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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들의 책 이야기

나무, 조용한 위대함

나무, 조용한 위대함

 

수원영통도서관 사서 김미진

 

서지사항 : 천년을 산 상수리 나무 / 엘리자베스 로즈 글, 제럴드 로즈 그림, 강도은 역.  - 내인생의책. 2013

분야구분 : 그림책

 

여기에 천년을 산 상수리나무의 일생이 있다.

 

어미 나무에서 떨어져 나와 도토리는 처음으로 세상에 홀로 섰다. 그 도토리는 자리를 잡아 싹을 틔우고 숲의 일부로서 제대로 한 몫을 해내는 늠름한 나무로 성장해간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언제나 한 자리를 지키는 나무. 동물들의 집이 되어주기도, 도둑들의 창고가 되어주기도 하며, ‘언제나 내게 오면 누구든 내 품을 내어주겠다라고 말하듯 두 팔 활짝 벌려 맞아주는 나무. 자신의 몸통과 가지는 원래부터 사람들의 집과 배를 만드는데 필요했다는 듯 아무 말 없이 몸을 내어주는 나무. 그런 나무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 눈에는 평화롭게만 보이는 나무이지만, 나무의 삶은 사실 그렇게 평탄하지만은 않다. 갑작스레 홀로 세상에 떨어졌을 때, 간신히 추운 겨울을 견뎌내고 싹을 틔웠을 때, 힘들게 틔운 싹이 동물의 먹이가 되거나, 인간의 발에 무참히 짓밟혀질 때. 그리고 자리를 잡은 순간 영원히 자유를 포기해야만 했을 때.

 

<천년을 산 상수리나무>(이하 상수리나무)는 우리에게 한없이 주는 자연의 사랑과 그 자연의 살 떨리는 삶의 현장을 모두 보여주고 있다. 내용으로 사랑을 말하고 있다면 그림으로는 그들의 역동적인 삶이 표현된다. 조용하기만 할 것 같은 숲에는 올빼미의 위협적인 날갯짓이 있고, 나무 밑을 헤집고 있는 멧돼지의 가쁜 숨소리가 존재한다. 야생의 거침과 자연의 매서움이 그림을 통해 전해지기에, 나무가 우리에게 말하고 있지 않아도 우린 어렴풋이 자연의 희생과 위대함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상수리 나무>를 읽으며, 예전에 읽었던 <신갈나무 투쟁기>(이하 신갈나무)라는 책을 다시 펼쳐 보았다. <신갈나무>는 식물의 관점으로 책을 썼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인간의 시각에서 벗어나 식물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다. 그리고 <상수리나무>에서 느꼈던 자연의 혹독함과 식물의 어려움을 <신갈나무>에서 사실적으로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은 이 두 권의 책이 얼마나 궁합이 맞는지 알게 해주는 점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동시에 두 권의 책을 읽고 있어도 함께 어우러지듯 어색함이 없다.

<상수리 나무><신갈나무>는 그림책과 에세이의 옷을 입은 과학책으로 다른 형식의 길을 시작했지만 이 책들이 도달하고 싶은 길의 도착점은 결국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과 <상수리 나무>를 읽은 후, <신갈나무>를 천천히 읽어나간다면, 아이들에게 식물의 생태와 생활에 대해 알 수 있고 식물에 대한 인식 또한 변할 수 있는 계기를 주리라 믿어본다.

 

우리는 오랜 세월동안 우리 곁을 지킨 식물들에게 끊임없이 바라기만 할 뿐, 고마움도 미안함도 갖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는 식물을 당연하게 그 자리에 있는 물건처럼 여기고 살지는 않았나 하는 반성이 든다. 나무 또한, 인간이나 동물과 다름없는 생물인데, 식물은 어쩐지 그에 마땅한 대접을 받고 있지 못하다. 우리에게 큰 위로를 주고 있음에도 말이다.

 

이 조용하지만, 위대한 나무가 바로 우리 곁에 있는데도 말이다.

 

마지막으로 <신갈나무 투쟁기> 속 한 구절을 인용해본다.

 

사람들은 나무에게서 일어나는 살 떨리는 삶의 현장들을 정확하게 인정해야 한다. 나무로부터 받는 위안은 도피적 위안이 아니라 지구상 생물들의 숙명적 삶을 이해함으로써 얻는 공감적 위안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