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정말 망했어!
º 서평대상 서지사항
벗지 말걸 그랬어 / 요시타케 신스케 글, 그림, 유문조 옮김. - 스콜라(위즈덤하우스). 2016. 978-89-6247-720-7
º 분야
그림책
º 추천대상
영유아 및 부모
º 상황별추천
옷 벗기 싫어하는 아이들을 위해, 옷을 벗다가 걸려서 짜증이 나는 아이와 그 부모를 위해
º 주제어
목욕, 샤워, 옷벗기, 옷입기
서평자 정 은 영 (경기도사이버도서관)
하루가 마무리 되는 저녁, “oo야, 목욕하자.” 옷을 벗기려는데 아이가 발버둥을 친다. 자기가 할 수 있다면서 짜증을 내는 아이를 뒤로하고 욕실로 간다. “그럼, 옷 벗고 빨리 욕실로 와.”
한참을 기다렸는데 아이는 오지 않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엄마는 더 이상은 기다릴 수 없겠다며 아이가 있는 방으로 간다.
아니 이게 뭐야!
윗도리는 벗다만 그대로 팔과 머리에 뒤집어쓰고 있고, 바지는 발목까지 내려가 있는 상대로 방바닥에서 뒹굴 거리고 있다. 엄마는 어이 없어하면서 아이들 들쳐 메고 윗도리, 바지, 양말, 속옷을 척, 척 벗기며 욕실로 간다.
목욕을 다 시키고 아이에게 잠옷을 내주고 엄마는 볼 일을 본다.
아이를 키우는 집에서는 늘 상 있는 일이다.
목욕은 아이나 엄마에게 모두 재미있고 신나는 일이기도 하면서도 때로는 귀찮고, 서로 실랑이를 해야 하는 일이기도 한다. 엄마와 아이가 실랑이 하는 그 짧은 시간에도 아이는 멋진 세상을 오간다.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하고, 어이없는 상황에서 나름 철학적이 되기도 한다.
이 책은 목욕하기 직전 아이가 옷 벗는 아주 잠깐의 타이밍을 그리고 있다. 일반 사람들은 그냥 흘려 지나갈 수 있는 해프닝을 작가는 그냥 놓치지 않는다. 옷을 벗으려고 발버둥을 치다가 지쳐서 가만히 쉬고 있는 아이들을 우리는 쉽게 발견한다. 가끔을 그 상태에서 혼자 벗어날 수 없어서 울어 제끼는 경우도 있고, 가만히 쉬었다가 다시 벗어보려 하는 경우도 있다. 가끔은 그냥 그대로 포기하고 잠들어 버리는 아이도, 상황도 있다. 옷을 벗는 그 행동사이에 우리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반면 이 아이를 바라본 엄마의 시간은 어땠을까도 생각해 봤다. 엄마의 시간과 아이의 시간은 달랐을 것이다. 엄마는 목욕물을 받아놓고, 씻고 나서 입을 잠옷을 꺼내 놨는데도 아이가 욕실로 오지 않아서 ‘얘는~’이라는 생각을 하는 짧은 시간이라면, 아이에게는 잘 벗겨지지 않는 옷을 벗기 위해 해볼 만큼 해보다가 어른이 되어도 보고, 산책도 하고, 고양이나 친구를 만나서 놀고, 이곳저곳을 돌아, 돌아오는 시간이다.
모든 아이들이 실패와 성공을 경험하면서 크고 있고, 이 두 가지는 모두 성장에 큰 역할을 한다. 이 책이 다른 유아책의 옷 벗고 입는 행동에 대해 다르게 다루는 점은 아이에게 성공의 성취감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옷 입기 미션을 다루는 유아책은 ‘이젠 혼자 입을 수 있어요’에 중점을 두고 있다. 뒤집어 입고, 단추도 밀리고, 다리는 한쪽 다리에만 들어가 있고…, 그러다가 결국엔 다 해낸다. 그리고 칭찬을 받는다. 아이는 성취감에 뿌듯한 표정을 숨기지 않는다. 그러나 이 책은 가장 중요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 ‘성공’을 과감히 삭제해 버렸다. 옷 벗기에 실패한 아이는 “이젠 정말 망했어.”라든가 “…… 결국, 맨날 엄마가 하라는 대로다.” 등의 포기를 선언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 실패 속에서 희망을 본다. 명확히 그려져 있지는 않지만 희망을 읽는다. 책 속 주인공이 옷 입기와 벗기를 처음 시도해 보는 유아가 아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옷 벗기에는 실패했지만 옷 입기에는 성공하겠지 하는 기대를 갖고 있기 때문 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에도 작가는 어른들에게 위안을 주지는 않는다. 대신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마음의 평안을 준다. 실패해도 괜찮다. 실컷 웃고 말면 그만이다. 그러고 나면 우리의 삶을 계속 이어 갈 테고, 우리는 또 실패하고, 실패하고, 가끔은 성공하면서 인생의 맛을 느끼며 살아갈 것이다. 실패를 딛고 일어날 수 있는 힘을 갖춘 아이로 클 수 있도록 응원해 주자.
이 책에는 책의 표지와 내지를 잡아주는 면지나 제목과 작가명 등이 수록되어 있는 표제지가 없다. 책 표지를 펼치면 바로 그림책이 시작된다. “옷이 걸려서 벗을 수 없게 된 지 얼마나 지났을까?”라는 대사와 함께…. 규칙과 규정을 지키는 책을 매일 보는 입장에서 면지도 표제지도 없다는 것은 너무 낯선 일이다. 그림책 말고 일반 도서에서 면지가 없이 표제지가 나오는 것도 어색하다. 그런데 그 표제지가 없다는 게 익숙할 일이 만무하다. 책을 펼치면 ‘파본인가?’라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경험해 봤을 일을 익살스럽게 풀어 논 그림책을 통해 작가는 조금은 다른 생각과 다른 시선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고의적으로 다른 시선과 낯섦을 주려는 의도를 갖고 책의 구성 다르게 한 것은 아닐까라고 굳이 이해해 준다. 작가의 익살스러움은 책이 보여주고 있는 상황에도 있고, 만화 같은 선명하고 단순해 보이는 그림체에도 있고, 책의 구성에도 들어 있다. 덕분에 출판사는 책에 당연히 들어가야 할, 수 많은 정보를 구석구석 집어넣느라 고생을 조금 했을 것 같다.
재미도 있고, 아이의 입장을 이해하게도 해주는 익살스러운 그림책이지만 그래도 표제지와 판권지가 별도로 없는 건 받아드리기 참 어렵다. 사서라는 직업 때문일까? 규정이 익숙한 어른이기 때문일까? 그러나 아이들에게는 표지를 넘기자마자 시작되는 이야기가 몰입감을 높여 줄 수도 있겠다.
매일 목욕 때문에 아이와 실랑이하며 얼굴을 붉히고 있다면 이 책을 함께 읽고, 함께 웃어보는 건 어떨까? 아이에게도 부모에게도 웃음을 줄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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