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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들의 책 이야기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세상

o 서평대상 서지사항

해소녀 / 글 고희선, 그림 이영경. - 나한기획. 2013. 9788996787877

o 분야

그림책

o 추천대상

초등고학년이상

 

 

 

 

오은아 (남양주시 오남도서관)

 

 

밤의 나라임금님은 창백한 얼굴, 멸시하고 조롱하는 눈빛, 차가운 숨결, 그리고 비정한 손길로 사람들을 다스렸다. 메마른 땅에는 열매가 열리지 않았고, 꽃도 피지 않았으며 곡식도 말라 죽어버렸다. 황량한 밤의 나라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미워하고 짓밟았다. 임금님은 흐흐흐, 버러지 같은 것들, 잘 한다. 세상이 다 그런 거야.” 라며 비웃음을 흘렸다. 그 모습을 본 달 어머니와 별 아가씨, 구름할아버지와 바람 청년은 밤의 나라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해소녀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왜 하필 소녀였을까? 달도 아니고, 별도 아니고 여야만하는 이유, 그 무엇에도 가려지지 않는 강력한 빛을 스스로 내뿜는 존재이기때문이 아니었을까?

 

무지하고 연약한 군중

해소녀의 사랑과 돌봄으로 밤의 나라에는 온기가 충만해졌다. 꽃과 나무, 열매가 자랐으며 사람들은 서로를 위하면서 살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해소녀가 사람들을 잡아먹기 위해 나타난 마녀라는 소문이 돌자 겁에 질린 사람들은 해소녀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군중의 단합력은 해소녀가 정말로 마녀라는 여론을 만들어내고 갈수록 심해지는 괴롭힘에 해소녀는 피투성이가 되고 만다.

이야기의 전반부에서 둥글고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던 해소녀의 얼굴은 후반부에 이르자 딱딱한 직선의 형태로 포현된다. 좌우 대칭구도로 그려진 해소녀와 밤의 나라 임금의 옆얼굴을 한번 들여다보자. 해소녀는 아주 희미하게나마 빛나고 있는 몇 올의 머리카락을 제외하고는 제 빛깔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검고 탁한 얼굴빛과 곳곳에 자리 잡은 직선이 냉정한 밤의 임금과 닮아있다. 그 둘은 서로를 응시하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처음에는 자신들을 구하러 온 해소녀의 온기에 환호했던 사람들은 출처가 불분명한 가십거리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한다. 그 소문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 비틀리고 부풀려져 마침내 해소녀를 만신창이로 만들고 만다. 자기 판단력이 없는 개인은 작은 가십거리에도 공포를 느끼며 쉽게 동조한다. 빛과 온기를 잃어버린 세상에서 이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2. 해소녀의 고귀한 희생정신

해소녀는 자신을 꽁꽁 묶고 있던 어둠을 한껏 들이마시고 깊고도 깊은 저 푸른 바 닷속으로 점점 나아갔습니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신을 키웠던 지혜와 생명의 저 깊은 바닷속으로…….” (p. 52)

해소녀는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한 줄기 빛마저 어둠으로 변하기 전에 자신을 둘러싼 모든 어둠을 끌어안고 깊은 바닷속으로 가라앉기로 결심한다. 해소녀가 사라진 밤의 나라에는 짙은 회색 빛 절망과 어둠이 가득 찼다.

가장 어두운 어둠이 내려앉을 때, 가장 밝은 태양이 떠오르는 법” (p. 56)

그 순간 바닷속에서 찬란한 빛이 터져 나와 온 세상을 환히 비춘다. 이것은 어쩌면 해가 뜨고 지는, 그리고 해가 지고 다시 떠오르는 자연의 순환을 이야기하는지도 모른다. 가장 차고 어두운 새벽은 동이 트기 직전의 시간이기도 하니까. 그렇게 태어난 빛은 멀리 뻗어나가 사람들의 그림자를 걷어내고 마침내 밤의 나라 임금님의 얼굴마저 생기가 돌게 만들었다. 해소녀의 희생과 포용이 만들어낸 찬란한 빛은 그 무엇으로도 가릴 수가 없게 되었다. 이제 밤의 나라에 가득한 빛은 해소녀가 뿜어내는 것을 반사하여 빛나는 것이 아니라 해소녀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부터 되살아난 빛이기 때문이다. 작품 전반부에서 검은 그림자 형태였던 사람들은 이제 스스로 뿜어내는 색깔들로 생동감이 넘쳐난다.

3. <해소녀>를 통해 본 인간 내면의 양면성

책품을 읽다보면 해소녀와 밤의 나라 임금님, 즉 빛과 어둠을 대립적으로 볼 수도 있지만 사실 이 둘은 다르면서도 닮아있는데다가 상대방의 존재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모순적인 관계성을 보인다. 인간도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자연의 질서에 따라 살아간다. 이 작품을 한 인간의 내면세계로 옮겨보자면 그림자로 표현된 우매한 민중들은 빛과 어둠 사이에서 끊임없이 번민하는 현대인의 파우스트적 자아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내면세계에서 일어나는 이 치열한 싸움의 결말은 어느 한 쪽의 승리가 아니다. 해소녀가 어둠을 들이마시고 깊은 바닷속으로 가라앉은 뒤에 가장 찬란한 빛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듯이 우리의 안에 빛뿐만 아니라 어둠 역시도 존재하고 있음을 받아들이고 이 둘을 통합해나가는 것, 바로 진정한 자아실현의 과정이다.

4. 작품 이모저모

일반적으로 동양의 음양사상에 따라 한 것을 남성적 이미지, ‘한 것을 여성적 이미지로 그려내지 않았다는 점이 신선하다. 작품 전반에 걸쳐 해, 밝음, , 따뜻함, 아침 등의 양적인 이미지는 여성의 모습으로, 차가움, 어두움, 밤 등의 음적인 이미지는 남성의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다. 물론 아쉬운 점은 있다. 괴롭힘 당하고 상처 입은 해소녀, 우매한 군중들을 교묘하게 조종하여 해소녀를 몰아내려고 하는 밤의 나라 임금님, 그리고 판단력 없이 휘둘리다가 나중에는 희생자자체를 유희거리로 삼는 군중의 이야기로 읽는 것이 아이들 입장에서 가장 이해하기 쉬운 해석이겠지만 자칫 따돌림이나 마녀사냥의 희생자가 다수를 위해 인내하고 무조건적으로 희생하는 것이 미덕이라는 인상을 심어줄 수 있을 것 같다. 이 작품이 상처가 있는 아이들의 마음에 조금이나마 치유가 되었으면 좋겠고 그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잠재적 방관자인 불특정 다수가 쉽게 흐려지지 않는 눈과 판단력을 기를 수 있게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