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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들의 책 이야기

그러므로 깨어있으라

o 서평대상 서지사항

동물농장 : 일반 / 조지 오웰 글. 도정일 옮김. - 민음사, 1998

160p. ; 23cm.

9788937460005 : 7,000

o 분야

일반도서 (800)

o 추천대상

청소년 및 성인

o 상황별추천

깨시민이 되길 원하는 분들게 추천

 

 

 

이병희 (안성시 보개도서관)

 

 

쇼생크의 탈출과 마가복음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일는지, 밤중일는지, 닭 울 때일는지, 새벽일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마가복음 1335)

 

저는 무신론자입니다. 당연히 하느님의 말씀 같은 것엔 관심이 없습니다. 위에 소개한 성경 구절도 영화를 보다가 우연히 접하게 된 것입니다. 그 영화는쇼생크의 탈출입니다. 사실 이 작품은 고등학교를 다닐 때 처음 접한 이후로 최소한 스무 번은 보았을 정도로 아주 좋아하는 영화입니다. 그런데도 영화 속에 이 구절이 등장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최근이었습니다. 이 구절은 주인공 앤디 듀프레인과 교도소장 노튼이 처음 만나는 장면에 등장합니다. 중범죄인이 성경을 가지고 있는 것이 기특했던 노튼이 앤디에게 좋아하는 구절이 있느냐고 물었고, 앤디가 그 답변으로 마가복음 1335절을 암송했던 것입니다. 이 구절은 저에겐 그저 많고 많은 영화 대사 중 하나였을 뿐이었습니다. 기억 속에 남지 않았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러분들도 이런 경험 하나씩은 다 있을 것입니다. 어떤 영화를 한 번 보았을 땐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장면이나 대사가 훗날 다시 봤을 때는 눈에 확 띄거나 감동적으로 다가왔던 경험 말입니다. 쇼생크의 탈출 속 마가복음 1335절이 저에겐 그랬습니다.

영화 속에서 이 구절을 발견하게 된 것은 올해 초, 박근혜 정부의 무능과 부패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우리나라가 극도의 혼란에 빠져있을 때였습니다. 모두가 마찬가지였겠지만 저 역시 어쩌다 우리나라가 이 꼴이 되었나하는 생각에 가슴이 너무나 답답했습니다. 그날도 잠이 오지 않아 밤늦게까지 뉴스를 보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었습니다.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한 케이블 채널에서 방영하던 쇼생크의 탈출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문제의 성경 구절을 맞닥뜨리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일는지, 밤중일는지, 닭 울 때일는지, 새벽일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소름이 돋는 느낌이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억울해할 처지가 아니구나! 집 주인이 언제 올지도 모르고 게으름을 피우다 벌을 받은 하인의 변명이 구차한 것처럼, 박근혜 정부의 실정(失政)에 관심조차 없다가 이제 와서 누구 책임이냐고 따지는 나의 태도가 참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나, 그리고 우리의 무관심과 태만이 우리나라를 바로 잡을 골든타임을 놓치게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오래 전 읽었던 책이 한 권 떠올랐습니다. 바로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입니다.

 

가장 위대한 정치우화소설

동물농장19458월에 발표되었습니다. 줄거리를 간단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인간에 의해 착취 당하던 매너 농장의 동물들이 돼지의 지도 아래 혁명을 일으켜, 인간들을 내쫓고 착취가 없는 모든 동물이 평등한 이상사회(理想社會), 즉 동물농장을 건설하고 다음과 같은 7가지 동물주의 원칙을 정합니다.

 

1. 두 다리로 걷는 자는 모두 적이다.

2. 네 다리로 걷거나 날개가 있는 자는 친구다.

3. 어떤 동물도 옷을 입어서는 안 된다.

4. 어떤 동물도 침대에서 잠을 자서는 안 된다.

5. 어떤 동물도 술을 마셔서는 안 된다.

6.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을 죽여서는 안 된다.

7. 모든 동물들은 평등하다.

 

7개 원칙 아래 동물농장의 동물들은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열심히 일을 합니다. 하지만 어느새 동물농장은 돼지만이 특권을 누리는 곳으로 변질됩니다. 특히 암투 끝에 권력의 한 축인 돼지 스노볼이 추방된 후에는 나폴레옹에 의한 노골적인 독재정치가 펼쳐집니다. 그리고는 인간에게보다 더 가혹한 착취에 시달리게 되죠. 나폴레옹을 필두로 한 돼지들은 동물주의 원칙마저 자기들의 입맛에 따라 바꿔가며 동물농장의 구성원들을 핍박합니다. 그리고 돼지들은 인간의 탐욕에 물들어 버렸는지 그 외양마저 인간을 닮아버렸고, 동물들은 더욱 큰 절망을 느끼며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동물농장은 1984와 더불어 조지 오웰이 써 낸 대표적인 정치비판 소설입니다. 두 작품의 차이점이라면 1984가 암울하고 비관적인 분위기로 일관한 반면, 동물농장은 해학적, 풍자적 요소가 짙은 우화형식을 취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우화형식의 동물농장이 1984에 비해 보다 더 주제의식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 같습니다. 가끔은 웃으며 하는 충고가 훨씬 날카롭게 느껴지듯이 말이죠. 오웰 스스로도 내 평생 피땀을 쏟아 완성한 유일한 작품이라고 평할 정도였습니다. 많고 많은 정치소설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작품의 하나로 동물농장이 손꼽히는 것은 바로 농담과 같은 우화 속에 감춰진 메시지의 예리함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므로 깨어있으라....

오웰은 전체주의, 즉 집중된 권력은 변질되고 부패할 수 밖에 없다고 강력히 경고하고 있습니다. 소설 속에서 돼지들이 동물주의원칙을 제 멋대로 고치는 모습을 보면 집중된 권력의 추악한 속성이 잘 드러납니다. 특히 돼지들이 마지막 원칙인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를 수정하는 장면이 압권입니다. 그들은 이 원칙을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욱 평등하다(However, some animals are more equal than others.)라고 바꿔버립니다. 가장 중요한 제7원칙을 문맥조차 맞지 않는 억지 원칙으로 탈바꿈해버리는 과정을 보면서, 우리는 집중된 권력이 결국에는 어떤 방식으로 특권계층의 존재를 합리화, 합법화 시키는지 알게됩니다.

오웰의 이 소설이 실제 일어났던 일을 기반으로 한 우화소설인 만큼, 소설 속 동물농장은 얼마든지 현실 세계에 펼쳐질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벌어졌던 일련의 사태를 보면, 우리나라는 당시 우리나라는 이미 동물농장이었습니다. 한줌도 되지 않는 일부 세력들이 국민의 눈과 귀를 속이고 제 배를 불려댔고, 국민들은 국가에 속고 있는 줄도 모르고 그저 열심히 일만 하고 있었습니다. 똑닮았습니다. 말 그대로 판박이입니다. 한 번 당하면 억울하다고 말할 수 있지만 두 번 당하면 변명조차 할 수 없는 법입니다. 우리는 이미 과거 군부정권 하에 혹독한 동물농장의 시절을 겪었습니다. 그러고도 얼마전 또 동물농장이 우리나라에 재현되었습니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일입니다. 우리가 너무 어리석었습니다. 세 번은 당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마가복음 1335절의 가르침처럼 항상 깨어있어야 합니다. 주인이 언제 올지 모르듯, 권력은 언제 변질될지 모릅니다. 우리 모두 깨시민(깨어있는 시민)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잠깐만 졸고 있는 사이에도 동물농장의 무대가 펼쳐질지 모를 일입니다. 항상 맑은 정신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은 우리의 잠을 쫓아줄 시원한 물 한바가지와 같은 책입니다. 진정 깨어있기를 원하신다면 항상 가까이 두고 틈틈이 읽어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