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터널과 같은 것
황금깃털 / 정설아 지음, 소윤경 그림. - 문학과 지성사.
‘ 그 때 그 일만 없었다면..... ’
일을 그르치거나 뜻하지 않은 실수를 저질렀을 때 누구나 한번쯤 시간을 돌이키고 싶다는 바램을 가져본 적이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사랑하는 이를 갑작스런 죽음으로 잃었을 때, 그 간절함은 더해진다. 얼마 전 친정엄마를 황망하게 떠나 보낸 후, 난 한번만이라도 시간을 되돌려 얼굴을 마주할 수 있다면 어떤 댓가라도 지불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단 5분만이라도 살아 오실 수 있다면 그저 꼭 안아 드리고 ‘사랑한다’ 말해 드리고 싶었다. 시간이동판타지를 다룬『황금 깃털』은 내게 그런 절실함으로 다가왔다. 그래서인지, 시간을 되돌린다는 설정은 많은 문학 작품이나 영화 등에서 드물지 않게 사용하는 클리셰이다. 영화 <If only> 에서는 사랑하는 연인 사만다를 잃은 이안이 그녀와의 마지막 날을 계속 되풀이 하는 과정을 통해 점점 변해가는 자신을 느끼게 되고,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깨달게 된다. 시간의 유한함이 다른 곳을 향해 있던 이안의 시선을 삶의 본질로 돌려 놓은 것이리라.
반면, 『황금 깃털』은 삶과 시간에 대해 좀더 긴 호흡의 질문을 던진다. 가정에서의 소외와 학교폭력에 놓인 아이의 모습을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현실과 판타지로 탄탄하게 엮어 설득력있고 흥미진진하게 보여준다.
바쁜 엄마와 아빠를 대신해 자신을 키워 주셨던 할머니와의 사별 후 마음 속 외로움을 키워가던 해미는 자신의 의도와 달리 학교 폭력에도 개입하게 된다. 일이 점점 꼬여가던 중 우연한 기회에 ‘ 시간의 섬’ 으로 이끌리고 과거를 고칠 수 있는 황금깃털을 얻게 된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과거 고치기에 집착하면 할수록 점점 결과는 어긋나기만 하고, 후회를 지우기 위해 더욱 후회할 만한 행동을 반복하게 된다.
분명 시간을 가졌는대도 해미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할머니의 건강을 다시 돌려 놓을 수도, 그 모든 고통을 끝낼 수도 없었다. 결국, 과거로 돌아가도 과거의 현실에 닥친 문제는 또 다른 모습으로 언제든 나타났다. 할머니 말대로 어둠을 견디지 않고 피하기만 하면 더 큰 어둠을 견뎌 내야 했다. 해미는 괴로운 일이 있을 때마다 늘 ‘시간이 약’이라고 말했던 할머니를 떠올렸다. 할머니는 ‘시간은 터널과 비슷하다’고 했다. ‘어둠 끝에는 항상 밝음이 있는 거라고... 당장 눈앞에 높인 어려움이 해결 될 것 같지 않아 두렵고 무서워도 조금만 견디다 보면 모든 것이 보이게 되어 두려움과 무서움을 이겨낼 수 있는 거’라고. ‘좋든 나쁘든 지나온 과거가 모두 힘이 된다고’.
시간을 바꿀 수는 있으나 모든 문제는 시간의 돌이킴이 아니라 삶을 직면하는 것임을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해미의 가슴으로 스며든 ‘황금깃털’은 깨알 같은 순간이 모여서 만들어진 자신의 정체성이자 삶이었던 것이다.
해미는 마음 속 자신이자 그리움의 대상인 할머니에게 이야기 한다.
“ 그래 이제 나도 깨달았어. 내가 원래 있던 그 자리가 얼마나 소중한 지를... ”
해미는 현재를 살아가고 싶었다. ‘이 일은 견딜만한 것’이라고 이미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 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내가 아직 모르는 감추어진 나에 대해, 그리고 현실 속에 숨어 있는 진실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리고 독자들에게도 인생의 많은 문제에 대해 말을 걸어 온다. 아이들 문제를 다루었지만, 인생 전체에 대해 생각케 하는 어른스러운 작품이다. 제8회 마해송 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평택시립도서관 팀장 유현미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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