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서들의 책 이야기

일수는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일수는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수경(평택시립도서관 사서)

 

 

일수의 탄생/유은실 글. 서현 그림. - 비룡소(2013). 초등저학년부터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7시반경 집을 떠나 학교에 가고 오후 서너 시경 차량에 실려 밤 늦도록 학원 수업을 듣고 귀가한다. 시간 차는 있겠으나 학원을 다니는 아이들의 경우 이 생활을 크게 벗 어나지 않는다. , 학교, 학원 이 틀 안에서 친구들과 놀거나 시간을 채워나간다. 부모가, 학교가, 사회가 만든 시간표에 맞춰나가다 보니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누구인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모르는 채 살아간다. 자신이 누구인지 생각할 여유가 없는 아이들을 삶의 불안감에 쫓기는 어른들이 키우고 있다. 세계 경제 순위 13위인 나라에 살지만 무한 경쟁체제를 내재화한 어른들은 명문대, 정규직, 노후보장이 삶의 전부가 되었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열심히 살지만 무엇을 위한 것인지 모른 채 내달리는 경우가 많다.

 

유은실 작가의일수의 탄생은 폭주기관차처럼 달리는 우리에게 건네는 질문지이다. 새마을 문구점 외아들 백일수는 모든 것이 특별할 것 없는 완벽히 보통인 아이다. 성격도, 성적도, 인물도 어느 한 곳 잘나지도 못나지도 않은 아이. 일수를 대하는 엄마의 엄청난 기대와 아버지의 달관한 태도도 어쩌면 일수를 보통 아이로 만든다. 부부의 상반된 태도 또한 우리 사회가 청소년들을 대하는 태도가 아닌가?!. 보통 아이 일수는 엄마의 기대에 눌려 늘 주눅 들어 있다. 보통 아이 일수는 자라면서 더 잘나지 못해 미안하고 자신과 다른 누군가를 부러워한다. 삼십대 중반까지 일수는 학교도, 학원도, 군대도, 직장도 자신의 인생에서 스스로 결정해 본 적이 없다. 부모가, 학교가, 사회가 준 틀에서 쳇바퀴 도는 생활이다. 서예 스승의 선문답 같은 질문에 우물쭈물 답을 내놓지 못하는 일수가 답답하게 느껴지지만 우리 또한 답해보았던가 되묻는다. 작가 특유의 밝고 명랑한 분위기와 가벼움 속에서 가슴을 울리는 대사는 여전하다. 21세기 무한질주 대한민국을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비법은 일수 부모님의 대화에서 드러난다. 일수가 쓴 서예 작품 하면 된다를 자랑하는 어머니에게 아버지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가장 고마워하는 것을 이야기한다.

 

나한테 별 기대를 하지 않은 거. 그래서 내가 대단해지지 않아도 죄지은 느낌 없이 살 수 있는 거

 

자기계발 의지와 각종 스펙으로 중무장한 채 죽을 때까지 생존 경쟁으로 치닫는 우리 사회는 젊은이들에게 까지 가지라고 말한다. 직업의 종류와 아파트 평수는 묻지만 너는 누구냐,’‘너의 좋고 싫음은 무엇이냐등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사회에서 완벽히 평범한 일수는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다. 자신에게 질문하는 법,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궁금한가. 삶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는 동화를 꾸준히 읽는 일, 그것이 방법을 찾아가는 하나의 길일지도 모른다. 글을 맺으려니 문득 생각난다. 일수는 하필이면 새마을 문구점 아들로 태어나 하면 된다는 어머니의 거대한 기대 속에 주눅 들어 살아왔다. 여성학자 정희진의 말처럼 물에 빠진 나를 구한 통나무가 나를 물속에 붙잡아 둘 때의 경우와 같지 않은가? 전력질주로 세계 경제 13위의 나라는 되었지만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같은 사회에서는 그 누구도 건강하게 살아갈 수 없다는 것. 일수의 탄생은 이제 성찰을 통한 성장이 필요한 시점임을 가볍고 편안한 문장으로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