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를 향한 내 마음. 이대로 물러설 수 없어요
부천 원미도서관 사서 정영춘
이혼 대비 비밀노트 / 박채란 : 주니어랜덤
이혼대비 비밀노트는 이혼을 앞두고 있는 부모의 상황을 지켜보며 아이가 써내려간 심경고백이다.
표지그림만 봐도 주눅든 불안한 아이들의 기운이 감지된다.
고민가득한 얼굴을 하고 글을 써내려가는 아이가 정면에 드러누워 있고 화산이 폭발하는 순간처럼 금방이라도 깨어질듯한 방문, 책상 구석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자그마한 꼬맹이 둘이 시선을 잡는다.
이혼을 대비하다니 짠한 마음이 든다. 그러고보니 이젠 이혼이란 주제도 더 이상 동화책의 소재로 낯설지 않게 된 것 같다.
한편에서는 이혼을 대비하고 다른 한편에선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헤어짐과 맞닥뜨리는 등 과정은 다르겠지만 그 수월찮은 과정을 과정을 객관화시켜 보여주고자 노력한 흔적을 책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주인공은 이혼하기 직전의 부모를 불안하게 지켜보는 소녀 재인이다.
재인이는 속이 꽉차있다.
혼자 세상을 살아가려면 최소한 열 살은 되어야 하는데 아직 여덟 살밖에 안된 어린 쌍둥이 동생을 보며 살짝 고민에 빠지기도 하고 , 돌봄교실에 다니는 쌍둥이 동생들을 돌보느라 친구와의 사사로운 시간을 포기해야 하지만 돌봄같은 건 필요없으니 자신은 방학 중엔 집에 있겠다고 당당하게 선언할 줄도 아는 당찬 아이다.
그런 재인이도 매일 엄마, 아빠의 방문너머로 들려오는 다툼의 소리는 감당하기 어렵다
누가봐도 아직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어린이에 불과하지만 상황은 허구헌날 싸우는 부모 때문에 자신의 걱정따윈 생각할 수도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
오히려 씩씩한 아이 때문에 독자는 더 마음이 아프다.
아이다운 생각으로 이혼을 막아 보려 궁리 끝에 작전을 펼칠 때도 (엄마 아빠 마음에 들 수 있도록 방청소하기, 쌍둥이 동생 돌보기 등으로 부모님 마음 편안하게 해주기. 집안 구석구석에 추억이 가득한 사진 걸어놓기 등이 그것이다) 부모님에게서 버림받으면 어쩌나 어린 마음이 끙끙거릴 때도 이미 이혼한 엄마와 아빠를 둔 친구에게서 들은 말 한마디 한마디가 현실로 닥치면서 불안과 공포가 최고조에 오를 때의 아이의 마음을 온전하게 공감할 수 있다. 비극적인 상황에 몰리지 않도록 준비하고 또 준비했으나 막상 제 부모에게서 이혼을 통보받았을 때 무방비 상태로 울음을 터트리는 장면에 이르러 나도 그만 울고 말았다.
나의 유년시절을 되짚어보면 부모님들 간 결혼을 깨는 일이 드물었던 것 같고 지극히 개인적인 기억에 의존한 것이지만 이혼이란 소재를 다룬 어린이 책을 읽은 기억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여전히 행복한 가정과 천진난만한 아이들에 대한 고정관념이 존재한다.
아이들의 세계란 부드러운 것, 보기 좋은 것만 보여줘야 할 것만 같다.
그런데 이제는 확실히 상황이 달라진 것 같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이혼율은 90년대 4만에서 2012년에는 무려 11만 4,000건에 달하고 이혼하는 주 연령층은 40대 초반이라고 나와있다.
그것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된다면 그 상처를 잘 치유해 줄 수 있는 책을 고를 수 있는 안목도 필요하지 않을까.
이혼가정과 이혼 후를 다룬 어린이용 책들이 모두 나름의 장점을 갖고 있지만 부모의 이혼앞에 무섭고 외로웠을 아이의 등을 껴안아 주고 싶다던 저자의 애틋한 마음이 글 중간중간에 잘 녹아 있다. 또한 헤어짐의 귀로에 서있는 상처받은 어른들을 향해서도 저자는 따뜻한 시선을 놓치지 않는다.
결말을 미리 귀뜸하자면 재인이는 이혼대비 비밀노트 대신 친구와 교환일기를 쓰고 있다는 것만 밝혀둘까한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오늘도 열심히 살고 있는 수많은 이땅의 엄마, 아빠, 언니, 동생들아.
파이팅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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