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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들의 책 이야기

허허허, 하하하, 호호호 웃어보세요. 작은 변화가 기적처럼 슬며시 찾아옵니다.

허허허, 하하하, 호호호 웃어보세요. 작은 변화가 기적처럼 슬며시 찾아옵니다.

 

정영춘 (부천시 원미도서관 사서)

 

 

허허 할아버지 / 전지은 글.그림 : 사계절 출판사

 

 

 

훨훨 간다이야기 속 할아버지가 살짝 연상되는 또 한명의 할아버지가 짠하고 나타났으니 바로 이 책의 주인공 허허 할아버지다.

온 몸이 웃는 듯한 착각을 부르는 허허 할아버지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이래도, 저래도 허허 웃는 허허 할아버지와 후우 한숨을 달고 사는 한숨 임금님이 주인공이다.

 

운율을 살린 리듬감있는 언어가 두 사람을 재미나게 대비시키고 있다.

우리의 주인공 허허할아버지는 웬만해서는 화를 내는 법도 없고 성급하게 생각하는 일도 없이 매사 느긋하다.

 

그래서일까 할아버지의 주변 인물들도 싱글벙글이다. 똥을 밟고도 거름하면 되겠다며 아이들과 함께 코를 잡고 웃는 할아버지와 어린이들의 표정이 허허 할아버지의 성품을 말해준다. 좋은 기운이 여기까지 스미는 듯하다

 

또다른 주인공 한숨 임금님은 또 어떨까? 예상대로 심술궂게 살짝 올라간 입꼬리와 꾹 다문 입술이 한눈에 보아도 불만투성이다. 곁에서 보필하는 신하들의 표정도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것이 영락없이 임금님을 닮았다.

 

한숨만 쉬는 임금님을 위해 신하들은 허허 할아버지를 만나 보도록 권유한다.

임금님은 이래저래 할아버지의 화를 돋우러 보려 노력하지만 재물이 많냐는 물음에는 입에 풀칠은 하고 삽니다. 허”, 자식들이 효도하냐는 물음에도 자식은 없지만 할멈하고 둘이서 재미나게 삽니다. 허허 하고 마니 도무지 싸움이 되질 않는다. 이에 한숨 임금님은 허허 할아버지에게 걱정거리를 던져주기로 마음먹고 황금빛 금가락지를 쥐어주며 보름 후에 가져오라고 명령한다. 배를 타고 돌아가는 길에 그만 사공의 실수로 임금님의 금가락지를 강물에 떨어뜨리고 만다. 임금님의 금가락지를 잃어버렸으니 근심으로 가득하려만 허허 할아버지는 이번에도 속 편하게 군다. 할아버지 대신 근심을 떠안고 앓아누운 할머니에게 주려고 잡은 잉어 뱃속에서 임금님의 금가락지를 다시 찾게 되고 이것은 모두 임금님이 신하를 시켜 할아버지를 시험한 일이라는게 밝혀진다. 그 뒤로 한숨 임금님은 껄껄 임금님이 되어 웃으며 나라를 다스렸다는 이야기다.

 

옛날 이야기 형식을 차용하여 행복한 결말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우리네 속담에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더니 할아버지의 행운은 여기서 시작되었나 보다. 그런데 허허 할아버지처럼 사는 게 얼마나 가능할까? 아마도 속없이 허허거렸다가는 그 저의를 의심받고 이용당하거나 자칫 무능력한 사람 취급을 받을 수도 있다. 우리는 손해보지 않기 위해 샅샅히 따져 계산하고 손아귀에 움켜쥐어야 다소 안심할 수 있는 세상을 살고 있으니까. 그것은 아이들이라고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의 작은 세상도 어른들의 축소판과 같아서 그네들을 목표 지향적으로 끊임없이 선동하는 책들과 친구들과 경쟁하도록 다그치는 어른들에게 둘러 쌓여 있음을 알고 있다. 허허 할아버지의 주름살 웃음이 무척이나 정겹다. 더불어 당장 해결할 수 없는 일은 잠시 내버려두는 태도가 지혜롭다. 만약 할아버지가 금가락지를 잃어버리고 앓아 눕기라도 했다면? 그래서 그 좋은 허허 웃음을 잃어버렸다면, 아니 그 전에 사공을 책망하여 시비를 가리는데 급급했다면? 할아버지에게 올 수 있는 좋은 일들이 모조리 비껴 갔을 것 같다. 어쩌면 행운이란 무작정 앞만 보고 빠르게 달려가기에서가 아니라 잠시잠깐 걱정을 내려놓고 웃어보는데서 싹트는 것이라 할아버지를 통해 가르쳐 주는 것 같다.

 

이 책을 소리내어 읽다 보면 믿을 수 없는 작은 변화가 기적처럼 슬며시 찾아온다. 근육이 먼저 움직이기 시작하고 허허 웃음이 스미고 이윽고 작은 평안에 이르게 된다.

 

허허,껄걸, 허허,껄걸.

그렇지 않은가?

 

존재만으로 어여쁜 많은 어린이와 조급함에 신음하는 어른들 모두가 허허 할아버지를 찾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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