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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들의 책 이야기

곶감이 무서워 도망간 그 호랑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저승사자에게 잡혀간 호랑이」김미혜 글. 최미란 그림. 사계절, 2008. 



    첫 장을 펼치면 따스한 호롱불 아래 옛 이야기를 주고 받는 할머니와 손자의 익살스런 그림자가 펼쳐진다. 무슨 이야기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귀를 대어보니, 바로 저승사자에게 잡혀간 호랑이 야기렷다.

    쿵! 집채만 한 호랑이가 피를 흘리며 쓰러지자, 온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여들어 "호랑이가 왜 여기 떨어져 죽었지?"라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바로 그때, 하늘 저 멀리서 달려온 저승사자, 호랑이의 넋을 끌고 사라지니, 이 호랑이가 바로 떡 좋아하던 그 호랑이. 어느 절의 불화에서 단체로 나오신 듯한 저승대왕들이 쭉 둘러앉아 지켜보는 가운데, 업경을 통해 호랑이의 생애가 리바이벌되니 그놈 호랑이, 살아생전 죄를 참 많이도 지었구나. "떡으로도 모자라 엄마의 팔다리를 잘라 먹고, 그러다가 통째로 잡아먹고, 이번에는 오누이까지! ... 어허 죄가 끝이 없네 그려!"
    이제 죗값을 받을 차례. 설설 끓는 가마솥에 삶기고, 얼음지옥, 독사굴에 떨어지고, 그놈 혓바닥을 쭈욱 뽑아 황소가 쟁기질하는 것도 모자라, 칼산지옥에 홀라당 내동댕이쳐지는 구나. 이쯤되면 동생한데 사탕 뺏은 형들, 엄마한테 형 고자질한 동생들 머리 꽤나 쭈뼛거리겠다.
    어째거나 저승대왕님들 마음도 넓으시지, 뉘우치는 호랑이 죄를 사해주고 다음 생에 또다시 호랑이로 태어나게 해주셨구나. 다시 호랑이로 태어난 그 호랑이 여러 해를 살다, 다시 생을 마감하고 저승사자를 따라 나섰지. 많은 저승대왕이 지켜보는 가운데 거울 앞에 다시 선 호랑이. 이 호랑이는 나무꾼한테 형님 소리 듣던 바로 그 호랑이였어. '남을 의심하지 않는 순박한 마음과 어머니를 위해 정성을 다한  값진 마음' 덕분에 저승 대왕들에게 칭찬 듣고 다음 생애는 또다시 사람으로 태어나게 되었다지.
    그 호랑이는 어떤 사람으로 태어났을까? 그 호랑이가 바로 호롱불 아래서 이 이야기를 듣고 있는 손자라나? 그런데 말이야, 예전에 곶감이 무서워 도망간 그 호랑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하지 않아?


오싹오싹 무섭지만 재미있고 진지한 우리 이야기

    맹수로서의 호랑이는 무서운 존재지만, 우리 민화나 옛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호랑이는 해학 넘치고 우스꽝스럽다 못해 사랑스럽기까지 한 존재이다. 이 책은 어린 시절 엄마 따라 찾아간 절에서 염라대왕 그림을 본 기억이 있거나, 할머니로부터 호랑이 이야기를 듣고 자란 우리 아이들만이 느낄 수 있는 우리 정서가 듬뿍 담긴 그림책이다. 국적 없는 도서들이 난무하는 근래의 출판환경에서 우리 문화, 우리 조상들의 생각을 이렇듯 잘 담아낸 점은 이 책의 미덕이며, 불교출판문화협회가 선정한 '2008 올해의 불서 10'종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게다가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 쯤 해봄직한 생각들, 죽음 이후의 세상, 즉 저승과 육도, 윤회 등 절대 가볍지 않은 철학적 주제를 '호랑이'라는 친숙한 캐릭터를 차용하여 맛깔스럽게 버무려 놓았다.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여러 편의 전래 동화 속 단골손님, 호랑이를 등장시킴으로써, 아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듯 귀를 쫑긋하게 하는가 하면, 윤회와 권선징악에 대한 메시지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많은 세월이 흘러 나는 다시 어떤 모습으로 태어날지, 그 전에 업경을 마주했을 때 거기에 비친 내 모습이 어떨지는 아이만이 아닌 어른들에게도 적지 않은 무게와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가마솥지옥, 얼음지옥, 칼산지옥, 혓바닥 쟁기질까지 도대체가 만만한 벌이 단 하나도 없다. 죄짓지 말고 살아야지.... 그리고 문득 떠오른 생각, '설마, 내가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 그 호랑이는 아니겠지?' 어쨌거나 오늘의 내가 살아가는 모습을 다시금 돌이켜 볼 일이다.

유현미 (평택시립도서관 사서팀장)

책은 내 삶의 위안이자 즐거움이었다.
어린 시절 '책이 억수로 많은 집'에 시집가겠다고 하던 말이 씨가 됐는지,
도서관 사서가 되었다.
빛바랜 기억 속의 학교도서관
한 켠에 쭈그려 앉아 책 보던 꼬맹이는 이제 '책이 억수로 많은 도서관'에서
어린 꼬맹이 손님들을 위한 책을 고르고 있다.
처음으로 서평과 진지하게 마주해본 시간이었다. 아직 서툴지만, 처음 만난 누군가가 의미 있게 다가올 때의
이 두근거림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