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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민이야기 3. “술과 함께 삶을 빚어가는 사람들” (1) - 막걸리에 바친 청춘

경기도민이야기 3. “술과 함께 삶을 빚어가는 사람들

 

 

술이라는 주제와 함께 경기도민이야기 세 번째가 발간되었습니다.

살아가면서 술은 우리에게 어떠한 존재일까요?

아마도 누구나 살아가면서 술과 관련된 일화나 경험담은 조금씩은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꼭 어떤 사건이 아니더라도 술과 함께 했던 시간, 사람, 음식, 이야기들이 기억 속에 담겨있겠지요.

 

술은 알코올이 1퍼센트 이상 포함된 음료를 말합니다. 예로부터 술은 예술인이나 창작자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기도 하지만,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위로나 기쁨의 순간을 함께하는 소통의 수단으로, 또는 걱정과 근심을 토로하는 배출구 역할도 함께 해왔습니다. 술술 들어가서 술이라는 이름이 되었다는 이야기처럼 많이 마시거나 마시지 않거나 우리 삶에서 술은 쉽게 가까이 접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2016, <경기도민이야기>는 일상생활 속에서 사람들에게 매우 가까운 존재인 술을 매개체로 떠올릴 수 있는 삶의 이야기를 찾아 나섰습니다. 전국적으로 쌀로 유명한 경기도는 좋은 쌀과 물의 영향으로 다양한 지역 술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경기도 전역을 대상으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수집하고 싶었지만, 일정과 여건상 허락하지 않아 경기북부지역에 한하여 구술작업을 진행했습니다.

 

 

남들은 막걸리를 술이라지만

내게는 밥이나 마찬가지다

막걸리를 마시면

배가 불러지니 말이다

 

- 천상병 막걸리중 일부.

 

천상병시인은 막걸리를 밥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먼 과거가 아니더라도 부모님, 조부모세대에는 술이 밥이기도 한 시절이 있었습니다. 구술자들은 지난 과거부터의 기억을 들춰 현재에 이르기까지 술과 관련된 다양한 일상 이야기들을 들려주셨습니다. 배고파서 술을 만들다 남은 술지게미를 먹었던 이야기, 막걸리 심부름을 다녀오면서 조금씩 그 달달함에 취한 이야기, 본인은 마시지 않지만 매해 남편을 위해서 정성스럽게 술을 담그는 부인의 사랑이야기, 가업의 대를 이어가는 술도가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이번 호에는 포천시 임북실님의 막걸리에 함께한 삶의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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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에 바친 청춘

 

 

 

 

막걸리는 맛있다. 갓 빚은 막걸리도, 며칠간 지긋하게 숙성된 막걸리도 맛있다. 이 막걸리는 유독 잘 어울리는 것들이 있다. 비 오는 날, 들기름 냄새 고소한 도토리묵, 그리고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들려주는 주인장의 옛이야기포천시 이동면에 가면 그런 곳이 있다.

공간이 안주고 주인장이 양념이 되는, 오래되고 소박하지만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최후의 대폿집 같은 곳이

 

내 나이 칠십 아홉, 이름은 임북실이, 고향은 강원도 주문진이야. 남편을 따라 포천에 들어 왔어. 옛날에 애들 아버지가 주문진에서 군대생활을 할 적에 나한테 연애를 걸어가지고그러다 결혼을 하고, 결혼했으니 따라서 와야지. 애들 아버지 고향이 포천이었어그때만 해도 연애뭐 별거 아니야. 몇 번 만나고, 다방에 가서 차나 마시고, 다 그런 거지 뭐내가 포천에 스물다섯 살에 왔을기야. 결혼은 주문진에서 하고 여길 왔지.”

 

포천에 들어온 그녀는 지금 이 자리에서 막걸리 직매장을 시작했다. 고향을 떠나며 그녀의 막걸리 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막걸리직매장을 내가 스물여섯 살 때부터 했으니까, 시방 칠십 아홉이거든, 그러니까 54년째 이걸 하고 있지. 왜 시작하긴, 그때는 할 게 없었으니까. 또 집 바로 옆에 양조장이 있으니 우리 애들 아버지가 막걸리를 팔면 되겠다해서공장에서 직매장을 차려 준거지, 그때 양조장하고 사이가 좋았어. 사람들이 착했어.”

 

그녀가 포천에 와 처음 자리 잡은 곳은 바로 지금의 가게 자리다. 이사 한번을 안가고 54년간 이 자리에서 집을 고치고 늘리며 막걸리를 팔았다. 그래서 이 공간에는 54년의 세월이, 지난 세월 그녀의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녀에게는 딸 둘, 아들 둘이 있다. 이 한자리에서 막걸리를 팔아 키우고 가르쳐 시집 장가를 보냈다

 

그러느라 청춘을 막걸리에 바쳤지인생살이 막걸리로 다 끝난 거야.” 

 

54년 전, 차도 흔하지 않고, 냉장고도 없던 시절의 막걸리를 파는 풍경은 어떠했을까

 

공장서 막걸리를 지게로, 물지게 있지, 그거로 날았어. 나중에는 공장에서 차로 배달을 해줬지만 처음엔 내가 다 날랐어. 그땐 냉장고가 없지, 그래서 땅을 파고 독을 두 개 묻어. 시원한 땅이고 머고 그냥 파서 독을 묻어 놓으면 그게 땅으로 들어가니 시원하지항아리가 컸지, 항아리 하나는 서 말 들어가고 또 하나는, 두어 말 들어가고그래서 양쪽에 닷말 들어갔지 그 항아리를 채우려면 물지게로 막걸리를 다섯 번은 날라야 했어매일은 아니고, 술이 잘 나가면 내일 또 가지고 오지만 술이 안 나가면 못 나르지.” 

 

그녀의 남편은 한량이었다 한다. 젊고 곱던 그녀가 막걸리를 나를 때 한번도 도와주지 않았다.

 

 “인생 얘기하면 끝도 없지, 행복이란 게 없었어. 애들 아버지가 내가 마흔 둘인가 셋일 때 돌아가셨어. 그때 애들이 어렸어. 근데 그때부터 여기(백운계곡)가 관광지가 되면서 술이 좀 많이 나갔지. 그래서 막걸리 팔아 애들 공부 가르치면서, 시집 장가도 보내며 지지고 볶고 살아 온거야. 나는 아주 막걸리라면 징글징글해. 그래도 막걸리는 맛있지.” 

 

오가던 술잔에 흘러간 할머니의 인생이 너울대며 그려진다. 그리웠던 시간들, 가슴 아팠던 세월들이었다.

 

 막걸리 팔며 힘든 일 많았지. 옛날에는 막걸리가 구역제기 때문에, 술이 다른 지역으로 나갔다 걸리면 벌금이 나와. 누가 서울이나 이런데 가지고 가면, 이게 세무서 걸렸다 하면 벌금을 때려. 그래가지고 언젠가 의정부 세무서에 걸린 거야. 찾아가서 울며불며 사정사정 하니 혼자서 애 키우며 살고 이러니까 봐 주더라고그런 적도 있지사는 게 참 힘들었지.” 

 

그녀는 인생에 술이 있어서, 술을 마실 수 있어서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말한다. 그녀에게 막걸리는 힘든 시절을 버티게 한 힘이었고 풍류였다.

술과 함께 살아온 이들은 누구나 자신만의 주도, 또는 주법을 가지고 있다. 그녀 또한 막걸리를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을 알고 있을 듯했다. 막걸리는 언제 먹어야 맛있을까

 

배고플 때 먹어, 그때가 제일 맛있어

 

무릎을 탁 치게 하는 답변이다.

 

막걸리는 바로 가져와서 먹으면 맛이 없어, 3일 숙성시켜서 먹어야 더 맛있지. 첫날은 술이 좀 달아. 3일 지나야 숙성이 돼서 더 맛있지.”

 

 

그녀에게 있어 막걸리는 이동막걸리가 최고의 막걸리다. 꼭 이 지역에서 나는 술이기 때문만은 아니란다.

 

다른 지역 막걸리는, 강원도 옥수수 술 먹어 봤는데

이만(이동막걸리만) 못하더라고. 이동막걸리가 왜 맛있냐면 이 옆에 백운계곡에 가면 큰 박달바위가 있어, 그 바위에서 물이 흘러나오는데 그 물로 담가서 술맛이 좋은 기야. 우리가 반찬 할 때 간장이 맛있어야 다 맛있잖아. 똑같은 기야. 또 이동막걸리는 다른 술같이 골이 안 아파, 난 아침에 해장 안 해 냉수 한 그릇 딱 마시면 괜찮아.”

 

일흔 아홉, 고단한 나이지만. 그녀는 365일 아침 여섯시면 가게 문을 연다.

 

 “술이란 고만이 없어. 먹을 만큼 먹어야지맛있잖아 술막걸리와 인생을 살아보니 그래도 즐거워. 힘은 들지만, 징글징글도 하지만, 그걸 사랑해야지 어떡하니. 내 밥벌이인데한 때는 멀리 갈 맘도 있었어. 애들 때문에 살고살고 보니 또 희망이 있더라고.” 

 

경기도민이야기 홈페이지에 들어가시면 구술이야기, 동영상, 책자를 보실 수 있습니다.

 

구술정리. 이현주(여행 작가)

 

[참고자료]

홈페이지 : 경기도메모리 테마자료 - 경기도민 술 이야기

http://theme.library.kr/sool/intro.html

책자 : 술과 함께 삶을 빚어가는 사람들 / 경기도사이버도서관 편. 2016.

http://theme.library.kr/sool/book.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