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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들의 책 이야기

할머니가 사라졌다.

 

할머니가 사라졌다

이가영 (평택안중도서관 사서)

 

할머니가 사라졌다 / 박현숙 글 / 김현영 그림, 시공주니어. 2014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타임푸어라는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우리는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왜 항상 시간이 부족한 지에 대한 논의가 수면 위로 올라온 적이 있었다. 그도 당연한 것이 한국인의 노동시간은 OECD 평균보다 530시간 많은 2163시간(2014년 기준) 으로 OECD 국가 중 2위에 등극하였으며, 수면시간 또한 최하위를 기록하였다고 한다. 어린이 책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과 관련된 책과 우리나라의 노동시간을 이야기 하는 이유는 할머니가 사라졌다라는 책이 한 가족이 바쁘게 살아가는 와중에 벌어지는 이야기를 유쾌하게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2015년 현재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가정들의 가장 평범한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어느 날 갑자기 함께 살던 할머니가 사라졌는데도 가족들은 일상적인 삶을 이어간다. 화자의 아버지는 슬퍼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화자의 어머니는 주말에는 미용실이 더 바쁘다며 어쩔 수 없다고 일을 하러 나가고, 화자의 형 또한 배가 고프다며 국이 담긴 냄비를 엎는다. 그런 아들에게 어머니는 오리고기를 구워먹으라며 전해준다. 할머니가 아무 말씀 없이 사라진 상황에서 이러한 대화들, 행동들이 기괴하게 보이는 것은 왜일까.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도 있지만, 요즘의 대한민국 사회는 하루가 멀다하고 생존환경이 각박해 진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 사라진 할머니를 찾으려면 할머니가 평소에 잘 입으시던 옷은 어떤 것인지, 친하게 지내시는 동네 어르신은 누구신지, 즐겨 가시는 곳은 어딘지, 어디가 아프신지 정도는 가족이라면 당연히 알아야 하는 사실들이지만, 평소에 나 살 길 찾느라 바빴던 가족들은 할머니를 집안일을 해주던 존재로만 기억하고 있었기에 할머니에 대한 그 어떤 사실도 알지 못한다. 할머니가 사라졌다에서는 할머니가 사라졌다는 극단적인 사실로 말미암아 우리사회를 표현하고 있지만, 이 일들은 어찌보면 우리 가족 안에서도 일어나고 있을 법한 일이다. 가족 구성원이 모두 바쁘게 산다는 핑계로 당연시 하는 이 사실이 당연하게만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은 우리에게 아직은 일말의 정이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믿고 싶다.

 

할머니가 사라졌다에서는 이 책에서의 주된 사건을 표지에 신문의 형식으로 그려넣어 이 이야기가 동화 속의 이야기뿐이 아닌, 우리 사회의 사건이라고 말하고 싶은 듯하다. 하지만, 책 속 삽화에서는 반대로 등장인물들이 상상하는 모습을 그려 넣어 우스꽝스러우면서도 판타지스러운 표현들이 이 책이 어린이 책이라는 것을 잊지 않게 해준다. 사실적이면서도 현실적이지 않은 이 책의 글과 삽화를 통해 저자가 그렇게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우리 조금만 덜 바쁘게 살자고, 그 시간을 가족에게 조금만 더 나누어 주자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짐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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