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은실 글. 서현 그림.
비룡소,2013
ISBN : 9788949121543
어린이동화
일수의 탄생
손민정(평택시립장당도서관 사서)
우리는 흔히 말한다. 보통이 가장 어려운거라고. 보통만 하면 된다고. 그런데 여기 완벽하게 보통이라서 힘든 아이가 있다. 바로 ‘일수의 탄생’의 주인공 백일수다.
일수는 태어나기부터 부모님의 기대와 관심을 한 번에 받는다. 결혼한 지 오래도록 아이가 생기지 않았던 부부는 똥 태몽을 꾼 뒤 임신을 하고 7월 7일에 일수를 낳는다.
일등하는 수재가 되라는 뜻으로 지어진 ‘일수(一秀)’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일수는 너~무 너~무 평범해서 어딜 가든 눈에 띄지 않는 아이로 자라게 된다.
심지어 일수의 생일파티인데도 친구들은 일수의 존재를 잠시 잊고 놀다가 뒤늦게야 일수를 챙길 정도로 일수는 있는 듯 없는 듯 한 아이다.
학교 담임선생님이 발견한 일수의 특징은 놀랍게도 모든 면에서 딱 중간이라는 점. 또 하나있는 일수의 특징은 ‘~하는 것 같아요.’라는 말을 자주 쓴 다는 것.
문방구를 하는 일수의 엄마는 일수가 학교 서예부 대표로 낸 ‘하면 된다’라고 적힌 글씨를 자랑스럽게 가게에 내건다. 그리고 일수 엄마는 항상 입버릇처럼 말한다.
우리아들은 붓글씨로 엄마를 돈방석에 앉힐 거라고 말이다. 그렇지만 정작 글씨를 쓴 일수는 왜 붓글씨 쓰는 게 좋은지, 자신의 글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묻는 명필선생님의 질문에 ‘~그런 것 같아요’ ‘~모르는 것 같아요’라고 대답할 뿐이다.
똥을 먹고 태어난 일수, 매일 코딱지를 후벼 파는 아빠, 주책덩어리 일수바라기인 일수엄마까지 모든 등장인물들과 내용은 우습고 코믹한데, 이런 상황에도 글의 문체는 일수처럼 덤덤하고 침착하다.
‘일수의 탄생’은 부모님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태어난 일수의 탄생부터 어린이 백일수, 청년 일수, 가훈업자가 된 백일수씨까지의 삶을 풀어냈다.
아무리 동화책이라지만 한사람의 인생이 120페이지 남짓에 다 표현될 수 있을까? 싶지만 미치도록 평범하고, 어떤 게 좋은 건지 잘 모르겠는 일수의 인생이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여운이 남았던 책의 마지막, 서른이 돼서야 사춘기가 온 일수의 인생은 책에 쓰이지 않은 120페이지 이후에야 조금은 덜 평범해 질 것이라 생각한다.
작가 유은실이 12년 전부터 쓰고 덮어두고 고치기를 반복해 세상에 나왔다는 이 책이 오래된 외로움으로 어떤 아이를 꼭 안아주기를 바란다고 말하는 작가의 진심어린 마음이 책을 통해 잘 나타난다. “일수야 넌 누구니”, “네 쓸모는 누가 정하지?”라는 구절이 마음에 깊게 와 닿는 이 책을 현실이 요구하는 기대에 발맞출 뿐 정작 내가 누군지 고민할 틈 없이 사춘기를 보내는 어린 아이들에게, 또 아직 일수처럼 아직 사춘기를 겪지 못한 어른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계속해서 남을 위한 가훈만 붓글씨로 써주었지만 정작 자신의 가훈은 써 본적이 없었던 일수씨. 당신의 가훈은 무엇입니까? 당신은 누구입니까?의 질문에 ‘일수의 탄생’을 읽으며 천천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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