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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들의 책 이야기

꼴뚜기

꼴뚜기

 

최미송 (안양시립만안도서관)

 

▶ 서지사항
꼴뚜기 / 진형민 글ㆍ조미자 그림 / 창비 / 2013 / \9,500
978-89-364-4274-3

▶ 분야 : 동화
▶ 추천대상 : 초등 고학년

 

6편의 동화로 이루어진 『꼴뚜기』는 5학년 3반 아이들의 좌충우돌하는 일상을 경쾌하게 그려낸 작품집이다. 작가의 전작 『기호 3번 안석뽕』이 그랬듯 이번 작품도 처음부터 끝까지 유쾌한 유머가 흐른다. 표제작 「꼴뚜기」는 ‘꼴뚜기’라는 별명으로 불리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그린다. 「사랑 사랑 누가 말했나』의 주인공 길이찬은 특공무술도장 수련비를 여자친구와의 데이트 비용으로 쓸지 말지 고뇌에 빠진다. 분명 이야기 속 인물들에게는 난감한 상황이겠으나, 이를 보는 사람은 슬며시 웃음을 깨물게 된다. 이처럼 『꼴뚜기』의 유머는 현실의 어린이들이 살면서 처할 법한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데서 비롯된다. 어린이들에게 교훈을 주려고 하기보다는 능청스런 유머와 함께 아이들의 현실을 가감 없이 그려낸 것이 『꼴뚜기』의 가장 큰 매력이다.

 

  이 작품이 더 흥미로운 이유는 유머 속에 아이들의 매운 현실이 오롯이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다. 작품은 아이들을 마냥 무구한 존재로 그리지 않는다. 그들은 각자의 삶 속에서 크고 작은 문제에 봉착해 있으며, 때로는 이기적이거나 잔인한 존재가 되기도 한다.


  「축구공을 지켜라」에서 박용주는 일찍이 ‘개개면 개갤수록 인생은 피곤해진다’는 삶의 진리를 깨달은 바 있다. 그래서 엄마에게든, 선생님에게든, 축구공 때문에 반 친구를 괴롭히는 상급생에게든 ‘개개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부터 권위에 순응하는 태도를 체득한 것이다. 한편 상급생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당사자인 길이찬은 학교에서는 해결해 주지 못하는 자신의 문제를 풀기 위해 고민을 거듭한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결국 그를 향한 괴롭힘은 끝이 난다. 흥미로운 것은 자기도 모르게 상급생들과 닮아버리는 이찬의 모습이다. 그는 후배의 축구공을 반강제로 빌려가고는 공 주인의 애가 타는 것도 모르고 해질녘까지 신 나게 공을 찬다.


  「오! 특별 수업」에서 5학년 학생들이 텃밭을 가꾸고 작은 농장을 만들어야만 했던 이유는 일부 학생들이 새끼 고양이를 학대하다가 교장선생님에게 걸렸기 때문이다.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는다는 목적 아래 동식물을 기르던 아이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신들이 키우는 ‘생명’을 위해 남들의 그것에 해를 입히기도 한다. 자기네 농작물에 진딧물을 옮겼다며 진원지인 고추밭에 화풀이를 하거나, 우리 밭을 망쳤다는 이유로 옆 반에서 키우는 닭을 괴롭히는 것이다. 그들은 닭 앞에서 일부러 프라이드 치킨을 먹기까지 한다!

  『꼴뚜기』에서는 아이들의 현실을 통해 한국 사회의 단면을 엿볼 수 있기도 하다. 사회의 빛과 그늘은 아이들의 삶에도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인생 최대의 위기」의 장백희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학원에 가지 못한다. 백희의 집안이 어려워진 이유는 아버지의 빵집이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빵집 바로 옆에 프랜차이즈 제과점이 생긴 뒤 내내 재정난에 시달려 왔던 것이다. 또한 「뛰어 봤자 벼룩」에서 어린이 벼룩시장에 참여한 구주호와 길이찬은 부익부 빈익빈의 부조리를 몸소 체험한다. 몸고생 마음고생하며 자잘한 물건들을 가져와 푼돈을 버는 자신들과, ‘기분파 부자 아빠’를 둔 덕에 새 거나 다름없는 물건을 팔아 쉽게 돈을 버는 친구는 자연스레 대립된다.
 


  아이들은 이렇게 삶이 녹록치 않다는 것을 조금씩 배워 나간다. 어쩌면 이 아이들은 ‘꼴뚜기’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커져도 오징어보다는 작은 꼴뚜기. 그러나 오징어와는 다른 특유의 풍미를 가진 꼴뚜기. 아이들은 이런 것도 배운다. 거창하진 않아도 나름의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면 된다는 것을. 아침부터 밤까지 용감할 수는 없지만 어쩌다 한 번씩 용감하면 충분하다는 것을. 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존재는 결국 나 자신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