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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들의 책 이야기

일렁이는 검은 바다의 아픔을 만나다


일렁이는 검은 바다의 아픔을 만나다

 

『아픈바다』엄정원 글·그림, 느림보, 2011, 33p., 11,000원,
 ISBN: 978-89-5876-122-8


    수채화의 맑은 물빛을 머금은 어촌의 풍경. 그러나 곧 잿빛 목탄으로 그려진 무섭게 일렁거리는 거친 파도가 그림책도, 독자의 마음도 삼켜버린다. 어디로 가버렸을까. 푸르고 싱싱한 바다의 내음, 빛나는 생명력으로 바다를 가꾸며 살아가는 작은 생명들의 꿈틀거리는 기운. 책을 감싸는 단조 선율의 비애와 절망은 마침내 새까만 바다의 울음소리로 울려 퍼진다.

   『아픈바다』는 2007년 겨울의 태안 앞바다를 떠올리게 한다. 유조선에서 유출된 검은 원유가 띠를 이뤄 퍼져나가고 바다는 그대로 쏟아진 기름을 떠안았다. 아무도 책임이 없다고 하지만, 바다와 바다의 생명들은 죽음으로 감수해야 했다. 휘돌아 철썩이는 검은 파도는 해안과 마을로 들어오고 사람들도 떠나야 했다.
    아빠는 아이를 남겨두고 섬을 떠났다. 마을도 바다처럼 검게 변하고 아이의 얼굴은 표정도 없이 검다. 아빠를 쫓아가다가 벗겨진 유채색 슬리퍼처럼, 아이는 섬에 남겨진 아빠의 희망이다. 사람들도, 땅도, 하늘도 온통 잿빛으로 변했다. 마지막까지 푸른 물빛 위로 날던 갈매기도 날아가 버렸다. 아빠가 돌아오면 아이와 가족은 섬을 떠날 수 있
다. 아이는 돌고래 장난감을 손에 쥐고 아빠를 기다린다. 마지막에 펼친 페이지의 그림에서 작가는 떠날 수도 없는 아픈 바다가 어깨를 들썩이며 운다고 했고 독자들은 일렁이는 검은 바다의 울음소리를 듣는다. 어디로 가버렸을까. 철썩거리며 힘차게 달려오는 푸른 파도의 거품들.

    엄정원의 처녀작『아픈바다』는 그림책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서정성을 담고 있다. 작가는 오염되고 생명이 사라진 바다를‘아프게’보았고, 그 아픔은 고리처럼 연결되어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이기도 한 사람들에게 스며들어‘슬프게’작동한다. 아픔으로 시작해서 절망으로 끝나는 이 그림책의 무거운 정서는 다소 독자들을 당황스럽게 할 수 있
다. 많은 책들이 갈등과 갈등 극복의 이야기 구조로 구성되어 있고 이에 익숙한 그림책 독자들에게 이 책은 문제작일 수 있다. 독자들은 펼쳐진 채 극복되지 않는 갈등과 비애감을 안고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면서 스스로 감정을 추슬러야 한다. 푸르던 바다가 검게 변하면서 마무리되는 마지막까지 독자들을 휘청거리게 한다. 차갑게 가라앉은 모
습으로 그 아픔을 조근조근 이야기하는 바다는, 일렁이는 검은 바다의 울음보다 더한 절망감을 안겨준다. 그 여운은 불편하기까지 하다. 그림책이 갖는 즐거움도, 교훈적 메시지도, 명랑함과 따뜻함도 없는『아픈바다』에는, 절망하였으나 살아갈 수밖에 없는 한(恨)의 정서가 담겨져 있다.

   『아픈바다』는 환경문제를 작가의 시선으로 풀어낸 이야기 구성이라는 점에서도 눈에 띄는 그림책이다. 자연은 아름다운 곳이고 우리의 터전이기 때문에 잘 보존해야 한다는 교육적 메시지를 벗어나, 외면하고 싶은 불편한 진실을 독자들에게 불편한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어두운 색조와 무거운 주제로 독자들에게 똑바로 보라며 도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도전적 방식에도 몇 가지 아쉬움은 있다. 독자들은 도입부부터 바다를 떠나는 사람들과 아이를 떠나는 아빠를 보면서 바다의 아픔과 아이의 슬픔을 동일시하며 이야기를 쫓게 된다. 하지만 마지막 장에서 아빠는 돌아와 아이를 데리고 떠날 것이고 바다는 떠날 수 없어 울고 있다는 결말을 보면서 동일시되었던 개체들은 일시에 분리된다. 갑작스럽게 분리된 두 개체의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독자들은 몰입했던 감정의 혼란을 겪을 수 있다. 이야기를 이끌고 가는 바다와 아이의 비애가 서로 통하여 독자들에게 마지막까지 잘 전달되었다면, 그 감동이 배가 되지 않았을까.
    한 가지 더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림의 재료가 가지고 있는 물성에 대한 것이다. 수채와 목탄은 아주 다른 특성을 보여줄 수 있고 이 그림책에서도 그 다름이 대조적 상황을 연출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할 수있다. 거친 목탄의 리듬 있는 선이 어둡고 무거운 바다를 보여줄 수있는 반면, 퍼지면서 부드럽게 면을 만드는 수채화는‘반짝반짝 빛이
났던’싱그러운 바다와 사람들을 보여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그림책은 이미 목탄의 물성으로 점유되어 버렸고, 푸른 수채는 보조적 재료가 되었다. 더 많은 색을 보여주는 맑은 수채화가 목탄과 대조를 이루었다면 재료들의 힘이 더 크게 부각되고 내용적으로도 상징성을 부여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돈을 벌면 다시 데리러 오겠다는 아빠의 약속이 상투적 장치라는 점과, 마을 사람들이나 가족의 묘사에서 그림의 감정이 글보다 다소 과장되어 있다는 점도 못내 아쉽다.

   『아픈바다』는 작가의 주관과 도전이 아름답다. 작가들은 책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자기만의 말투로 이야기한다. 재미있는 책은 독자들에게 즐거움과 유쾌함을 주고, 슬픈 책은 안타까움과 감동을 주기 마련이다. 작가 엄정원은 흔치않은 주제설정과 방식으로 독자들에게 무기력함과 절망감을 안겨준다. 삶이 늘 즐겁기만 하지 않듯이, 그림책이 보여주는 세상도 늘 즐겁기만 할 수는 없다. 『아픈바다』와 같이 그림책에서도 다양한 주제들이 다양한 감성으로 폭 넓게 이야기되기를 바란다.

— 위 인(용인 두꺼비네집도서관 관장)


* 2011 경기도사서서평교육 결과보고서 『813.8 사서, 어린이책을 말하다 2011』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