 그의 안사람이 직매장을 지킨다. 그녀의 고향도 강원도 홍천이다.

 

“직매장이 지금의 자리로 옮기지는 한 25년 됐어요. 처음 가게는 도로 건너편에 있었어요. 하나로마트 옆에. 지금은 외지인들이 지평막걸리를 사 가지만 옛날에는 동네 분들만 찾아먹던 술이었어요. 그래서 그땐 직매장을 하는 가게에서 막걸리도 팔고, 안주도 팔았어요. 안주는 돼지머리도 눌러서 팔고, 닭발도 무치고… 별의별 안주를 다했지.”

 

이젠 음식을 팔래야 팔 수도 없다. 인터뷰를 하는 사이사이 막걸리를 사려는 손님들이 수시로 찾아든다. 이젠 굳이 안주까지 팔지 않아도 술이 술술 팔린다.

 

“직매장엔 밀 막걸리도 있고, 쌀 막걸리도 있지만 이젠 쌀을 더 많이 먹지. 팔리기도 쌀이 많이 나가. 두 술의 차이가 있다면 사람들이 그러더라고 밀이 좀 더 텁텁하다고, 그래도 밀 막걸리는 좋아하는 사람은 또 꼭 밀 막걸리만 먹지…”

 

또 손님이 들어오고, 이야기는 끊어지고, 기다리는 사이 다시 손님이 찾아든다. 언제 한가하시냐 여쭈니 잠시도 몸을 쉬지 않으며 답한다.

 

“난 평생을 놀아 본 적이 없어, 사람이 시도 때도 없이 오니까. 가게도 쉬어 본 적이 없어… 그래도 얘기 듣고 싶으면 또 와… 그런데 난 바빠…”

 

 

구술정리. 이현주(여행 작가).

 

 

[참고자료]


〇 홈페이지 : 경기도메모리 테마자료 - 경기도민 술 이야기
   http://theme.library.kr/sool/intro.html
〇 책자 : 술과 함께 삶을 빚어가는 사람들 / 경기도사이버도서관 편. 2016.
   http://theme.library.kr/sool/book.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