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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들의 책 이야기

샤워



● 서명 : 샤워

● 저자 : 정지원 글; 노인경 그림

● ISBN 9788932026220

● 분야 어린이책

● 대상 초등학교 고학년


샤워


손민정 (평택시립장당도서관 사서)

 

 우리가 매일 쓰는 욕실 샤워기 안을 잘 살펴보라. 어쩌다 길을 잃고 샤워기에 갇혀 그 안에서 인생을 보내는 바퀴벌레 한 마리와 같이 동고동락 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정지원 작가의 어린이책 샤워에는 바퀴벌레 두 마리가 주인공이다. 책의 첫 부분부터 작가가 실감나게 묘사해주는 바퀴벌레의 걸음걸이에 나도 모르게 소름이 쫙 끼치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바퀴벌레에 대한 이질감은 사라지고 주인공들을 응원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책의 주인공 아늑은 바퀴벌레다. 그녀의 뚱뚱하고 거대한 외모는 인간들에게 제일 눈에 띄는 외모로 사람들의 슬리퍼 공격에 제1순위가 되는, 한마디로 인기 없는 바퀴벌레인 것이다. 커다란 몸집의 아늑은 매달 열리는 화장실 안 바퀴벌레들의 축제에서도 매번 수컷 바퀴벌레들의 청혼을 받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축제의 날 아늑은 짝사랑하고 있던 바퀴에게마저 청혼 받지 못하고 큰 슬픔과 괴로움에 빠져 모두가 떠난 텅 빈 욕실에 남아 혼자 슬픔의 노래를 부른다.


모르잖아요 날 조금도 모르면서 / 출구도 없는 구석으로 날 떠미는 눈길에 / 내 수줍은 일기장은 다 부서져 버렸어요 / 모르잖아요 나를 모르면서 / 등 돌리고 선 비웃음 소리 / 내 마음엔 진흙이 차오르고 슬픔은 매일 눈을 남실거려요 / 껍질 아닌 본모습을 봐 줄 수 없나요 / 나 오늘도 서럽고 슬퍼 / 이렇게 작아졌네요 / 비웃지 말아 줘요 있는 그대로 봐 줘요 / 모르잖아요 아무것도 모르면서 -p.37


 그때, 누군가의 고함소리가 들려온다. “! 피해!” “인간이 오고 있으니 빨리 튀라고!” 아늑은 샤워기 안에 갇혀버린 바퀴 부드를 욕실에서 만나게 된다. 그날이후 아늑은 샤워기 구멍에 다리를 넣고 대롱대롱 매달려 부드와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다른 바퀴들에게 외면 받아 외로운 아늑과 샤워기 안에서 다른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살아가야하는 부득은 서로에게 의지하게 된다.


 아늑은 삶이 즐거워 졌고 탈출을 포기했던 부득은 바깥세상이 궁금해졌다. 서로를 볼 수 없지만 점점 애틋해지는 욕 실 안 바퀴벌레 두 마리의 우정이 두 눈으로 보고 관계 맺는 우리들의 우정보다 더 진실 하게 느껴지는 것은 왜 일까? 암컷 바퀴 아늑의 외로움과 슬픔이고스란히 전해지는 아름다운 노래들과 샤워기 안에서 많은 여행자들을 만나며 세상에 대해 알게 된 수컷 바퀴 부드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혹은 바퀴벌레는 너무 징그러워! 이것들을 슬리퍼로 다 때려주겠어!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도 샤워를 추천한다. 이 책을 덮을 때쯤엔 바퀴벌레에 대한 편견들이 귀여운 바퀴 한쌍 아늑과 부드로 인해 조금은 사그라지지 않을까? 보이는 것은 단지 삶의 작은 부분처럼 보이는 그들의 마음씨에 작게나마 공감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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