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을 기억한다는 것.
여우 제삿날/ 한미경 글, 이지선 그림 : 학고재
학고재 출판사에서 펴내는 대대손손 시리즈는 우리 선조들의 삶과 정신을 소개하기 위해 기획된 연속 기획물로 먼저 세상에 선을 보인 책은 『 네가 세상에 처음 왔을 때』, 『어른이 되는 날 』, 『육십고개 넘으셨다. 우리 할머니!』,『 나는 뭐 잡았어?』, 『책 씻는 날』 등이 있다. 8권으로 나온 책이 오늘 소개할 『여우 제삿날』 이다.
한눈에 쏙쏙 들어오는 그림이 저자에 대한 궁금증을 부른다. 그림을 그린 이지선 작가님은 2006년 볼로냐 국제 아동도서전에서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되었고 영국 일러스트레이터 협회 뉴탤런트 상, CJ그림책 축제 100인의 그림책 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다. 이야기 저자는 한미경 선생님으로 『잃어버린 우리 문화재』 , 『둥글둥글 지구촌 문화유산 이야기 』 등의 책을 쓰셨다.
『여우 제삿날』은 우화형식을 빌어 제사 지내는 방법과 마음가짐 등을 풀어내고 있는데 무엇보다 책의 전반에 걸쳐 아름답고 특색있는 그림이 한 편의 이야기가 되어 글의 흐름을 끌어가는 힘이 있다.
백년은 넘게 산 여우가 얼마나 콧대높고 잘난체를 하는지 친구하나가 없었는데 언제부턴가 으슬으슬 춥기 시작한 몸이 낫지를 않아 신령님을 찾아가 물으니 외로움이 깊어서 생긴 병이니 누군가를 기억하고 정성껏 제사를 드리면 된다고 일러준다. 여우는 신령님이 일러준대로 마을로 내려가 사람들을 관찰하며 제사 지내는 방법을 알게 된다는 이야기다.
이 책의 장점은 뭐니뭐니 해도 그림을 읽는 재미에 있다. 제를 지내는 모습 (“대추 옆에 밤, 밤 옆에 배, 배 옆에는 감을 놓게나” 혹은 “ 생선은 동족으로, 고기는 서쪽으로 놓게나” “ 축문 다 쓰셨으면 향을 피우시게나” )을 묘사해놓고 맞은편에 관련 그림을 배치하였는데 그림을 가만 들여다보면 또다른 이야깃거리가 꼬리를 무는 식으로 생겨나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게 해준다.
그래 제사를 지낼 때는 향냄새가 나고 적, 찜, 과일 등의 음식을 준비하고 축문을 쓰며 조상을 기억하는 과정임을 상상하는게 어렵지 않다. 또한 상다리 부러질만큼 그득그득 음식이 쌓여 있지 않아도, 사람들이 하는 것을 똑같이 따라하지 않아도 진심을 다하는데 제사의 참뜻이 있음을 여우의 감정변화를 통해 설명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오래도록 여운을 남겨준다.
인상 깊었던 것은 어머니를 비롯해 수문대장, 조왕할머니 상을 차려놓고 기원드리는 장면이었다.
『“하나는 대문을 지켜주시는 수문대장 상이고, 하나는 부엌을 지켜 주시는 조왕 할머니 상이고, 하나는 떡 좋아하시던 우리 어머님 상이니 아가야 우리는 좀 참자꾸나” 』 우리 조상님들은 대문, 부엌, 장독대, 심지어 뒷간에도 신이 있다고 믿는 풍습이 있었다. 그들이 미련해서가 아니라 재앙을 피하고 복을 기원하는 마음에서 빼놓지 않고 치성을 드렸다. 옛 신앙을 언급함으로써 잊고 있던 기억을 살려주니 이 또한 이 책의 미덕이다.
한 때 남의 손을 빌어 제사를 지내고 휴가를 떠난다는 사람들이 매스컴에 등장했었다. 변화에 맞춰 편하게 지내도 된다는 생각과 그래도 어떻게 제사가 뒷전일 수 있느냐는 의견이 분분했는데 책 속 주인공들이 튀어나온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슬며시 웃음이 난다.
누군가 그리움에 대해 묻거든 백년 묵은 여우의 이야기를 들려줘야겠다. 여우가 알아냈듯이 감사하는 마음이 서로에게 가닿고 정성을 다하면 누군가에게 영원히 기억된다는 것도 전해줘야지. 제사라는 전통의례의 의미를 훌륭하게 표현해 낸 책으로 손색이 없다.
정영춘(부천시원미도서관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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