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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들의 책 이야기

다리 위에서 사는 사람들

다리 위에서 사는 사람들

 

경기도사이버도서관 사서  정은영.

 

 

1. 베키오 다리

이탈리아 피렌체에 우피치 미술관이 있습니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이 있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술관이라서 예약을 안 하면 줄을 엄청나게 길게, 오래 서 있어야 합니다. 그 우피치미술관에서 나오는 길에 창문을 통해 보이는 다리가 하나 있습니다. 아르노강 위에 가장 오래된 다리인 베키오 다리입니다. 단테와 베아트리체가 처음 만난 장소로 유명하지요. 그 다리 위에는 그림을 그려주는 사람들, 악세사리를 파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다리는 일반적인 다리와 다르게 건물들이 있고, 그 건물에 상가도 있고, 사람들도 살고 있지요. 강 이쪽에서 강 저쪽으로 오가면서 물건도 사고, 사람들도 만나는 거죠. 그런데 그 다리가 서로를 이어주고 있지 않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렇게 된다면 그 다리다리일까요? ‘일까요?

 

 

2. 섬에서의 새로운 삶

남편과 함께 아이를 데리고 섬으로 낙향한 친구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아이에게 아스팔트가 아닌 흙을 밟게 해주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여행을 다니면서 가장 좋았던 곳에 터를 잡았습니다. 그곳이 바로 이었습니다.

이번 여름 그 으로 피서를 가려고 합니다. 친구도 만나고, 그 좋다는 바다와 하늘과 산과 들을 보고 오려고요. 책을 참 좋아하는 친구라서 선물로 책을 몇 권 샀습니다. 아이에게도 한권 사주고 싶어서 보는 중에 이라는 제목의 책이 눈에 띄였습니다. ‘으로 이사 간 아이에게 에 대한 이야기를 선물해 준다니 참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냥 사줄 수는 없고, 먼저 읽어봤습니다. 읽고 나니 마음이 아련해 집니다. 조금은 답답해집니다. 너무 무거운 이야기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 번 더 읽어 봤습니다. 나름 재미있습니다. 그래도 너무 막막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한 번 더 읽어 봤습니다. 다소 무겁지만 그림도 그렇고 섬 사람들의 표정도 재미가 있고, 깊은 생각과 이야기를 나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3. 그림책

2013 볼로냐 라가치상(오페라 프리마 부문)을 받은 그림책 은 육지 사람처럼 되고 싶어 한 섬 사람들이 섬과 육지를 연결하는 아주 긴~ 다리를 만드는 이야기입니다. 아주 길고 튼튼한 다리를 만들려니 돌도 나무도 모래도 아주, 아주 많이 필요했지요. 섬에 있는 나무, 모래, 돌을 가져다 다리를 만들다보니 산도, 숲도, 해변도 모두 없어져 버렸습니다. 육지 사람처럼 되고 싶던 섬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산에 돌이 없어질수록 새 다리는 생겨났고, 산이 점점 낮아질수록 다리는 점점 길어졌습니다. 잘려진 나무가 많아질수록 다리는 점점 새로워졌습니다. 해변의 모래까지 모두 사용한 후에 마침내 다리가 완성되었습니다. 섬에 있는 수많은 자연과 자원을 다리를 만드는데 다 써버렸습니다. 다 써버렸더니 남아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섬이 없어져버린 것입니다.

결국 섬 사람들은 육지로 가기로 했지요. 줄줄이, 줄줄이 줄에 맞춰 다리를 건너갔는데. 이런! 마지막에 다리를 연결한 모래 둑이 파도에 쓸려 없어져 버렸습니다. 섬 사람들은 섬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육지로 옮겨갈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다리 위의 사람들이 되어 버렸지요.

 

 

4. 어울림이 있는 아름다움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육지사람처럼 되고 싶었을까요? 처음에 은 무척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산과 해변과 숲이 어우러져 있는 곳이었으니깐요. 바다와 육지가 어우러져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이었습니다. 자연만이 아니라 사람들도 잘 어울려 있는 곳이었습니다. 키가 크든 작던, 뚱뚱하던 말랐던, 다양한 사람들이 어우러져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런 섬 사람들에게 욕심이 생겼습니다. 육지에서 온 커다란 배가 너무 멋져보였고, 육지 사람들의 옷차림, 머리모양, 말투와 걸음걸이까지 모두 멋있어 보였습니다. 우리는 시각이 주는 효과에 너무 쉽게 속아버립니다. 정말 멋진 것인지, 정말 좋은 것인지 보다 멋져 보이는 것, 좋아 보이는 것이 더 중요하게 생각됩니다. 가끔은 눈을 감고, 깊이, 깊이 생각해 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5. 욕심

섬의 살림살이를 맡아 하는 도지사에게도 욕심이 생겼습니다. ‘역사상 가장 훌륭한 도지사가 될 것 같은 허황된 생각이 들었습니다. 욕심이 생기니, 그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되었습니다. 꼭 해야 되는 일이 되었습니다. 정말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 가끔은 정말 중요한 일, 꼭 해야 하는 일이 아닌데도 그렇게 우선순위가 바뀌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어서 보다는 욕심 때문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어느 한 사람만의 욕심이라면 그건 아닌 것 같아라고 말해줄 사람이 있을 텐데,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버렸습니다. 어부도, 농부도, 경찰관도, 선생님도, 소방관도, 모두에게 다리가 제일 중요한 일이 되었죠. 물고기 잡는 일보다도, 논 일이나 밭 일 보다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 보다도, 불을 끄는 일 보다도 더 중요한 일이 되어 버린거죠.

 

 

6. 다리 위에서 사는 사람들

더 풍족해 지고, 더 멋져지고, 더 아름다워지려고 한 일이었는데, 더 부족해지고, 볼품없어져 버렸습니다. 끊어져 버린 다리 위에서 사람들은 더 이상 섬 사람도 아니고, 육지 사람도 아닌 채로 남아버렸습니다. 이들은 어떻게 살 수 있을까요? 처음 그림책을 읽었을 때는 너무도 막막했습니다. 이런 막막한 상황에서 화를 돋구는 것도 아니고 불꽃이라니 이건 또 웬 말입니까? 막막한 상황에서 축포가 터진다니요. 작가가 너무 잔인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두 번 째 읽었을 때는 그래도 사람들은 그 처한 현실에서 그에 맞춰 또 살아가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 번 째 읽었을 때는 어쩌면 육지로 가서 사는 삶이 행복했을까? 오히려 다리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새로운 어울림을 만들면서 살아가는 데 더 행복하지는 않을까? 라는 생각까지 듭니다. 읽을 때마다 생각과 깊이가 달라집니다. 아무래도 이 책을 옆에 끼고 또 읽고, 또 읽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7. 질량보존의 법칙

무엇을 누리는 것에는 그에 마땅한 값이 치러져야 합니다. 그래서 물건은 그에 맞는 값을 갖고 있고, 우리는 그 값을 치루고 물건을 사지요. 그런데 그 값은 우리가 시장에서, 가게에서 사는 물건에만 메겨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저기 그냥 나뒹구는 돌, 나무, , 해변, 산 등 우리 주변의 자연에도 그 가치가 다 담겨져 있습니다. 다리가 생기기 위해서 돌이 없어져야 했고, 그 다리가 더 길어지기 위해서 나무가 베어져야 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도로, 나무, , 오늘 먹은 아침 밥... 등 그 모든 것이 만들어지기 위해 무엇인가 없어졌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섬으로도 육지로도 움직일 수 없는, 오도가도 못 하는 순간이 올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전에 좀 더 자연에 관심을 갖고, 그 자연이 내는 소리에 귀기울여야 하지 않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